반응형

좋은시 697

한상경 나의 꽃

한상경 나의꽃. 한 폭의 수채화같은 아름다운 시. 나의 꽃 /한상경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향기로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내 가슴 속에 이미 피어 있기 때문이다 🍒 ❄출처 : 한상경 시집, 『아침고요 산책길』, 샘터, 2003. 🍎 해설 이 시는 상당히 유명하고 인기있는 시다. 한상경은 정식 문단에 등단한 시인이 아니다. 한상경은 삼육대 원예학과 교수를 역임한 원예학자로 1996년 경기도 가평의 약 10만 평의 산자락을 일궈 아침고요수목원을 만들었다. 손수 산을 일구고 나무와 꽃을 심었다. 약 1,700여 종의 나무와 꽃이 피고 진다고 한다. 한상경은 아침고요수목원에서 꽃과 나무와 대화를 나눴다. 이 시도 그런 ..

좋은시 2023.09.27

양광모 눈물 흘려도 돼

양광모 눈물 흘려도 돼. 누가 뭐라 해도 내 인생이잖아. ​눈물 흘려도 돼 /양광모 비 좀 맞으면 어때 햇볕에 옷 말리면 되지. ​ 길 가다 넘어지면 좀 어때 다시 일어나 걸어가면 되지. 사랑했던 사람 떠나면 좀 어때 가슴 아프면 되지. ​ 살아가는 게 슬프면 좀 어때 눈물 흘리면 되지. ​눈물 좀 흘리면 어때 어차피 울며 태어났잖아. 기쁠 때는 좀 활짝 웃어. 슬플 때는 좀 실컷 울어. 누가 뭐라 하면 좀 어때 누가 뭐라 해도 내 인생이잖아. 🍒 ❄출처 : 양광모 시집, 『한 번은 시처럼 살아야 한다』, 푸른길, 2021. 🍎 해설 누구에게나 고통과 절망의 시간이 온다. 이 시는 삶에서 누구에게든지 다가오는 절망을 “수용하는 것”에서부터가 희망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

좋은시 2023.09.26

안도현 스며드는 것

안도현 스며드는 것. 가족 간의 사랑을 성찰하게 해 주는 시.스며드는 것/안도현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 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출처 :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비, 2008. 🍎 해설안도현 시인의 시 중 유명한 시다. 간장게장은 다른 음식들과 달리 오랜 시간 살 속에 양념이 스며들어 만들어지는 음식이다. 이 시에는 몇 날 며칠을 뜨거운 간장 속에 몸을 담그고 뱃속 알들을 지켜..

좋은시 2023.09.23

백석 절망

백석 절망. 일제 강점기 시대의 한국 여인들의 비극성을 가슴 아파하던 백석 시인. 절망 /백석 북관(北關)에 계집은 튼튼하다 북관에 계집은 아름답다 아름답고 튼튼한 계집은 있어서 흰 저고리에 붉은 길동을 달어 검정치마에 받쳐입은 것은 나의 꼭 하나 즐거운 꿈이였드니 어늬 아츰 계집은 머리에 무거운 동이를 이고 손에 어린것의 손을 끌고 가펴러운 언덕길을 숨이 차서 올라갔다 나는 한종일 서러웠다 🍒 ❄출처 : 백석 지음, 『정본 백석 시집』, 고형진 편, 문학동네, 2020. 🍎 해설 *북관: 함경도 지역. *길동: 끝동의 평안북도 방언. 옛날 여인들은 저고리 소매 끝에 다른 색깔의 천을 대서 모양을 냈다. 이 시에 나오는 여인은 흰 저고리 소매 끝에 붉은 색 끝동을 달고 있다. 시인은 튼튼하고 아름다운 함..

좋은시 2023.09.22

이해인 청소 시간

이해인 청소 시간, 날마다 먼지를 쓸고 닦는 일은... 청소 시간 /이해인 앞치마에 받은 물기 어린 아침 나의 두 손은 열심히 버릴 것을 찾고 있다 날마다 먼지를 쓸고 닦는 일은 나를 쓸고 닦는 일 먼지 낀 마음 말끔히 걸레질해도 자고 나면 또 쌓이는 한 움큼의 새 먼지 부끄러움도 순히 받아들이며 나를 닮은 먼지를 구석구석 쓸어낸다 휴지통에 종이를 버리듯 내 구겨진 생각들을 미련 없이 버린다 버리는 일로 나를 찾으며 두 손으로 걸레를 짜는 새 날의 시작이여 🍒 ❄출처 : 이해인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분도출판사, 1983. 🍎 해설 “날마다 먼지를 쓸고 닦는 일은 나를 쓸고 닦는 일” 이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좌우명으로 삼았다. 중국제 로봇 청소기를 사자는 아내의 제안을 뿌리쳤다. 나..

좋은시 2023.09.20

윤동주 소년

윤동주 소년. 내적 성찰을 담은 윤동주 시인의 사랑시.소년/윤동주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출처 : 윤동주 시집, 『윤동주 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스타북스, 2019. 🍎 해설이 시는 아름답다. 파란..

좋은시 2023.09.19

박목월 사투리

박목월 사투리. 사투리를 통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 사투리 /박목월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나는 머루처럼 투명한 밤하늘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디가 샛까만 뽕나무를 사랑했다. 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 이슬마꽃 같은 것을…… 그런 것은 나무나 하늘이나 꽃이기보다 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 약간 풀냄새가 난다. 약간 이슬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에 마르는 황토흙 타는 냄새가 난다. 🍒 ❄출처 : 박목월 시집, 『난(蘭)ㆍ기타』, 신구문화사, 1959. 🍎 해설 '오라베!'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의 경상도 사투리! 머루처럼 투명한 밤하늘, 뽕나무에 달린 샛까만 오디, 그리고 울타리..

좋은시 2023.09.18

신달자 가을 들

신달자 가을 들. 가을 들판처럼 살아가자.가을 들/신달자삼천 번을 심고 추수하고 다시 삼천 번을 심고 추수한 후의 가을 들을 보라 극도로 예민해진 저 종이 한 장의 고요 바람도 다소곳하게 앞섶 여미며 난다 실상은 천년 인내의 깊이로 너그러운 품 넓은 가슴 나는(飛) 것의 오만이 어쩌다 새똥을 지리고 가면 먹물인가 종이는 습자지처럼 쏘옥 빨아들인다 이런 넉넉한 종이가 있나 다 받아 주는데도 단 한 발자국이 어려워 입 닫고 고요히 지나가려다 멈칫 서 떨고 있는 초승달. 🍒 ❄출처 : 신달자 시집, 『종이』, 민음사, 2011. 🍎 해설광화문글판이 2023년 가을을 맞아 새롭게 단장했다. 이번 광화문글판 가을편은 신달자 시인의 시 ‘가을 들’에서 가져왔다. 이 시는 가을 들판처럼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았다. 가..

좋은시 2023.09.12

반칠환 한평생

반칠환 한평생. 후회없는 삶을 살라.한평생/반칠환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도 미뤄 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래도 미뤄 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 평생이다. 🍒 ❄출처 :..

좋은시 2023.09.11

노천명 가을날

노천명 가을날. 소박한 서정정의 가을시. 가을날 /노천명 겹옷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산산한 기운을 머금고 드높아진 하늘은 비로 쓴 듯이 깨끗한 맑고도 고요한 아침 예저기 흩어져 촉촉이 젖은 낙엽을 소리 없이 밟으며 허리띠 같은가을날 /노천명 길을 내놓고 풀밭에 들어 거닐어 보다 끊일락 다시 이어지는 벌레 소리 애연히 넘어가는 마디마디엔 제철의 아픔을 깃들였다 곱게 물든 단풍 한잎 따 들고 이슬에 젖은 치맛자락 휩싸 쥐며 돌아서니 머언데 기차 소리가 맑다 🍒 ❄출처 : 노천명 시집, 『사슴의 노래』, 스타북스, 2020. 🍎 해설 *애연히: ‘구름이나 안개 따위가 짙게 낀 상태’를 말한다. 끊일락 다시 이어지는 풀벌레 울음이 안개처럼 자욱하다는 뜻이다. 정겨운 가을시다. 젖은 낙엽을 소리 없이 밟으며 외..

좋은시 2023.09.1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