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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697

문정희 순간

문정희 순간. 짧지만 의미가 깊은 사랑시. 순간 /문정희 찰랑이는 햇살처럼 사랑은 늘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버리고 그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했다 🍒 ❄출처 : 문정희 시집,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무죄이다』, 을파소, 1998. 🍎 해설 인생도 사랑도 성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용기와 타이밍이 중요하다. 사랑의 기회가 왔더라도 망설이다보면 바람처럼 날아가 버린다. 머뭇거리지 마라. 그러나 이 시가 찰나주의를 얘기하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시인은 한 순간에 뜨겁게 불타오르는 사랑, 그 순간이 지나면 가슴에 남겨질 차디찬 재의 무게에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랑을 꿈꾼다. 이 짧은 시에는 시인의 이와 같이 깊은고뇌의 사랑의 ..

좋은시 2023.07.30

문정희 흙

문정희 흙. 흙을 예찬한다. 흙 /문정희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좋은시 2023.07.29

나태주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나태주 자기를 함부러 주지 말아라. 나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뜨끔한 시.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나태주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아무 것에게나 함부로 맡기지 말아라. 술한테 주고 잡담한테 주고 놀이한테 너무 많은 자기를 주지 않았나 돌아다 보아라. 가장 나쁜 것은 슬픔한테 절망한테 자기를 맡기는 일이고 더욱 좋지 않은 것은 남을 미워하는 마음에 자기를 던져버리는 일이다. 그야말로 그것은 끝장이다. 그런 마음들을 모두 거두어 들여 기쁨에게 주고 아름다움에게 주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에게 주라. 대번에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세상은 젊어지다 못해 어려질 것이고 싱싱해질 것이고 반짝이기 시작할 것이다. 자기를 함부로 아무 것에나 주지 말아라. 부디 무가치하고 무익한 것들에게 자기를 맡기지 말아라. ..

좋은시 2023.07.25

김재진 사랑을 묻거든

김재진 사랑을 묻거든. 사랑을 묻거든 없다고 해라. 사랑을 묻거든 /김재진 사랑을 묻거든 없다고 해라. 내 안에 있어 줄어들지 않는 사랑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니 누가 사랑했냐고 묻거든 모르겠다고 해라. 아파할 일도 없으며 힘들어할 일도 없으니 누가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거든 나를 적시며 흘러가 버린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강물이라고 해라. 🍒 ❄출처 : 김재진 시집,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꿈꾸는 서재 2015. 🍎 해설 김재진 시인은 저마다 인생의 무게를 지고 삶의 길을 뚜벅뚜벅 걷는 이들을 격려하는 시를 많이 쓴다. 마음의 위안이 필요한 우리 시대 모든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따뜻한 등불이 되어주는 시를 쓴다. 자물쇠 하나 채워놓지 않은 방 안에 있으면서도 방문 열지 못한 채 갇혀 있는..

좋은시 2023.07.23

나태주 나팔꽃

나태주 나팔꽃. 삶이란 무엇인가? 나팔꽃 /나태주 담벼락 가파른 절벽을 벌벌 떨며 기어올라간 나팔꽃의 덩굴손이 꽃을 피웠다 눈부시다 성스럽다 나팔꽃은 하루 한나절을 피었다가 꼬질꼬질 배틀려 떨어지는 꽃 저녁 때 시들기 시작하더니 다음날 아침 자취조차 없어졌다 그러나 빈 자리 그 어떤 덩굴손이나 이파리도 비껴서 갔다 나팔꽃 진 자리 더욱 눈부시다 성스럽다 가득하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당신 생각하느라 꽃을 피웠을 뿐이에요』, 니들북, 2018. 🍎 해설 미라클 모닝! 내 삶의 열정과 희망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일상생활에 찌든 내가 새로운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매일 아침의 미라클 모닝 시간에는 희망과 인내의 끈을 붙잡아야 한다. 나팔꽃은 아침 한나절에만 핀다. 담벼락..

좋은시 2023.07.21

김남조 너를 위하여

김남조 너를 위하여. 진정한 사랑이란? 너를 위하여 /김남조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가만히 눈 뜨는 건 믿을 수 없을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 ❄출처 : 김남조 시집, 『가난한 이름에게』, 미래사, 1991. 🍎 해설 나만을 위한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으나 너를 위한 기도는 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나보다 더 너를 귀하게 여길 때..

좋은시 2023.07.18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모성애에 관한 유명한 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좋은시 2023.07.17

윤보영 가슴에 내리는 비

윤보영 가슴에 내리는 비. 연일 비가 오고 있다. 이 시를 읽고 한번 기분전환! 가슴에 내리는 비 /윤보영 비가 내리는 군요 내리는 비에 그리움이 젖을 까봐 마음의 우산을 준비했습니다 보고 싶은 그대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은 그대 찾아 나섭니다 그립다 못해 내 마음에도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 내리는 비에는 옷이 젖지만 쏟아지는 그리움에는 마음이 젖는군요 벗을 수도 없고 말릴 수도 없고. 비 내리는 날은 하늘이 어둡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면 맑은 하늘이 보입니다 그 하늘 당신이니까요. 빗물에 하루를 지우고 그 자리에 그대 생각 넣을 수 있어 비 오는 날 저녁을 좋아합니다 그리움 담고 사는 나는. 늦은 밤인데도 정신이 더 맑아지는 것을 보면 그대 생각이 비처럼 내 마음을 씻어주고 있나 봅니다. 비가 내립니..

좋은시 2023.07.16

신현림 슬픔 없는 앨리스는 없다

신현림 슬픔 없는 앨리스는 없다. 끈적거리는 여름철, 우리들의 삶을 응원하는 시. 슬픔 없는 앨리스는 없다 /신현림 매일매일이 축제이니 우울해하지 마 각설탕같이 움츠러들지 마 설탕 가루 같은 모래바람이 휘날린다 피로감이 끈적거린다 슬픔 없는 해는 없다 슬픔 없는 달도 없다 사랑한 만큼 쓸쓸하고 사람은 때에 맞게 오고 갈 테니 힘들어도 슬퍼하지 마 어디에 있든 태양 장미를 잃지 마 너를 응원하는 나를 잊지 마 🍒 ❄출처 : 신현림 시집, 『반지하 앨리스』, 민음사, 2017. 🍎 해설 인생의 성장통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딸아이, 청소년들, 걱정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여름철 응원 시다. 태양이 작렬하는 한 여름이다. 붉은 장미도 절정을 이룬다. 모래바람은 휘날리고 피로감이 끈적거린다. ..

좋은시 2023.07.14

김종삼 민간인

김종삼 민간인.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담겨있는 시.민간인/김종삼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 ❄출처 : 김종삼 시집, 『김종삼전집』, 나남, 2005. 🍎 해설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이 시에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담겨 있다. 때는 1947년. 한국전쟁이 터지기 3년 전. 38선이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을 때다. 북한에 살던 한 가족이 심야에 황해도 해주의 바다에서 조그만 배를 타고 월남을 시도한다. 사공이 명령했다. ‘작은 소리라도 나면 우린 다 죽는다.’ 젖먹이가 밤바다 바람이 차가워서 울음을 터뜨린다. 생사의 기로. 아기 입..

좋은시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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