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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638

이해인 친구야 너는 아니

이해인 친구야 너는 아니. 봄비가 내린다. 봄비처럼 고요하게 너에게 가고 싶은 내 마음. 친구야 너는 아니 /이해인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 줄 때 사실은 참 아픈거래 사람들끼리 사랑을 하고 이별하는 것도 참 아픈거래 친구야, 봄비처럼 아파도 웃으면서 너에게 가고픈 내 맘 아니. 향기 속에 숨겨진 내 눈물이 한 송이 꽃이 되는 걸 너는 아니. 우리 눈에 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지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서 눈물이 필요하다고.... 엄마가 혼자말로 하시던 얘기가 자꾸 생각이 나는 날. 봄비처럼 고요하게 아파도 웃으면서 너에게 가고 싶은 내 마음 너는 아니? 향기 속에 숨긴 나의 눈물이 한 송이 꽃이 되는 것..

좋은시 2024.04.15

신경림 매화를 찾아서

매화를 찾아서 /신경림 구름떼처럼 모인 사람들만 보고 돌아온다. 광양 매화밭으로 매화를 보러 갔다가 매화는 덜 피어 보지 못하고 그래도 섬진강 거슬러 올라오는 밤차는 좋아 산허리와 들판에 묻은 달빛에 취해 조는데 ​차 안을 가득 메우는 짙은 매화향기 있어 둘러보니 차 안에는 반쯤 잠든 사람들뿐 살면서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과 악취가 꿈과 달빛에 섞여 때로 만개한 매화보다도 더 짙은 향내가 되기도 하는 건지 ​내년 봄에 다시 한번 매화 찾아 나섰다가 매화는 그만 두고 밤차나 타고 올라올까. 🍒 ❄출처 : 신경림 시집, 『낙타』, 창비, 2008. 🍎 해설 전남 광양 매화를 보러 갔다 매화를 보지 못하고 돌아온다. 밤차의 차창 너머로는 달빛이 환하다. 승객들은 지쳐 곤한 잠에 들었다. 시인은 그때에 매화의 향..

좋은시 2024.04.09

이은상 오륙도

이은상 오륙도. 부산의 명물 오륙도. 이은상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 오륙도 /이은상 오륙도五六島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라 흐리락 맑으락 하매 몇 섬인 줄 몰라라. 취하여 바라보면 열 섬이 스무 섬이 안개나 자욱하면 아득한 먼 바다라 오늘은 비 속에 보매 더더구나 몰라라. 그 옛날 어느 분도 저 섬을 헤다 못해 헤던 손 내리고서 오륙도라 이르던가 돌아가 나도 그대로 어렴풋이 전하리라. 🍒 ❄출처 : 이은상 시집, 『노산시조선집』, 민족문화사, 1958. 🍎 해설 오륙도(五六島)는 부산의 명물이다. 오륙도를 이루는 6개 섬 이름도 참 아름답다. 세찬 풍파를 막아주는 방패섬, 소나무가 있는 솔섬, 갈매기 노리고 독수리가 모여드는 수리섬, 모양이 뾰족하게 생긴 송곳..

좋은시 2024.04.05

김영랑 언덕에 누워

김영랑 언덕에 누워. 언덕에 누우면 사모하는 마음이... 언덕에 누워 /김영랑 언덕에 바로 누워 아슬한 푸른 하늘 뜻없이 바래다가 나는 잊었읍네 눈물 도는 노래를 그 하늘 아슬하야 너무도 아슬하야 이 몸이 서러운 줄 언덕이야 아시련만 마음의 가는 웃음 한 때라도 없드라냐 아슬한 하늘 아래 귀여운 맘 질기운 맘 내 눈은 감기었데 감기었데 🍒 ❄출처 : 시문학 창간호(1930년 3월)에 발표. 김영랑 시집,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전집』, 미래사, 1991. 🍎 해설 *바래다가: 바라보다가 즐기운: 즐거운 이 시는 높은 하늘을 보니 눈물의 노래를 잊고 즐거운 마음이 생겼다는 순수 서정시다. 나는 언덕에 바로 누워 높고 높은 푸른 하늘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가 그 하늘이 너무도 높아 눈물이 핑도는 노..

좋은시 2024.04.02

백석 수라

백석 수라. 일제 강점기 하 가족공동체 해체의 비극. 수라 /백석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잰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삭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 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

좋은시 2024.04.01

오규원 내가 꽃으로 핀다면

오규원 내가 꽃으로 핀다면. 소박하면서도 겸손하게 살고 싶은 꿈. 내가 꽃으로 핀다면 /오규원 내가 만약 꽃이라면 어디에서 피어야 할까 꽃밭도 없는 우리 집 창문 밑에서 토끼풀과 섞여 있다가 한참 자라서 벽을 타고 올라 창문을 똑 똑 똑 두드리며 피어야할까 산골짜기 개암나무와 망개나무의 가지와 잎 사이로 다람쥐처럼 잠깐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가 숨겼다가 하면서 피어야 할까 아니면 강변 바위 그늘에서 새끼를 키우는 물새와 함께 물소리를 들으며 조약돌처럼 물새알처럼 작지만 동그랗게 피어야 할까 🍒 ❄출처 : 오규원 시집, 『오규원 시전집』, 문학과지성사, 2017. 🍎 해설 오규원 시인(1941~2007년, 향년 66세)은 아름다운 서정시를 많이 남겼다. 아직도 팬이 많다. 이 시는 시인의 인생관이 살짝 비쳐..

좋은시 2024.03.30

전봉건 피아노

전봉건 피아노. 인상주의 화가의 추상화. 피아노 /전봉건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 ❄출처 : 전봉건 시집, 『전봉건 시선』,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2. 🍎 해설 이 작품은 신선하고 생기 있는 피아노 소리의 감각과 이에 대한 감동을 대담한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한 폭의 추상화 같은 시이다. 1연에서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인의 손가락을 물고기가 쏟아지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그 피아노의 선율이 들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2연에서 바다의 모습에 다가선다. 가장 신나게 일고 있는 파도를 집어든다. 이것이 ..

좋은시 2024.03.28

신석정 산산산

신석정 산산산. 올해에는 산을 좀 더 자주 바라다보자. 산산산 /신석정 지구엔 돋아난 산이 아름다웁다. 산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다웁다. 산에는 아무 죄 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더 아름다웁다. 언제나 나도 산이 되어 보나 하고 기린같이 목을 길게 늘이고 서서 멀리 바라보는 산 산 산 🍒 ❄출처 : 『신석정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 해설 시인은 생전에 자신의 서재에 ‘침묵은 산의 얼굴이니라. 숭고는 산의 마음이니라. 나 또한 산을 닮아 보리라.’는 구절을 써 붙여 놓고 이윽히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의 좌우명도 知在高山流水, ‘뜻이 높은 산과 흐르는 물에 있다’이다. 시인의 산은 ‘한사코/높아서 아름다웁’고, ‘아무 죄 없는 짐승과/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모여서 ..

좋은시 2024.03.22

나태주 꽃잎

나태주 꽃잎. 촌철의 반전 감성의 서정시. 꽃잎 /나태주 활짝 핀 꽃나무 아래서 우리는 만나서 웃었다 눈이 꽃잎이었고 이마가 꽃잎이었고 입술이 꽃잎이었다 우리는 술을 마셨다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 그 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돌아와 사진을 빼보니 꽃잎만 찍혀 있었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지혜, 2015. 🍎 해설 화창한 봄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들이 나타난다. 활짝 핀 꽃나무 아래에서 키스도 하고 술도 함께 마신다. 그러나 이제 사진만 남았다. 비록 헤어졌지만 꽃잎 하나하나 속에 사랑의 슬픔과 그리움이 애잔하게 남아 있다. 촌철의 반전 감성의 서정시다. 활짝 핀 꽃나무 아래서 우리는 만나서 웃었다 눈이 꽃잎이었고 이마가 꽃잎이었고 입술이 꽃..

좋은시 2024.03.21

이기철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이기철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휴식이 필요하다. 벚꽃 그늘 아래에 앉아 보자.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 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 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 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 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 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 놓고 구름처럼 하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 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 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 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 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 통장도 벗어 놓고 벚..

좋은시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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