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머슴 대길이. 고운 시인의 민중시 중 성공작.
머슴 대길이
/고운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
지게작대기 뉘어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루루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
찬 겨울 눈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 새우는 불빛이었지요 🍒
❄출처 : 고운 시집, 『만인보(萬人譜) 제1권』, 창작과비평사. 1986.
🍎 해설
고은은 연작시 ≪만인보(萬人譜)≫를 손바닥만 한 창 하나 없이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는 무덤과 같은 감방에서 구상했다.(김대중 내란죄 등 민주화운동으로 옥살이) ≪만인보≫는 1986~1989년에 걸쳐 쓰인 총 9권 3천여 편의 시로 구성되었으며, 이 시를 두고 시인 자신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이라고 밝혔다.
이 시는 전형적인 민중시라고 할 수 있다. 만인보에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는 민중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시의 어조는 마치 시골 사랑방에서 듣는 옛날이야기처럼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이 시에서 시인은 가난하지만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했던 ‘대길이’를 통해 민중의 건강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에는 정치 삐라와 겉은 선동성은 없는 듯 하다. 이 시는 ‘대길이’라는 인물을 통해 민중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드러낸 민중시의 성공작이라고 평가된다.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찬 겨울 눈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 새우는 불빛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