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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당신의 눈물

김혜순 당신의 눈물. 당신의 눈속에 고인 물 한 꾸러미는 내 것이기도.당신의 눈물 /김혜순당신이 나를 스쳐보던 그 시선그 시선이 멈추었던 그 순간거기 나 영원히 있고 싶어물끄러미물꾸러미당신 것인 줄 알았는데알고 보니 내 것인물 한 꾸러미그 속에서 헤엄치고 싶어잠들면 내 가슴을 헤적이던물의 나라그곳으로 잠겨서 가고 싶어당신 시선의 줄에 매달려 가는조그만 어항이고 싶어 🍒 ❄출처 : 김혜순 시집, 『당신의 첫』, 문학과지성사, 2008. 🍎 해설사랑하는 대상의 눈길 속에 머무르고 싶은 사랑을 간절하게 노래하고 있다.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시선 안에서 꿈을 꾸면서,물끄러미 스쳐보는 시선 안에서 잊히지 않는 존재로 남고 싶어 한다. 당신의 눈 속에 고인 물 한 꾸러미를 바라보는 그 순간에 내가 보이니그..

좋은시 2025.05.31

문정희 이별 이후

문정희 이별 이후. 사랑이 사소한 일이 되어가는 시대는 슬프다.이별 이후/문정희너 떠나간지세상의 달력으론 열흘이 되었고내 피의 달력으론 십년이 되었다 나 슬픈 것은네가 없는데도밤 오면 잠들어야 하고끼니 오면입 안 가득 밥알 떠넣는 일이다 옛날 옛날그 사람 되어가며그 사람 되어가며그냥 그렇게 너를 잊는 일이다 이 아픔 그대로 있으면그래서 숨막혀 나 죽으면원도 없으리라 그러나나 진실로 슬픈 것은언젠가 너와 내가이 뜨거움 까맣게잊는다는 일이다 🍒 ❄출처 : 문정희, 『사랑의 기쁨: 문정희 시선집』, 시월, 2010. 🍎 해설이별 후에도 오히려 잠 잘 자고, 밥 잘 먹고, 아무 일 없었던 듯 태연하게 살아가는 시대는 슬프다. 헤어진 후 사랑했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일은 정말 슬픈 일이다. 그런 시..

좋은시 2025.05.26

나희덕 땅끝

나희덕 땅끝. 인간은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희망과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땅끝 /나희덕 산 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네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는 나비를 쫓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

좋은시 2025.05.24

오은 나는 오늘

오은 나는 오늘. 오늘의 나를 매일 성찰해 보는 시나는 오늘/오은나는 오늘 토마토앞으로 걸어도 나뒤로 걸어도 나꽉 차 있었다 나는 오늘 나무햇빛이 내 위로 쏟아졌다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위로 옆으로 사방으로 자라고 있었다 나는 오늘 유리금이 간 채로 울었다거짓말처럼 눈물이 고였다진짜 같은 얼룩이 생겼다 나는 오늘 구름시시각각 표정을 바꿀 수 있었다내 기분에 취해 떠다닐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종이무엇을 써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텅 빈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사각사각나를 쓰다듬어 줄 사람이 절실했다 나는 오늘 일요일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오늘 그림자내가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잘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나는 오늘 공기네 옆을 맴돌고 있었다아무도 모르게너를 살아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나는 오늘 ..

좋은시 2025.05.22

김동환 강이 풀리면

김동환 강이 풀리면. 기다림과 임을 그리워하는 미학의 서정적 융합.강이 풀리면 /김동환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배가 오면은 임도 탔겠지임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임이 오시면 이 설움도 풀리지동지섣달에 얼었던 강물도제멋에 녹는데 왜 아니 풀릴까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 ❄출처 : 김동환, 『김동환 시집』, 온이퍼브, 2014. 🍎 해설강가의 기다림이란 주제는 한 북방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강가에서의 기다림이란 우리 민족 전체의 모티브였다. 사람들은 언제고 시간이 흘러 좋은 소식이 오고, 설움이 풀리기를 기원했다. 특히 겨울 끝자락에서는. 혹독한 겨울이 가고 강물이 풀렸으니 배는 오리라.배가 와야 임이 오시겠고,하다못해 기별이라도 오리라. 한국의 많은 명곡들이 김동환..

좋은시 2025.05.18

허수경 라일락

허수경 라일락. 지난 일은 잊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라일락/허수경어떡하지,이 봄을 아리게살아버리려면? 신나게 웃는 거야, 라일락내 생애의 봄날 다정의 얼굴로날 속인 모든 바람을 향해신나게 웃으면서 몰락하는 거야 스크랩북 안에 든 오래된 사진이정말 죽어버리는 것에 대하여웃어버리는 거야, 라일락,아주 웃어버리는 거야 공중에서는 향기의 나비들이 와서더운 숨을 내쉬던 시간처럼 웃네라일락, 웃다가 지네나의 라일락 🍒 ❄출처 : 허수경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사, 2016. 🍎 해설지나간 일은 잊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자는 시적 메시지가 있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활짝 피어나 향기를 내뿜는 라일락은 희망의 상징이다. "서로에게 '괜찮다' 응원해주는 시간이 필..

좋은시 2025.05.16

문정희 산티아고 순례길

문정희 산티아고 순례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 명시.산티아고 순례길/문정희나를 만날 수 있는 것은나뿐인가하늘 아래 가득한 질문 하나 🍒 ❄출처 : 문정희 시집, 『그 끝은 몰라도 돼』, 아침달, 2025. 🍎 해설유명한 포르트칼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찾는 전 세계 여행자 중 한국인이 숫자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한국인들도 아주 좋아하는 성지 순례길이다. 수백㎞를 걸어 종착점에 도달한 이에게 가장 절박한 언어가 무얼까,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은가, 이런 질문이다. ‘내가 누구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지?’하는 질문을 갖게 된다. 이때 이 시가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시 대답이다. 이 시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종착지의 한 대학 정원에 돌로 만든 시비로 세워져 있다. 나를 만날 ..

짧은 시 2025.05.15

마종기 축제의 꽃

마종기 축제의 꽃. 시든 꽃도 따뜻하다.축제의 꽃/마종기가령 꽃 속에 들어가면따뜻하다수술과 암술이바람이나 손길을 핑계 삼아은근히 몸을 기대며살고 있는 곳. 시들어 고개 숙인 꽃까지따뜻하다임신한 몸이든 아니든혼절의 기미로 이불도 안 덮은 채연하고 부드러운 자세로잠들어버린 꽃 내가 그대에게 가는 여정도따뜻하리라.잠든 꽃의 가는 숨소리는이루지 못한 꿈에 싸이고이별이여, 축제의 표적이여,애절한 꽃물이 만발하게우리를 온통 함께 적셔주리라 🍒 ❄출처 : 마종기 시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문학과지성사, 2002. 🍎 해설한창 피어있는 꽃 속뿐만 아니라 시든 꽃 속도 여전히 따뜻하다는 시적 감수성과 통찰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랑이 끝나고 슬픔마저 잠들어버렸다 하더라도, 거기 여전히 혼절..

좋은시 2025.05.14

박소란 주소

박소란 주소. 버스 종점에 사는 사람들.주소/박소란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 늘 안간힘으로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 닿는 꼭대기 그러니 모두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 ❄출처 : 박소란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창비, 2015. 🍎 해설서울에서도 변두리 그러고도 산비탈 꼭대기……, 종점, 가난했다는 말이다. 모두 내게서 서둘러 하차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배제당했다고 느껴도 좋다. 자신의 삶을 위한 길일때엔 슬며시 비켜 있어도 좋다. 오는 저녁의 종점은 내일 아침엔 시발점이다. 자신의 중요한 가치를 돌아 보면서 살면 된다.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 늘 안간힘으로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 닿는 꼭대기 그러니 모두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짧은 시 2025.05.12

안도현 땅

안도현 땅. 아들에게 땅을 물려줘야 할까?땅/안도현내게 땅이 있다면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때가 오면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라빛 나팔 소리가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내게 땅이 있다면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 ❄출처 :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2011. 🍎 해설내 자식들에게 부의 상징인 비싼 땅을 물려 주는 것 보다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무한한 가능성을 물려주고 싶다. 땅이 있다면 나팔꽃을 심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고' , 나팔꽃이 지고 난 후 꽃 진 자리에 맺힌 꽃..

좋은시 202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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