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짧은 시 334

박목월 봄비

박목월 봄비. 봄비 시름을 잊게하는 봄시. 봄비 /박목월 조용히 젖어드는 초(草)지붕 아래서 왼종일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월곡령(月谷嶺) 삼십리 피는 살구꽃 그대 사는 강마을의 봄비 시름을 장독뒤에 더덕순 담밑에 모란움 한나절 젖어드는 흙담안에서 호박순 새넌출이 사르르 펴난다 🍒 ❄출처 : 박목월 시집, 『박목월 시전집』, 이남호 엮음, 민음사, 2003. 🍎 해설 봄비는 조용히 내린다. 강마을에서 봄비 오는 내내 한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리워한다. 그리움에 사무쳐 바라본 곳에는 더덕순과 모란움의 약동이 있다. 집을 둘러막은 흙담 아래에는 호박순이 뻗어가고 있다. 특히 '호박순 새넌출이 사르르 펴난다'는 구절에서는 호박순 새넌출이 피어나는 소리가 사르르 들리는 듯하고 피어나는 그 움직임이 눈에 보이는 것..

짧은 시 2024.04.16

김용택 짧은 이야기

김용택 짧은 이야기. 금사과, 그 속에는 짧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짧은 이야기 /김용택 사과 속에는 벌레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사과는 그 벌레의 밥이요, 집이요, 옷이요, 나라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벌레의 집과 밥과 옷을 빼앗고 나라에서 쫓아내고 죽였습니다. 누가 사과가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정했습니까. 사과는 서러웠습니다. 서러운 사과를 사람들만 좋아라 먹습니다. 🍒 ❄출처 : 김용택 시집, 『그 여자네 집』, 창작과비평사, 1998. 🍎 해설 벌레에게 사과는 ‘밥, 잠, 옷이자 나라’다. 사람들은 사과를 독차지하기 위해 벌레를 쫓아내고 죽이는 것을 당연시한다. 사과나 사과벌레를 인간과 더불어 공생하는 존재로 생각할 수 없을까? 시인은 사과를 통해 사람을 불러 냄으로써 사람들의 자연친화적인 삶을..

짧은 시 2024.03.26

고은 꽃보다 먼저

고은 꽃보다 먼저. 그대의 마음이 봄을 가져 온다. 꽃보다 먼저 /고은 아기 노루귀 꽃 아직 멀었니? 산수유 열흘 굶은 가지 너 산수유 꽃도 아직 멀었니? 손 시려라 손 시려라 지금 어린 날벌레 한 녀석이 먼저 큰 봄을 가지고 오누나. 🍒 ❄출처 : 고은 시집, 『허공』, 창비, 2008. 🍎 해설 봄이 오고 있다. 봄은 노루귀 꽃이나 산수유 꽃이 가져 오는 것이 아니다. 날벌레 한 녀석이 먼저 큰 봄을 가져 온다. 마찬가지로 그대의 마음이 정말 큰 봄을 가져 온다. 아기 노루귀 꽃 아직 멀었니? 산수유 열흘 굶은 가지 너 산수유 꽃도 아직 멀었니? 손 시려라 손 시려라 지금 어린 날벌레 한 녀석이 먼저 큰 봄을 가지고 오누나.

짧은 시 2024.03.25

김기택 맨발

김기택 맨발. 속박에서 벗어나 맨발이 되는 해방감과 자유. 맨발 /김기택 집에 돌아오면 하루종일 발을 물고 놓아주지 않던 가죽구두를 벗고 살껍질처럼 발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던 검정 양말을 벗고 발가락 신발 숨쉬는 살색 신발 투명한 바람 신발 벌거벗은 임금님 신발 맨발을 신는다 🍒 ❄출처 : 김기택 시집, 『사무원』, 창작과비평사, 1999. 🍎 해설 하루종일 구두 속에 속박돼 있던 발이 해방되는 순간은 집에 돌아와 구두를 벗는 순간이다. 하루종일 속박에서 벗어나 비로소 편안함과 자유를 얻는 순간이다. ‘맨발을 신발처럼 신는다’는 것은 어린이의 상상력이다. 가끔은 이런 어린이의 상상력을 가슴에 품고 전정한 자유인으로서의 꿈을 펼쳐보는 것이 필요하다. 집에 돌아오면 하루종일 발을 물고 놓아주지 않던 가죽구..

짧은 시 2024.03.23

이은상 개나리

이은상 개나리. 위트가 있는 시.개나리/이은상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라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기 어려워서 🍒 ❄출처 : 이은상 시집, 『고지가 바로 저긴데』, 시인생각, 2013. 🍎 해설이 시는 우선 재치와 위트가 있다.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기 어려워서’. 매화가 질 무렵에 개나리가 피기 시작하고 봄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매화가 졌다 하여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말라. 개나리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매화가 질 무렵에 개나리가 핀다. 매화가 졌다고 좌절하지 말라. 봄날이 간 것은 아니다.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라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기 어려워서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짧은 시 2024.03.12

서윤덕 사랑의 무게

서윤덕 사랑의 무게. 사랑의 무게를 잴 수 있을까요? 사랑의 무게 /서윤덕 사랑은 때로 가볍고 가벼워서 새털구름같고 사랑은 때로 너무 무거워서 집채만한 바위같고 🍒 ❄출처 : 서윤덕 시집, 『그 맘 알아』, 솔과학, 2024. 🍎 해설 각 기관에서는 시인의 짧은 시를 내거는 글판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도 종종 한다. 서윤덕 시인은 SNS 시인이지만 광고 카피라이터의 재능을 풍부하게 갖고 있는 듯하다. 롯데리아의 “니들이 게맛을 알아?”, 경동보일러의 “여보 아버님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1999)와 같은 광고 카피는 아무나 창작할 수 잇는 게 아니다. 시인의 타고 난 재능이 부럽다. 사랑의 무게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 시인은 사랑의 정의에 대해 함축성 있는 촌철의 시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시의 ..

짧은 시 2024.03.11

고은 순간의 꽃 10 <사진관>

고은 순간의 꽃 10 . 세계 최저의 합계 출산율 시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 순간의 꽃 10 /고은 사진관 진열장 아이 못 낳는 아낙이 남의 아이 돌사진 눈웃음지며 들여다본다 🍒 ❄출처 : 고은 시집, 『순간의 꽃』, 문학동네, 2001, 18쪽. 🍎 해설 고은 시인의 짧고 좋은 시중 유명한 시의 하나다. 고은 시인은 자신이 쓴 185편의 짧은 시를 시의 제목은 없이 “순간의 꽃”이라는 시집에 묶어 펴냈다. 이 블로그에 소개하는 ‘순간의 꽃 10’라는 제목(번호 10 부여)과 부제 은 내가 임의로 붙인 것이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서. 한 유명한 모차르트 음악연구가는 모차르트의 곡을 하나 하나 해설한 후, 곡마다 자신의 이름 첫 자인 K를 붙여 연대순으로 K123 번호를 붙였다. 그걸 모방했다. 대한민..

짧은 시 2024.03.05

박목월 도화 한 가지

박목월 도화 한 가지. 풋풋한 사랑의 연정. 도화(桃花) 한 가지 /박목월 물을 청하니 팔모반상에 받쳐들고 나오네 물그릇에 외면한 낭자의 모습. 반(半)은 어둑한 산봉우리가 잠기고 다만 은은한 도화 한그루 한 가지만 울넘으로 령(嶺)으로 뻗쳤네. 🍒 ❄출처 : 박목월 시집, 『박목월 시전집』, 민음사, 2007. 🍎 해설 *도화(桃花): 복숭아꽃 * 령(嶺): 고개. 산고개 길 가던 한 청년이 산골 어느 집에 들러 물 한 그릇을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그 집 젊은 처녀는 팔모반상에 조심 조심 물을 내온다. 그 청년은 목을 축이기 전에 물그릇을 들여다보는데 거기에는 반쯤은 저물 때가 된 어둑어둑한 산봉우리가 비쳐 있다. 그리고 또 한쪽에는 은은한 분홍빛 복숭아나무 한그루, 그 나무 가지 중 한 가지만 울..

짧은 시 2024.03.04

이성선 귀를 씻다

이성선 귀를 씻다. 당신에게서는 山향기가 나는가요? 귀를 씻다 ―山詩 2 /이성선 산이 지나가다가 잠깐 물가에 앉아 귀를 씻는다 그 아래 엎드려 물을 마시니 입에서 산(山)향기가 난다 🍒 ❄출처 : 이성선 시집, 『산시』, 시와, 2013. 🍎 해설 산 속 호수가에서 보면 묵직한 산이 구름과 함께 수면에 비친다. 산이 움직인다. 산이 물가에 앉아 세파를 씻어 내려는 듯 귀를 씻는다. 나도 귀를 씻은 후에 입을 수면에 대고 맑게 솟은 물을 마신다. 입안에서는 싱그러운 산山의 냄새가 난다. 산의 향기는 아마 헛된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 겸허한 사람의 향기가 아닐까? 당신에게서는 어떤 향기가 나는가? 짧게 써서 하늘의 침묵에 닿을 수 있기를 기원했던 시인은 자연과의 대화 속에 동양적 달관의 세계를 추구했다..

짧은 시 2024.02.22

이성선 북두칠성

이성선 북두칠성. 사랑하는 그녀가 마음을 열어 주지 않을 때.북두칠성/이성선누가 저 높은 나무 끝에 열쇠를 걸어 놓았나. 저녁 풀잎 사이 샛길로 몰래 가서 저 열쇠를 내려 사랑하는 사람의 방문을 열라는 것인가. 밤하늘에 그려진 저 손을 가져다가 차가운 그녀의 가슴을 열라는 것인가. 🍒 ❄출처 : 이성선 시집, 『빈 산이 젖고 있다』, 미래사, 1991. 🍎 해설그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좀처럼 가슴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날도 그녀를 생각하며 밤길을 걸었다. 밤 하늘을 보니 일곱 개의 북두칠성이 반짝반짝 빛난다. 보통 사람 눈에는 국자로 보이지만 북두칠성은 꼭 열쇠를 닮기도 했고 손을 닮기도 했다. 저 북두칠성이 그녀의 방문을 여는 열쇠가 되고 또 그녀의 가슴을 여는 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짧은 시 2024.02.1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