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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343

나태주 종이컵

나태주 종이컵. 단 한 줄짜리 짧은 시.종이컵/나태주너무 쉽게 버려 미안하구나 🍒 ❄출처: 나태주 시집,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 밥북, 2018. 🍎 해설단 한 줄 짜리 시로 눈길을 모은다. 쉽고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다.  시를 다른 장르의 문학과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함축성과 여백의 미의 매력을 잘 담고 있는 짧은 시다. 시의 생명은 압축, 리듬, 시적 고뇌에 있다. 놀라웁게도 이 한 줄짜리 짧은 시는 압축, 리듬, 그리고 시적 고뇌를 다 갖추고 있다. 너무 쉽게 버려 미안하구나

짧은 시 2024.12.18

안도현 겨울 편지

안도현 겨울 편지. 사랑은 더디게 온다. 이게 겨울의 메시지다.겨울 편지/안도현흰 눈 뒤집어쓴 매화나무 마른 가지가부르르 몸을 흔듭니다 눈물겹습니다머지않아꽃을 피우겠다는 뜻이겠지요 사랑은 이렇게 더디게 오는 것이겠지요 🍒 ❄출처 : 안도현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 푸른숲, 1991. 🍎 해설머지않아 꽃을 피우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인가, 흰 눈 뒤집어쓴 매화나무 마른 가지가 부르르 몸을 흔든다.  사랑이란 이렇게 더디게 온다. 매화나무가 힘든 겨울을 이겨내고 어렵게 새 잎을 돋아내듯 사랑은 힘들게 온다.  그러나 사랑은 봄을 앞 둔 겨울의 매화나무처럼 인고의 계절을 거치면 값지게 온다.  흰 눈 뒤집어쓴 매화나무 마른 가지가부르르 몸을 흔듭니다 눈물겹습니다머지않아꽃을 피우겠다는 뜻이겠지요 사..

짧은 시 2024.11.28

고재종 파안

고재종 파안. 옛날의 농촌 주막과 같은 훈훈한 인정이 그립다.파안/고재종마을 주막에 나가서단돈 오천 원 내 놓으니소주 세 병에두부찌게 한 냄비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그것 나눠 자시고모두들 볼그족족한 얼굴로 허허허허허허큰 대접 받았네그려 🍒 ❄출처 : 고재종 시집, 『날랜 사랑』, 창작과비평사, 1995. 🍎 해설*파안 破顔 : 얼굴이 찢어질 정도로 활짝 웃는 것.1995년 경의 농촌 주막 풍경이다. 당시 농사를 짓던 시인이 단돈 5,000원을 내놓는다.  두부찌개 한 냄비에 소주 세 병이면 노인들 몇몇이 그것을 실컷 나눠 마신다. 그리고는 모두들 불그족족한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허허허, 허허허, 큰 대접 받었네 그려!” 라며 몸 둘 바 모르게 칭찬을 했다. 참으로 소박한 모습이다. 단돈 5,000..

짧은 시 2024.11.25

이영광 우물

이영광 우물. 우물이 우리를 올려다 봤다.우물/이영광우물은,동네 사람들 얼굴을 죄다 기억하고 있다 우물이 있던 자리우물이 있는 자리 나는 우물 밑에서 올려다보는 얼굴들을 죄다기억하고 있다 🍒 ❄출처 : 이영광 시집, 『나무는 간다』, 창비, 2013. 🍎 해설옛날 시골 동네에는 두레박으로 식수를 푸는 공동 우물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물을 긷기 위해 우물에 모여들었다. 우물가에서 사람들은 이웃집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교류를 했다. 우물은 사람들의 젖줄이었고, 마을의 눈동자였고. 마을 사람들의 역사였다.사람들은 물을 긷다가 문득 우물물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우물을 내려다본 게 아니었다. 우물이 우리를 올려다봤다. 우리의 상처와 고통과 치욕, 그리고 헌신과 ..

짧은 시 2024.11.20

최하림 이슬방울

최하림 이슬방울. 말간 세계와 호기심 많은 동심.이슬방울/최하림이슬방울속의말간세계우산을쓰고들어가봤으면 🍒 ❄출처 : 최하림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 창비, 1976. 🍎 해설이 시에는 티 없이 맑은 ‘말간 세계’ 가 있다. 별의별 호기심으로 가득찬 순수한 동심도 들어 있다.  우산을 쓰고 이슬방울 속으로 들어가는 마음이 영롱하다.당신도 오늘 “말간 하루”, 그리운 사람과 함께 우산을 쓰고 이슬방울 속으로 들어가 보는 하루를 보내시기 바란다.  이슬방울속의말간세계우산을쓰고들어가봤으면

짧은 시 2024.11.08

박성우 매우 중요한 참견

박성우 매우 중요한 참견. 사람살이의 온기가 느껴진다.매우 중요한 참견/박성우호박 줄기가 길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있다 느릿느릿 길을 밀고 나온 송앵순 할매가 호박 줄기 머리를 들어 길 바깥으로 놓아주고는 짱짱한 초가을 볕 앞세우고 깐닥깐닥 가던 길 간다 🍒 ❄출처 : 박성우 시집,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 창비. 2024. 🍎 해설시골 길을 가던 할머니의 참견은 딱한 사정에 처해 있는 남을 도우려는 마음과 착한 마음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참견이다. 호박 줄기가 길의 위로 기어가는 것을 본 할머니는 넝쿨을 들어서 길 밖으로 뻗어갈 방향을 돌려놓는다. 매우 중요한 참견이다. 그리고 매우 아름다운 참견이다. 호박 줄기가 기어가는 모양은 ‘성큼성큼’이다. 반면에 할머니의 발걸음은 ‘느릿느릿’이다. 아름다운..

짧은 시 2024.11.03

한강 회복기의 노래

한강 회복기의 노래.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짧은 시. 작가가 노래하는 삶의 용기.회복기의 노래/한강이제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얼굴에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눈을 감고 있었다가만히 🍒 ❄출처 :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 해설어떤 고통과 절망에 허우적거릴 때, 다시 살아갈 용기를 내기 힘들 때가 있다. 대문호 괴테는 이럴 경우, ‘용기’라는 제목의 시에서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맑은 물, 그리고친구들의 사랑이것만 있다면 낙심하지 마라.”고 노래하였다. 그렇다. 절망과 낙심에서 회복하는 길은 “얼굴에 자연스럽게 비추는 한 줄기 햇빛”의 고마움을 아는 일이다. 삶은 햇빛처럼 자연스럽고 친근하고 고맙고 또한 장엄한 일이다..

짧은 시 2024.10.23

나태주 호수

나태주 호수. 짧지만 여운이 남는 사랑시.나태주/호수네가 온다는 날마음이 편치 않다아무래도 네가 얼른와줘야겠다바람도 없는데호수가 일렁이는 건바로 그 때문이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 밥북, 2018. 🍎 해설그리운 사람이 온다는 기별을 받은 후로 뭔지 조마조마하고 애가 탄다. 그 마음이 호수와 같다. 바람이 한 점 없는데도 호수의 수면에 잔물결이 일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나의 초조한 마음과 온다는 사람에 대한 나의 그리운 마음때문이다.  짧지만 여운이 남는 아름다운 사랑시다. 네가 온다는 날마음이 편치 않다아무래도 네가 얼른와줘야겠다바람도 없는데호수가 일렁이는 건바로 그 때문이다.마음이 편치 않다아 네가 얼른와줘야겠다바람도 없는데호수가 일렁이는 바로 그 때문이

짧은 시 2024.09.05

안도현 봄비

안도현 봄비. 봄비가 내리는 이유는? 봄비 /안도현 봄비는 왕벚나무 가지에 자꾸 입을 갖다댄다 왕벚나무 가지 속에 숨은 꽃망울을 빨아내려고 🍒 ❄출처 : 안도현 시집, 『그리운 여우』, 창비, 1997. 🍎 해설 봄비는 왕벚나무 가지에 자꾸만 입을 갖다 댄다. 봄비는 왕벚나무 가지 속에 숨은 꽃망울을 빨아내려고 한다. 겨우내 추위에 웅크리고 있던 꽃망울은 봄비의 키스 세례를 받고 밖으로 나갈 원동력을 얻는다. 이 세상은 홀로 살 수 없다. 상부상조다. 봄비는 왕벚나무 가지에 자꾸 입을 갖다댄다 왕벚나무 가지 속에 숨은 꽃망울을 빨아내려고

짧은 시 2024.04.23

박목월 봄비

박목월 봄비. 봄비 시름을 잊게하는 봄시. 봄비 /박목월 조용히 젖어드는 초(草)지붕 아래서 왼종일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월곡령(月谷嶺) 삼십리 피는 살구꽃 그대 사는 강마을의 봄비 시름을 장독뒤에 더덕순 담밑에 모란움 한나절 젖어드는 흙담안에서 호박순 새넌출이 사르르 펴난다 🍒 ❄출처 : 박목월 시집, 『박목월 시전집』, 이남호 엮음, 민음사, 2003. 🍎 해설 봄비는 조용히 내린다. 강마을에서 봄비 오는 내내 한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리워한다. 그리움에 사무쳐 바라본 곳에는 더덕순과 모란움의 약동이 있다. 집을 둘러막은 흙담 아래에는 호박순이 뻗어가고 있다. 특히 '호박순 새넌출이 사르르 펴난다'는 구절에서는 호박순 새넌출이 피어나는 소리가 사르르 들리는 듯하고 피어나는 그 움직임이 눈에 보이는 것..

짧은 시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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