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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335

이성선 북두칠성

이성선 북두칠성. 사랑하는 그녀가 마음을 열어 주지 않을 때.북두칠성/이성선누가 저 높은 나무 끝에 열쇠를 걸어 놓았나. 저녁 풀잎 사이 샛길로 몰래 가서 저 열쇠를 내려 사랑하는 사람의 방문을 열라는 것인가. 밤하늘에 그려진 저 손을 가져다가 차가운 그녀의 가슴을 열라는 것인가. 🍒 ❄출처 : 이성선 시집, 『빈 산이 젖고 있다』, 미래사, 1991. 🍎 해설그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좀처럼 가슴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날도 그녀를 생각하며 밤길을 걸었다. 밤 하늘을 보니 일곱 개의 북두칠성이 반짝반짝 빛난다. 보통 사람 눈에는 국자로 보이지만 북두칠성은 꼭 열쇠를 닮기도 했고 손을 닮기도 했다. 저 북두칠성이 그녀의 방문을 여는 열쇠가 되고 또 그녀의 가슴을 여는 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짧은 시 2024.02.19

복효근 별똥별

복효근 별똥별. 당신의 자서전은 무엇인가요? 별똥별 /복효근 생生과 사死를 한 줄기 빛으로 요약해버리는 어느 별의 자서전 🍒 ❄출처 : 복효근 시집, 『꽃 아닌 것 없다』, 천년의시작, 2023. 🍎 해설 복효근 시인은 짧은 시의 창작을 시도하고 있다. 짧지만 긴 여운, 의표를 찌르는 해학과 통찰의 시편들은 인터넷 시대에 시가 어떻게 사람들의 가슴에 스밀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문학적 소통의 시금석이자 내비게이션이다. 재치문답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시 언어의 경제성과 삶을 관통하는 통찰이 짧은 시에 서정적으로 압축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짧은 시도 삶과 세계를 통찰하는 시적 직관이 잘 디자인 되어 있다. 모든 사물, 모든 생명에는 자서전이 있다. 내 삶을 뒤돌아 본다. 또 내 여생을 생각해 본다. 내 생..

짧은 시 2024.02.17

이현승 바람 부는 저녁

이현승 바람 부는 저녁. 뒤집어지는 전복의 미학. 바람 부는 저녁 /이현승 산책로에서 갈대의 간격을 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촘촘하게 서걱이는 갈대들 눈물을 훔쳐 주기 좋은, 부대끼기 좋은, 흐느끼는 사람의 곁에서 가만히 외면하기 좋은 간격이 있다. 🍒 ❄출처 : 『서정시학 2023년 겨울호』, 서정시학, 2023. 🍎 해설 이 짧은 시에는 기승전결의 논리가 있다. 뒤집어지는 전복의 미학과 번뜩임의 섬광 사이에 통찰과 서정의 뿌리를 그대로 응축하고 있다. 이 짧은 시에 갈대의 다양한 풍경을 담았다. 갈대의 간격이 눈물을 훔쳐주기 좋은 간격이라고 하면서 흐느끼는 사람의 곁에서 가만히 외면하기 좋은 간격이 있다고 노래한다. 아름다운 전복의 미학이 있다. 시는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시를 생활 속에서..

짧은 시 2024.02.13

김상옥 어느 날

김상옥 어느 날. 사무쳤던 일도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어느 날 /김상옥 구두를 새로 지어 딸에게 신겨주고 저만치 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것네. 🍒 ❄출처 : 김상옥 시집, 『초적』, 수향서헌, 1947. 🍎 해설 아버지가 마련해준 새 구두를 신고 저만치 가는 어린 딸을 보며 지은 시다. 애들은 금방 자란다. 애타게 사무쳤던 일도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만다. 그 모든 서러움을 세월 따라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게 된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것은 그저 지나가는 것이다. 남은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 구두를 새로 지어 딸에게 신겨주고 저만치 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것네.

짧은 시 2024.02.09

한경옥 까치

한경옥 까치. 첫 눈 내린 아침. 까치의 첫 발자국. 까치 /한경옥 첫눈 내린 아침 설원에 첫 발자국 찍는다고 설레지 마라. 이미 바람과 입 맞추고 햇살과 몸 섞었다 🍒 ❄출처 : 『서정시학 2023년 겨울호』, 서정시학, 2023. 🍎 해설 이 짧은 시에는 기승전결의 논리가 있다. 뒤집어지는 전복의 미학과 번뜩임의 섬광 사이에 통찰과 서정의 뿌리를 그대로 응축하고 있다. 눈 위에서 종종걸음을 하는 까치는 봄이 오고 있다는 봄의 전령사다. 반면에 첫 눈 내린 아침 설원에 찍힌 까치의 첫 발자국은 겨울을 알리는 전령사다. 그런데 그 첫 발자국은 이미 바람과 입 맞추고 햇살과 몸 섞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전복의 미학이 있다. 시는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시를 생활 속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

짧은 시 2024.02.08

민병도 삶이란

민병도 삶이란. 삶이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삶이란/민병도풀꽃에게 삶을 물었다 흔들리는 일이라 했다 물에게 삶을 물었다 흐르는 일이라 했다 산에게 삶을 물었다 견디는 일이라 했다 🍒 ❄출처 : 민병도 시집, 『삶이란』, 목언예원, 2021. 🍎 해설“삶이란 무엇인가요? 성철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유명한 법어를 남겼다. 삶이란 무엇인가? 풀꽃에게 물었더니 ‘흔들리는 일’이라 한다. 물에게 물었더니 ‘흐르는 일’이라 한다. 산에게 물었더니 '견디는 일'이라 한다. 화가인 시인은 풀꽃, 물, 산이라는 한 폭의 수채화에 삶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결국 우리는 흔들리며, 흐르며, 견디면서 살아 나가야 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풀꽃에게 삶을 물었다 흔들리는 일이라 했다 물에게 삶을 물..

짧은 시 2024.02.02

노천명 감사

노천명 감사.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감사 /노천명 저 푸른 하늘과 태양을 볼 수 있고 대기를 마시며 내가 자유롭게 산보할 수 있는 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이것만으로 나는 신에게 감사할 수 있다. 🍒 ❄출처 : 노천명 전 시집, 『사슴의 노래』, 스타북스, 2020. 🍎 해설 괴테는 라는 제목의 시에서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 맑은 물,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 이것만 있다면 낙심하지마라.”, 이렇게 노래했다. 노천명 시인의 이 짧은 시도 이와 비슷한 주제를 응축한 시다. 시인의 시적 재능은 탁월하다. 사실 저 푸른 태양을 볼 수 있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신의 발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되면 충분히 행복한 것이다. 저 푸른 하늘과 태..

짧은 시 2024.01.30

최동호 돌담

최동호 돌담. 바람 많고 돌 많고 여자 많다는 제주도. 짧은 시. 돌담 최동호 제주 남풍 파도 타고 아무리 불어도 노래하던 처녀애들 치마끈 풀어야 돌담에 봄바람 난다 🍒 ❄출처 : 『서정시학 2023년 겨울호』, 서정시학, 2023. 🍎 해설 이 짧은 시에는 기승전결의 논리가 있다. 뒤집어지는 전복의 미학과 번뜩임의 섬광 사이에 통찰과 서정의 뿌리를 그대로 응축하고 있다. 돌 많고 바람 많고 여자 많다는 제주도 돌담에 봄바람 난다는 전복의 미학이 서정적 해학적으로 응축되어 있다. 시는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시를 생활 속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시의 대중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할만 하다. 길고 난해한 시 보다는 짧고 쉬운 시는 아무래도 대중성이 더 높다...

짧은 시 2024.01.29

백석 주막

백석 주막. 민족공동체의 삶을 그린 풍속화. 주막 /백석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八)모알상이 그 상 우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잔(盞)이 뵈였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군들을 따라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 ❄출처 : 백석 지음 이동순 편, 『백석 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88. 🍎 해설 *붕어곰: 붕어를 졸여서 만든 붕어찜 팔(八)모알상: 팔각형의 개다리소반 장고기: 잔 물고기. 조그마한 민물고기. 울파주: 수수깡, 갈대, 싸리 등으로 엮은 울타리. 바자 울타리. 장날 주막 풍경을 향토색 짙은 언어로 그린 한 폭의 아름다운 풍속화다. 네 개의 영상 이미지가 떠 오른다. 첫..

짧은 시 2024.01.26

반칠환 호도과자

반칠환 호도과자. 유머가 넘치는 짧은 시.호도과자/반칠환쭈글쭈글 탱글탱글 한 손에 두 개가 다 잡히네? 수줍은 새댁이 양볼에 불을 지핀다 호도과자는 정말 호도를 빼닮았다 호도나무 가로수 하(下) 칠십 년 기찻길 칙칙폭폭, 덜렁덜렁 호도과자 먹다 보면 먼 길도 가까웁다 🍒 ❄출처 : 반칠환 시집, 『웃음의 힘』, 지혜, 2012. 🍎 해설*호도과자: 호두나무, 호두과자가 맞는 맞춤법이다. 반칠환 시인은 짧은 시의 창작을 시도하고 있다. 독자들과 간명하게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시인의 자세는 감동적이다. 짧지만 긴 여운, 의표를 찌르는 해학과 통찰의 시편들은 인터넷 시대에 시가 어떻게 사람들의 가슴에 스밀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문학적 소통의 시금석이자 내비게이션이다. 재치문답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시 언어의 경제..

짧은 시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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