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윤효 죽비

무명시인M 2025. 5. 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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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 죽비.

윤효 죽비. 자아 성찰의 짧은 시.

죽비

/윤효

복도로 나가서
꿇어앉아
종이 울릴 때까지
 
왜 그랬는지
까맣게 잊었지만
 
아직도 울리지 않고 있는
그 종.
🍒
 
❄출처 : 윤효 시집, 『참말』, 시학, 2014.
 

🍎 해설

*죽비(竹篦): 불교에서 장시간 참선으로 심신이 흐트러질 경우 정신을 깨우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다. 대개는 법을 전하는 자리에서 직접 손으로 죽비를 쳐서 소리로 수도승이 정신을 환기하도록 유도하거나 직접 수도승을 때려서 정신을 차리도록 한다. 대나무 가운데를 세로로 잘라 만들거나 아니면 대나무를 반으로 쪼갠 것을 맞대어 붙여 만들기도 한다. 두 쪽의 맨 윗부분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을 주면 소리가 크게 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참선 중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윤효 시인은 짧은 시의 창작을 시도하고 있다. 시를 다른 장르의 문학과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짧지만 긴 여운, 의표를 찌르는 해학과 통찰의 시편들은 인터넷 시대에 시가 어떻게 사람들의 가슴에 스밀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문학적 소통의 시금석이자 내비게이션이다.
 
재치문답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시 언어의 경제성과 삶을 관통하는 통찰이 짧은 시에 서정적으로 압축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짧은 시도 통찰과 시적 직관이 잘 디자인 되어 있다. 그 옛날 학창시절 복도에 나가서 꿇어앉아 종이 울릴 때까지 벌을 서던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 때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러나 그 종소리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한 번의 벌을 섰던 추억은 참으로 길게 자아를 반성하고, 성찰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채찍질하는 종소리로 두고두고 길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시가 학교체벌을 필요악이라고 미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항상 자아를 반성하고 깊은 통찰 속에서 살아가라는 함축성이 많은 짧은 시다. 죽비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감동적이다.
 

복도로 나가서
꿇어앉아
종이 울릴 때까지
 
왜 그랬는지
까맣게 잊었지만
 
아직도 울리지 않고 있는
그 종.

복도로 나가서 꿇어앉아
종이 울릴 때까지
왜 그랬는지 까맣게 잊었지만
아직도 울리지 않고 있는
그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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