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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639

김소월 삼수갑산

김소월 삼수갑산. 고향에,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도... 삼수갑산 /김소월 삼수갑산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오고나니 기험(崎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첩첩(山疊疊)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 멀드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 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 날 가두었네 불귀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아하하 🍒 ❄출처 : 『신인문학』 3호, 1934.11/ 『김소월시전집』, 문학사상사, 2007. 🍎 해설 * 기험 : 산이 높고 험함...

좋은시 2024.02.07

천양희 2월은 홀로 걷는 달

천양희 2월은 홀로 걷는 달. 설날이 다가온다. 이런 반성을 하면서... 2월은 홀로 걷는 달 /천양희 헤맨다고 다 방황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며 미아리를 미아처럼 걸었다 기척도 없이 오는 눈발을 빛인듯 밟으며 소리 없이 걸었다 무엇에 대해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이 말없이 걸었다 길이 너무 미끄러워 그래도 낭떠러지는 아니야, 중얼거리며 걸었다 열리면 닫기 어려운 것이 고생문苦生門이란 모르고 산 어미같이 걸었다 사람이 괴로운 건 관계 때문이란 말 생각나 지나가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걸었다 불가능한 것 기대한 게 잘못이었나 후회하다 서쪽을 오래 바라보며 걸었다 오늘 내 발자국은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된다는 말 곱씹으며 걸었다 나의 진짜 주소는 집이 아니라 길인가? 길에게 물으며 걸었다 🍒 ❄출처 : 천..

좋은시 2024.02.06

정현종 오 따뜻함이여

정현종 오 따뜻함이여. 군밤 한 봉지에서도 행복을 찾는다. 오 따뜻함이여 /정현종 군밤 한 봉지를 사서 가방에 넣어 버스를 타고 무릎 위에 놨는데,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갓 구운 군밤의 온기 - 순간 나는 마냥 행복해진다. 태양과 집과 화로와 정다움과 품과 그리고 나그네 길과 ....... 오, 모든 따뜻함이여 행복의 원천이여 🍒 ❄출처 : 정현종 시집, 『광휘의 속삭임』, 2008, 🍎 해설 강추위 속에서도 우리는 온기를 잃지는 않는다. 시인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군밤 한 봉지에서 기쁨을 느낀다. 태양과 집과 화로와 정다움과 품과 심지어 정처 없는 나그네길까지도. 작은 것으로도 넉넉한 줄 알면 곳곳에서 어느 때에나 따뜻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의 원천이 되는 따뜻한 것들, 작은 것들을 생각해..

좋은시 2024.02.05

이해인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해인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오늘 양력 2월 4일은 입춘이다. 봄이 오는 길목의 시작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해인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 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걸음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 ❄출처 : 이해인 시집, 『기다리는 행복』, 샘터, 2017. 🍎 해설 오늘 양력 2월 4일은 입춘..

좋은시 2024.02.04

공광규 무량사 한 채

공광규 무량사 한 채. 아내에 대한 존경심이 묻어 있는 사랑.무량사 한 채 /공광규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비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나무문살 꽃무늬단청 스치는 바람소리를 냅니다 🍒 ❄출처 : 공광규 시집, 『말똥 한덩이』, 실천문학사, 2008. 🍎 해설남편 누구나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

좋은시 2024.02.03

김종삼 나의 본적

김종삼 나의 본적. 나의 본적은 인류의 짚신이고 맨발이다. 나의 본적(本籍) /김종삼 나의 본적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이다. 밟으면 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나의 본적은 거대한 계곡이다. 나무 잎새다. 나의 본적은 푸른 눈을 가진 한 여인의 영원히 맑은 거울이다. 나의 본적은 차원을 넘어 다니지 못하는 독수리다. 나의 본적은 몇 사람밖에 안 되는 고장 겨울이 온 교회당 한 모퉁이다. 나의 본적은 인류의 짚신이고 맨발이다. 🍒 ❄출처 : 김종삼 시집, 『김종삼 전집』, 나남, 2005. 🍎 해설 본적(本籍)은 호적이 있는 곳, 어떤 사람이 태어나고 살던 곳이다. 한 사람의 정체성, Identity다. 시인은 자신의 본적을 찾아 해멘다. 자신의 본적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이었으나 밟으면 깨어지는..

좋은시 2024.02.01

조지훈 행복론

조지훈 행복론. 행복은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행복론 /조지훈 멀리서 보면 보석인 듯 주워서보면 돌멩이 같은 것 울면서 찾아갔던 산 너머 저 쪽 아무데도 없다 행복이란 스스로 만드는 것 마음 속에 만들어 놓고 혼자서 들여다 보며 가만히 웃음짓는 것 아아 ! 이게 모두 과일나무였던가 웃으며 돌아온 초가삼간 가지가 찢어지게 열매가 익었네. 🍒 ❄출처 : 조지훈, 『조지훈 전집』, 나남출판 , 1996. 🍎 해설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해멘다. 칼 붓세는 이렇게 노래한다. “산 너머 언덕 너머 먼 하늘 밑 행복이 있다고 말을 하건만. 아, 사람들 따라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되돌아왔네 산 너머 언덕 너머 더 멀리에는 행복이 있다고 말을 하건만.” 조지훈 시인은 “행복이란 스스로 만드는 것 마음 속에 만들어..

좋은시 2024.01.31

문정희 편안한 사람

문정희 편안한 사람. 편안한 사람과 차를 마신다.편안한 사람/문정희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햇살이 찾아드는 창가 오래전부터 거기 놓여 있는 의자만큼 편안한 사람과 차를 마신다 순간인 듯 바람이 부서지고 낮은 목소리로 다가드는 차 맛은 고뇌처럼 향기롭기만 하다 두 손으로 받쳐 들어도 온화한 찻잔 속에서 잠시 추억이 맴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우리가 이렇게 편안한 의자가 되고 뜨거웠던 시간이 한 잔의 차처럼 조용해진 후에는...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햇살이 찾아드는 창가 편안한 사람과 차를 마신다 🍒 ❄출처 : 문정희 시집,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무죄다』, 을파소, 1998. 🍎 해설해설남들에게 나는 과연 편안한 사람일까? 남들에게 나는 '오래전부터 거기 놓여 있는 의자만큼 편안한 사람'일까? ‘어김없이..

좋은시 2024.01.28

손택수 자전거의 연애학

손택수 자전거의 연애학. 판소리 가락의 유머 시. 자전거의 연애학 /손택수 홀아비로 사는 내 늙은 선생님은 자전거 연애의 창안자다. 그에 따르면 유별난 남녀 사이를 자전거만큼 친근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일단 자전거를 능숙하게 탈줄 알아야 혀 탈 줄 안다는 것, 그건 낙법과 관계가 있지. 나는 주로 하굣길에 여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점찍어 둔 가방을 낚아채는 방법을 썼어. 그럼 제깐 것이 별 수 있간디, 가방 달라고 죽어라 뛰어오겠지 그렇게만 되면 만사가 탄탄대로라 이 말이야. 지쳐서 더 뛰어오지 못하는 여학생 은근슬쩍 뒤에 태우고 유유히 휘파람이나 불며 달려가면 되는 것이지. 뒤에서 허리를 꼭 잡고 놓지 못하도록 약간의 과속은 필수항목이고, 그렇게 달려가다 갈대숲이나 보리밭이 나오면 어어어 브레..

좋은시 2024.01.27

정호승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정호승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시련에 굴복하지않고 다시 시작한다. 자장면으로.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정호승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오늘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고 네가 내 오른뺨을 칠 때마다 왼뺨마저 치라고 하지는 못했으나 다시 또 배는 고파 허겁지겁 자장면을 사먹고 밤의 길을 걷는다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이 너덕너덕 누더기가 되어 밤하늘에 걸려 있다 이제 막 솟기 시작한 별들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감히 푸른 별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 머리 위에 똥을 누고 멀리 사라지는 새들을 바라본다 검은 들녘엔 흰 가차가 소리 없이 지나간다 내 그림자마저 나를 버리고 돌아오지 않는다 어젯밤 쥐들이 갉아먹은 내 발가락이 너무 아프다 신발도 누더기가 되어야만 길이 될 수 ..

좋은시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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