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좋은시 697

나태주 강물과 나는

나태주 강물과 나는. 다른 생명을 경외하는 마음.강물과 나는/나태주맑은 날강가에 나아가바가지로강물에 비친하늘 한 자락떠올렸습니다 물고기 몇 마리흰구름 한 송이새소리도 몇 움큼건져 올렸습니다 한참동안 그것들을가지고 돌아오다가생각해보니아무래도 믿음이서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을기르다가 공연스레죽이기라도 하면어떻게 하나 나는 걸음을 돌려다시 강가로 나아가그것들을 강물에풀어 넣었습니다 물고기와 흰구름과새소리 모두강물에게돌려주었습니다 그날부터강물과 나는친구가 되었습니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강물과 나는』, 이야기꽃, 2023. 🍎 해설아이가 징검돌에 걸터앉아 가만히 들여다본 강물에는 나무 그림자와 산 그늘, 흰 구름, 조그만 물고기 몇 마리가 사랑스럽게 담겨 있다. 그것들을 한 움쿰 건져올린 아이는 집으..

좋은시 2024.07.06

노천명 장날

노천명 장날. 일제 치하 산골 마을의 토속적인 삶의 모습.장날/노천명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차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 ❄출처 : 노천명 시집, 『산호림』, 한성도서주식회사, 1938. 🍎 해설일제 치하의 어느 산골 마을이다. 추석을 쇠기 위해서는 대추나 밤을 팔아서 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이른 새벽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간다. 제사상을 차리려면 대추 밤을 따서 장날 내다 팔아야 했다. ‘돈사야’는 그래야 돈이 된다는 이야기다. 먹고 싶은 대추를 부..

좋은시 2024.07.03

최두석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최두석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소통과 동행의 정신을 추구하게 만드는 시.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최두석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무슨 꽃인들 어떠리 그 꽃이 뿜어내는 빛깔과 향내에 취해 절로 웃음 짓거나 저절로 노래하게 된다면 사람들 사이에 나비가 날 때 무슨 나비인들 어떠리 그 나비 춤추며 넘놀며 꿀을 빨 때 가슴에 맺힌 응어리 저절로 풀리게 된다면 🍒 ❄출처 : 최두석 시집,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문학과지성사, 1998. 🍎 해설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는 애증이 교차한다. 좋은 일도 많지만 가슴에 응어리가 맺히는 일도 일어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 꽃은 피고 나비가 난다면 아름다운 경지다. 맺힌 응어리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일이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도 시간이 가면 저절로 풀리는 경우..

좋은시 2024.06.30

박목월 모일

박목월 모일.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모일(某日) /박목월시인이라는 말은내 성명 위에 늘 붙는 관사(冠詞).이 낡은 모자를 쓰고나는비오는 거리로 헤매였다.이것은 전신을 가리기에는너무나 어줍잖은 것또한 나만 쳐다보는어린 것들을 덮기에도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것.허나, 인간이평생 마른옷만 입을가부냐.다만 모발이 젖지 않는그것만으로나는 고맙고 눈물겹다. 🍒 ❄출처 : 박목월, 『박목월 시전집』, 민음사, 2003. 🍎 해설* 모일(某日): 어느 날 * 관사(冠詞): 명사 앞에 붙어서 그 명사를 설명해 주는 수식어.시인은 어느 날 문득,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 시인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으나 시인은 스스로 좀 부족하다고 말한다. 자신을 다 표현하기에도 부족하고, 식구들 먹여 살리기에도..

좋은시 2024.06.23

김미혜 참!

김미혜 참! 짝퉁과 페이크뉴스가 기승을 부리는데...참!/김미혜  "이거 진짜예요?"엄마는 참기름 살 때 꼭 물어보아요.  참깨,참쑥,참취,참꽃,참나무,참나물,참숯,참빗,참나리,참비름,참개암나무,참새,참게,참매미,참개구리,참다람쥐,참당나귀,참치,참붕어,참조기,참가자미,참말,참뜻,참사랑,참소리,참값......  "참"이란 뜻을 가진 낱말이 이렇게 많은데 이름처럼 참된 것들 얼마나 있을까요?  참! 🍒 ❄출처 : 김미혜 시집, 『아기 까치의 우산』, 창비, 2005. 🍎 해설  "이거 진짜예요?" 물어보는 것이 유행어처럼 되어 버렸다. 짝퉁과 페이크뉴스가 난무하는 시대에 참되게 진실 되게 살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경구와 같은 시다. 어릴 적 엄마와의 대화에서 아주 쉬운 시어로 실마리를 풀어가는 기법이 참신..

좋은시 2024.06.11

김남조 6월의 시

김남조 6월의 시. 6월에는 보리밭에서 잠시 쉬어 가자.6월의 시/김남조어쩌면 미소짓는 물여울처럼 부는 바람일까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언저리에 고마운 햇빛은 기름인양 하고 깊은 화평의 숨 쉬면서 저만치 트인 청청한 하늘이 성그런 물줄기 되어 마음에 빗발쳐 온다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또 보리밭은 미움이 서로 없는 사랑의 고을이라 바람도 미소하며 부는 것일까 잔 물결 큰 물결의 출렁이는 비단인가도 싶고 은 물결 금 물결의 강물인가도 싶어 보리가 익어가는 푸른 밭 밭머리에서 유월과 바람과 풋보리의 시를 쓰자 맑고 푸르른 노래를 적자 🍒 ❄출처 : 김남조, 『김남조 시전집』, 국학자료원, 2005. 🍎 해설6월은 생명의 어울림이 더욱 특별해 지고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달이다. 시인은 6월에는 깊은 화평의 숨..

좋은시 2024.06.04

김광규 오래된 물음

김광규 오래된 물음. 생동감 넘치는 아이들 모습에서 놀라운 생명력을 느끼자.오래된 물음/김광규누가 그것을 모르랴시간이 흐르면꽃은 시들고나뭇잎은 떨어지고짐승처럼 늙어서우리도 언젠가 죽는다 땅으로 돌아가고하늘로 사라진다그래도 살아갈수록 변함없는세상은 오래된 물음으로우리의 졸음을 깨우는구나 보아라새롭고 놀랍고 아름답지 않으냐쓰레기터의 라일락이 해마다골목길 가득히 뿜어내는깊은 향기볼품없는 밤송이 선인장이깨어진 화분 한 귀퉁이에서오랜 밤을 뒤척이다가 피워낸밝은 꽃 한송이 연못 속 시커먼 진흙에서 솟아오른연꽃의 환한 모습그리고인간의 어두운 자궁에서 태어난아기의 고운 미소는 우리를더욱 당황하게 만들지 않느냐 맨발로 땅을 디딜까봐우리는 아기들에게 억지로신발을 신기고손에 흙이 묻으면더럽다고 털어준다 도대체땅에 뿌리박지 ..

좋은시 2024.05.31

정호승 꽃을 따르라

정호승 꽃을 따르라. 피는 꽃보다 지는 꽃을 따르라.꽃을 따르라/정호승돈을 따르지 말고 꽃을 따르라  봄날에 피는 꽃을 따르지 말고봄날에 지는 꽃을 따르라  ​벚꽃을 보라눈보라처럼 휘날리는 꽃잎에봄의 슬픔처럼 찬란하지 않으냐 돈을 따르지 말고 지는 꽃을 따르라  ​사람은 지는 꽃을 따를때가장 아름답다 🍒 ❄출처 : 정호승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창비, 2022. 🍎 해설봄날에는 돈을 좋아하지 말고 꽃을 좋아하라고 말한다. 꽃을 맘껏 즐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피는 꽃보다 지는 꽃을 따르라고 한다. 우리의 인생에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함께 있다.이별이 불가피할 때, 아프고 괴로운 때, 마음을 접어야 할 때, 바로 꽃이 지는 시간에 잘 견뎌내시기 바란다. 돈을 따르지 말고 꽃을 따르라  봄날에 ..

좋은시 2024.05.22

이상국 봄나무

이상국 봄나무. 누구에게나 역경이 온다. 그럴 때면...봄나무/이상국나무는 몸이 아팠다눈보라에 상처를 입은 곳이나빗방울들에게 얻어맞았던 곳들이오래전부터 근지러웠다 땅속 깊은 곳을 오르내리며겨우내 몸을 덥히던 물이이제는 갑갑하다고한사코 나가고 싶어하거나살을 에는 바람과 외로움을 견디며봄이 오면 정말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스스로에게 했던 말들이그를 못 견디게 들볶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의 헌데 자리가 아플 때마다그는 하나씩 이파리를 피웠다 🍒 ❄출처 : 이상국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창비, 2005. 🍎 해설겨울 나무는 ‘눈보라’에 상처를 입고, ‘빗방울’에 얻어맞아 이곳저곳이 근지러웠다. 그러나 봄이되면 나무는 상처 자리가 아플 때마다 새 이파리를 피운다.  누구에게나 역경과 시련이 온다. ..

좋은시 2024.05.08

박성우 아직은 연두

박성우 아직은 연두. 오늘 4월 30일은 연두를 졸업하는 날이다.아직은 연두/박성우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우물물에 설렁설렁 씻어 아삭 씹는 풋풋한 오이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옷깃에 쓱쓱 닦아 아사삭 깨물어 먹는 시큼한 풋사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연두 풋자두와 풋살구의 시큼시큼 풋풋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풋내가 나는 연두 연초록 그늘을 쫙쫙 펴는 버드나무의 연두 기지개를 쭉쭉 켜는 느티나무의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누가 뭐래도 푸릇푸릇 초록으로 가는 연두 빈집 감나무의 떫은 연두 강변 미루나무의 시시껄렁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늘 내 곁에 두고 싶은 연두, 연두색 형광펜 연두색 가방 연두색 팬티 연두색 티셔츠 연두색 커튼 연두색 베갯잇 난 연두가 좋아 연..

좋은시 2024.04.3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