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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640

정호승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정호승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시련에 굴복하지않고 다시 시작한다. 자장면으로.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정호승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오늘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고 네가 내 오른뺨을 칠 때마다 왼뺨마저 치라고 하지는 못했으나 다시 또 배는 고파 허겁지겁 자장면을 사먹고 밤의 길을 걷는다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이 너덕너덕 누더기가 되어 밤하늘에 걸려 있다 이제 막 솟기 시작한 별들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감히 푸른 별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 머리 위에 똥을 누고 멀리 사라지는 새들을 바라본다 검은 들녘엔 흰 가차가 소리 없이 지나간다 내 그림자마저 나를 버리고 돌아오지 않는다 어젯밤 쥐들이 갉아먹은 내 발가락이 너무 아프다 신발도 누더기가 되어야만 길이 될 수 ..

좋은시 2024.01.25

김용택 세상의 길가

김용택 세상의 길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자.세상의 길가/김용택내 가난함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배부릅니다 내 야윔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살이 찝니다 내 서러운 눈물로 적시는 세상의 어느 길가에서 새벽밥같이 하얀 풀꽃들이 피어납니다. 🍒 ❄출처 : 김용택 시집, 『그 여자네 집』, 창작과비평사, 1998. 🍎 해설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편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사자성어다. 상대편의 처지나 형편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내가 배부르고 부유한 것은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 굶고 있기 때문이며, 내가 살이 찐 것은 누군가 야위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런 생각들이 세상에 있으면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없으리라. 우리가 나눠야 ..

좋은시 2024.01.24

천양희 운명이라는 것

천양희 운명이라는 것. 자신의 운명을 자기가 개척할 수 있을까. 운명이라는 것 /천양희 파도는 하루에 70만번씩 철썩이고 종달새는 하루에 3000번씩 우짖으며 자신을 지킵니다 용설란은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한 꽃대에 3000송이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습니다 벌은 1kg의 꿀을 얻기 위해 560만송이의 꽃을 찾아다니고 낙타는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습니다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새도 있고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새도 있습니다 운명을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요 🍒 ❄출처 : 천양희 시집,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는가』, 작가, 2003. 🍎 해설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은 자기 운명을 자기 자신이 만든다. 파도는 하루에 70..

좋은시 2024.01.23

이재무 낙엽

이재무 낙엽. 낙엽의 깊은 뜻. 낙엽 /이 재 무 시를 지망하는 학생이 보내온 시 한 편이 나를 울린다 세 행 짜리 짧은 시가 오늘 밤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한 가지에 나고 자라는 동안 만나지 못하더니 낙엽 되어 비로소 바닥에 한 몸으로 포개져 있다” 그렇구나 우리 지척에 살면서도 전화로만 안부 챙기고 만나지 못하다가 누군가의 부음이 오고 경황 중에 달려가서야 만나는구나 잠시잠깐 쓸쓸히 그렇게 만나는구나 죽음만이 떨어져 멀어진 얼굴들 불러모으는구나 🍒 ❄출처 : 이재무 시집, 『푸른고집 』, 천년의 시작, 2004. 🍎 해설 이 시의 방아쇠는 3행짜리 짧은 시다. “한 가지에 나고 자라는 동안 만나지 못하더니 낙엽 되어 비로소 바닥에 한 몸으로 포개져 있다” 문상을 가 보면 죽음은 낙엽과 같아서 떨..

좋은시 2024.01.21

나태주 끝끝내

나태주 끝끝내. 나는 너를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끝끝내 /나태주 너의 얼굴 바라봄이 반가움이다 너의 목소리 들음이 고마움이다 너의 눈빛 스침이 끝내 기쁨이다 끝끝내 너의 숨소리 듣고 네 옆에 내가 있음이 그냥 행복이다 이세상 네가 살아있음이 나의 살아있음이고 존재이유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끝끝내』, 지혜, 2017. 🍎 해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이 시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love you; therefore I am.)”이다. 사랑은 만물의 창조주이며, 사랑은 만물을 성장시키는 힘이다. 사랑을 얻으면 이 세상의 전부를 얻는 것이다. 결..

좋은시 2024.01.20

이영광 1월 1일

이영광 1월 1일. 새해에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1월 1일 /이영광 새해가 왔다 1월 1일이 왔다 모든 날의 어미로 왔다 등에 해를 업고, 해 속에 삼백예순네 개 알을 품고 왔다 먼 곳을 걸었다고 몸을 풀고 싶다고 환하게 웃으며 왔다 어제 떠난 사람의 혼령 같은 새 사람이 왔다 삼백예순다섯 사람이 들이닥쳤다 얼굴은 차차 익혀나가기로 하고 다 들이었다 같이 살기로 했다 무얼 머뭇거리느냐고 빈집이 굶주린 귀신처럼 속삭여서였다 🍒 ❄출처 : 이영광 시집, 『끝없는 사람』, 문학과지성사, 2018. 🍎 해설 1월 1일이 삼백예순네 개의 알을 품고 먼 길을 걸어왔다. 그 알을 무심히 깨트릴 수는 없다. 삼백예순 개의 나날을 알처럼 아끼고 소중하게 보내야 한다. 삼백예순다섯 사람이 들이닥쳤다. 새 ..

좋은시 2024.01.14

안도현 옆모습

안도현 옆모습.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보면서 살고 있습니까? 옆모습 /안도현 나무는 나무하고 서로 마주보지 않으며 등 돌리고 밤새 우는 법도 없다 나무는 사랑하면 그냥, 옆모습만 보여준다 옆모습이란 말, 얼마나 좋아 옆모습, 옆모습, 자꾸 말하다 보면 옆구리가 시큰거리잖아 앞모습과 뒷모습이 그렇게 반반씩 들어앉아 있는 거 당신하고 나하고는 옆모습만 단 하루라도 오랫동안 바라보자 사나흘이라도 바라보자 🍒 ❄출처 : 안도현 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창비, 2004. 🍎 해설 사람은 앞모습을 보고 만난다. 그런데 앞모습만 바라보고 살다가 가끔은 권태와 갈등과 균열의 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사랑하던 사람에게서 등을 돌리고 뒷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무는 나무에게 일생 동안 그저 옆..

좋은시 2024.01.12

신경림 겨울날

신경림 겨울날. 올 겨울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주는 시. 겨울날 /신경림 우리들 깨끗해지라고 함박눈 하얗게 내려 쌓이고 우리들 튼튼해지라고 겨울 바람 밤새껏 창문을 흔들더니 새벽 하늘에 초록별 다닥다닥 붙었다 우리들 가슴에 아름다운 꿈 지니라고 🍒 ❄출처 : 신경림 시집, 『뿔』, 창작과비평사, 2002. 🍎 해설 시인은 우리들 깨끗해지라고 함박눈이 하얗게 내려쌓인다고 노래한다. 우리들 튼튼해지라고 겨울 바람 밤새껏 창문을 흔든다고 노래한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다 보면 새벽 하늘에 희망의 초록별이 다닥다닥 붙는다고 노래한다. 누구나 살다 보면 반드시 겨울이 온다. 고통과 실패의 나날이 있다. 그러나 넘어지고 쓰러져도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면 반드시 새벽이 오고 초록별들이 찾아와 빛난다. 눈부신 인생의 꽃..

좋은시 2024.01.11

오탁번 폭설

오탁번 폭설. 폭설이 내렸다. 해학과 풍자의 폭설 시. 폭설 /오탁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좋은시 2024.01.10

김기택 사무원

김기택 사무원. 샐러리맨의 일생. 사무원 /김기택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장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여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손익관리대장경(損益管理臺帳經)과 자금수지심경(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

좋은시 202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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