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오탁번 폭설

무명시인M 2024. 1. 1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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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탁번 폭설.

오탁번 폭설. 폭설이 내렸다. 해학과 풍자의 폭설 시.

폭설

/오탁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혀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소잉! 🍒

 

출처 : 오탁번 시집, 손님, 황금알, 2006.

 

🍎 해설

*자가웃: 한 자 반쯤 되는 길이(45cm).

시중에 떠도는 농담을 시로 표현했다. 상부상조, 품앗이로 살아가는 농촌 마을의 폭설을 해학과 풍자로 묘사하였다.

 

해학적인 전라도 사투리가 서민적 에로티시즘과 결합하였으나 외설스럽지는 않다. 마을 이장이 눈과 사투를 벌이며 육성으로 들려주는 비속어는 욕이라기보다 정감 어린 토속어에 가깝다.

 

마을 이장의 천진하고 유쾌한 전라도 사투리를 따라다니다 보면 얼굴에 미소가 머금어 진다. 해학과 풍자가 있는 작품이다.

 

🌹 참고 음악: 눈이 내리네

https://youtu.be/8sM-d914-eE?si=qsyx3fDw0d27-C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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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혀 있었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소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 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녹초가 된 주민들은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소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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