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김기택 사무원

무명시인M 2024. 1. 9.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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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사무원.

김기택 사무원. 샐러리맨의 일생.

사무원

/김기택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장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여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손익관리대장경(損益管理臺帳經)과 자금수지심경(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했다고 한다.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머리는 점점 빠지고 배는 부풀고

커다란 머리와 몸집에 비해 팔다리는 턱없이 가늘어졌으며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수행에 너무 지극하게 정진한 나머지

전화를 걸다가 전화기 버튼 대신 계산기를 누르기도 했으며

귀가하다가 지하철 개찰구에 승차권 대신 열쇠를 밀어 넣었다고도 한다.

 

이미 습관이 모든 행동과 사고를 대신할 만큼

깊은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30년 간의 장좌불립(長座不立)"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 부르든 말든 그는 전혀 상관치 않고 묵언으로 일관했으며

다만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 수행을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껏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

 

출처 : 김기택 시집, 사무원, 창작과비평사, 1999.

 

🍎 해설

이 시는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일하는 사무직 근로자의 일상을 불교의 엄숙한 수행에 빗대면서 소 시민적 삶에 대한 연민을 그려내고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사무원은 의자에 앉아 등을 구부린 채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묘사된다.

 

사무실 근무는 고행으로, 도시락은 공양, 서류 장부는 손익관리대장경과 자금수지심경으로, 전화벨은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보고는 염불, 인사는 108배로, 월급은 시주로 풍자된다.

 

30년간의 장좌불립이 그의 인생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봉급생활자들이다. 이런 사회구조에 의해 자꾸만 작아지는 삶이지만, 그것을 견디는 것이 세속에서의 고행이 아닌가라는 것이 시인의 관찰이다.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이 오늘도 불교 수도승처럼 일하고 있다. 그들은 사표를 주머니 속에 넣고 하루에도 열번씩 파계하는 꿈을 꾼다. 그러나 그들은 파계를 하지 못하고 ‘30년 간의 장좌불립(長座不立)’ 일생을 보낸다. 당신은 예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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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30년 간의 장좌불립(長座不立)"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른 아침부터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30년 간의 장자불립이라고 불렀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 왔고  오로지 고행에만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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