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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자전거의 연애학

무명시인M 2024. 1. 27.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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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자전거의 연애학.

손택수 자전거의 연애학. 판소리 가락의 유머 시.

자전거의 연애학

/손택수

홀아비로 사는 내 늙은 선생님은 자전거 연애의 창안자다. 그에 따르면 유별난 남녀 사이를 자전거만큼 친근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일단 자전거를 능숙하게 탈줄 알아야 혀 탈 줄 안다는 것, 그건 낙법과 관계가 있지.

 

나는 주로 하굣길에 여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점찍어 둔 가방을 낚아채는 방법을 썼어. 그럼 제깐 것이 별 수 있간디, 가방 달라고 죽어라 뛰어오겠지 그렇게만 되면 만사가 탄탄대로라 이 말이야. 지쳐서 더 뛰어오지 못하는 여학생 은근슬쩍 뒤에 태우고 유유히 휘파람이나 불며 달려가면 되는 것이지. 뒤에서 허리를 꼭 잡고 놓지 못하도록 약간의 과속은 필수항목이고,

 

그렇게 달려가다 갈대숲이나 보리밭이 나오면 어어어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네 이를 어째 가능한 으슥한 곳을 찾아 재깍 넘어지는거야. 그러고는 아주 드러누워버리는 것이지. 어째 허리가 펴지질 않는다고, 발목이 삐끗했나보다고, 아무래도 여기서 쪼깐 쉬어가는 게 낫겠다고......아울러 이 모든 일엔 품위가 있어야 혀. 서화담이 황진이 만나듯인 아니더래도 서규정*이 직녀를 만나듯은 격이 있어야 된단 이 말씀이지.

 

이것이 요즘 너희 젊은것들 잘 나가는 오토바이나 스포츠카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자전거 연애라는 것이야 허허허. 좋은 세상이란 그런 것이지 젊으나 젊은 것들이 불알 두 쪽만 갖고도 연애를 걸 수 있는 세상이지.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한 말씀 더 남기신다.

 

그런데 그 맛에 너무 깊이 빠지면 못써, 잘못하면 나처럼 이 나이껏 혼자서 살아야 할 테니께. 🍒

 

*서규정 <직녀에게>, 빛남출판사, 1999.

 

출처 : 손택수 시집, 목련 전차, 창비, 2006.

 

🍎 해설

유머와 해학이 흘러 넘친다. 다시 읽으면 전라도의 곡조와 판소리 가락이 있다.

 

서민적 삶과 대지적 삶의 살뜰한 조화를 꿈꾸는 시인의 의지가 구술성 가득한 시어 속에 한 편의 유머 판소리 절창 부분처럼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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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로 사는 내 늙은 선생님은 자전거 연애의 창안자다.

 

그렇게 달려가다 갈대숲이나 보리밭이 나오면 어어어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네 이를 어째 가능한 으슥한 곳을 찾아 재깍 넘어지는거야. 그러고는 아주 드러누워버리는 것이지. 어째 허리가 펴지질 않는다고, 발목이 삐끗했나보다고, 아무래도 여기서 쪼깐 쉬어가는 게 낫겠다고......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한 말씀 더 남기신다.

그런데 그 맛에 너무 깊이 빠지면 못써, 잘못하면 나처럼 이 나이껏 혼자서 살아야 할 테니께.

홀아비로 사는 내 늙은 선생님은 자전거 연애의 창안자다.
그렇게 달려가다 갈대숲이나 보리밭이 나오면 어어어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네 이를 어째
그런데 그 맛에 너무 깊이 빠지면 못써,

 

잘못하면 나처럼 이 나이껏 혼자서 살아야 할 테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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