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 동두천 1

김명인 동두천 1.

김명인 동두천 1. 일종의 상처와도 같았던 도시 동두천을 다시 생각해 본다.

동두천 1

/김명인

기차가 멎고 눈이 내렸다 그래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신호등

불이 켜지자 기차는 서둘러 다시 떠나고

내 급한 생각으로는 대체로 우리들도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이리라 혹은 떨어져 남게 되더라도

저렇게 내리면서 녹는 춘삼월 눈에 파묻혀 흐려지면서

 

우리가 내리는 눈일 동안만 온갖 깨끗한 생각 끝에

역두(驛頭)의 저탄 더미에 떨어져

몸을 버리게 되더라도

배고픈 고향의 잊힌 이름들로 새삼스럽게

서럽지는 않으리라 그만그만했던 아이들도

미군을 따라 바다를 건너서는

더는 소식조차 모르는 이 바닥에서

 

더러운 그리움이여 무엇이

우리가 녹은 눈물이 된 뒤에도 등을 밀어

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가게 하느냐

바라보면 저다지 웅크린 집들조차 여기서는

공중에 뜬 신기루 같은 것을

발 밑에서는 메마른 풀들이 서걱여 모래 소리를 낸다

 

그리고 덜미에 부딪쳐 와 끼얹는 바람

첩첩 수렁 너머의 세상은 알 수도 없지만

아무것도 더 이상 알 필요도 없으리라

안으로 굽혀지는 마음 병든 몸뚱이들도 닳아

맨살로 끌려가는 진창길 이제 벗어날 수 없어도

나는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지나

나야 되돌아올 새벽을 죄다 건너가면서 🍒

 

❄출처 : 김명인 시집, 『동두천』, 문학과지성사. 1979.

 

🍎 해설

이 시의 배경이 되는 '동두천'은 우리 민족에게 일종의 상처와도 같은 도시이다. 6·25 전쟁 때 북침을 막아 주었던 미군이 초기에 주둔했던 곳으로, 한때 자연스럽게 양공주의 도시, 혼혈아의 도시가 된 곳이기도 하다.

 

이 시는 시인이 동두천이라는 지역에서 교단에 섰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1연에서 시인은 새벽 동두천 기차역에 내리는 눈을 보며 상념에 젖는다.

 

2연에서는 기차가 떠난 기차역에서의 시인은 ‘미군을 따라 바다를 건너서는/더는 소식조차 모르는’ 혼혈 아이들의 소식을 궁금해 한다.

 

3연에서는 동두천 시절의 삶에 대한 설움과 순수한 삶에의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동두천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이 땅의 모순을 화자는 ‘무엇이/ 우리가 녹은 눈물이 된 뒤에도 등을 밀어/ 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가게 하느냐’며 자조적으로 한탄한다.

 

4연은 이 시의 주제연으로, 순수하고 인간적인 삶에 대한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시인에게 동두천은 덜미에 ‘끼얹는 바람’처럼 시련의 삶이었고, ‘첩첩수렁’의 막막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며, 그래서 마음이 굽혀지고, 몸도 병들어 ‘맨살로 끌려가는 진창길’이라고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마지막 두 행에서 시인은 동두천에 대한 연민을 안고 이 진창길을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지나/ 떠나야 되돌아 올 새벽’을 향하여 건너야 한다고 노래한다.

 

이처럼 이 시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아픈 역사의 극복과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그만그만했던 아이들도

미군을 따라 바다를 건너서는

더는 소식조차 모르는 이 바닥에서

 

더러운 그리움이여 무엇이

우리가 녹은 눈물이 된 뒤에도 등을 밀어

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가게 하느냐

발 밑에서는 메마른 풀들이 서걱여 모래 소리를 낸다

 

안으로 굽혀지는 마음 병든 몸뚱이들도 닳아

맨살로 끌려가는 진창길 이제 벗어날 수 없어도

나는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지나

나야 되돌아올 새벽을 죄다 건너가면서

서럽지는 않으리라 그만그만했던 아이들도

미군을 따라 바다를 건너서는 더는 소식조차 보르는 이 바닥에서

앙르ㅗ 굽혀지는 마음 병든 몸뚱이들도 닳아

나는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지나

나아 되돌아올 새벽을 죄다 건너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