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흙. 흙을 예찬한다.
흙
/문정희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출처 : 문정희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사, 2004.
🍎 해설
*도공 : 도자기 만드는 사람
이 시는 ‘흙’의 속성인 ‘생명의 태반’과 ‘귀의처’에 주목하고 있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생명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키는 ‘흙’을 예찬하고 있다.
첫째 연에서 시인은 흙이 가진 것 중 제일 부러운 것이 흙의 이름이라 말하고 있다. '흙 흙 흙'하고 흙을 부르면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눈이 젖어온다’라고 하여, 아픔과 희생의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눈물을 통해서 흙의 아픔에 대해 노래한다.
둘째 연에서 시인은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라고 화두를 꺼낸다. 이 표현은 ‘흙’이 생명을 탄생시키고 키우는 모태이며, 언젠가는 돌아와서 의지할 곳임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도공이 흙으로 달항아리를 빚고 농부가 흙에 씨앗을 뿌려 ‘한 가마의 곡식’을 수확하는 흙의 속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농부가 기적을 농사라고 부르는 것도 흙의 겸허함과 닮았다.
세 번째연은 첫 번째연의 내용을 처음에는 반복한다. '흙 흙 흙'하고 흙을 부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 온다. 그 메아리 속에서 창조주인 ‘하늘이 우물을 파 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함으로써 흙의 아픔과 희생에 대한 공감을 시적으로 압축하고 있다.
🌹뮨정희 시인
저 유명한 김지하 시인은 생존 시, 문정희 시인을 “시 귀신”이라고 불렀다. 문정희 시인은 김지하 시인이 자신을 시성詩聖이나 시선詩仙으로 부르지 않고 ‘시 귀신’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였다.
❄출처 : 김지하 사랑 얘기, 김지하 시집, 『새벽강』, 시학, 2006.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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