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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697

이해인 민들레의 영토

이해인 민들레의 영토. 이해인 시인의 출세작품. 종신서원을 하던 해에 창작. 민들레의 영토 /이해인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 ❄출처 : 이해인 시집, 『민들레의 영토』, 카톨릭출판사, 초판 1976. 🍎 해..

좋은시 2023.05.29

김재진 풀

김재진 풀. 여러분은 상처를 받을 때 어떻게 하는가? 풀/김재진 베어진 풀에서 향기가 난다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비명 대신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 들판을 물들이는 초록의 상처 상처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나는 아픈 것도 잊는다 상처도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 있다. 🍒 ❄출처 : 김재진 시집,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꿈꾸는서재, 2015. 🍎 해설 베어진 풀에서도 향기가 난다는 말이 있다.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라는 시인의 통찰은 대단하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는데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는 것이다. 풀은 베어질 때에 원망에 빠지거나 복수의 칼날을 뽑아 들지 않는다. 향기를 낸다. 여러분은 상처를 받을 때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 상처를 잘..

좋은시 2023.05.27

박준 낙서

박준 낙서. 인정이 넘치는 훈훈한 시. 낙서 /박준 저도 끝이고 겨울도 끝이다 싶어 무작정 남해로 간 적이 있었는데요 ​ 거기는 벌써 봄이 와서 농어도 숭어도 꽃게도 제철이었습니다 ​ 혼자 회를 먹을 수는 없고 저는 밥집을 찾다 근처 여고 앞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 몸의 왼편은 겨울 같고 몸의 오른편은 봄 같던 아픈 여자와 늙은 남자가 빈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집 ​ 메뉴를 한참 보다가 김치찌개를 시킵니다 ​ 여자는 냄비에 물을 올리는 남자를 하나하나 지켜보고 저도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을 봅니다 ​ 남자는 돼지비계며 김치며 양파를 썰어 넣다 말고 여자와 말다툼을 합니다 ​ 조미료를 그만 넣으라는 여자의 말과 더 넣어야지 맛이 난다는 남자의 말이 끓어넘칩니다 ​ 몇 번을 더 버티다 성화에 못 이긴 ..

좋은시 2023.05.26

류시화 돌 속의 별

류시화 돌 속의 별. 돌에도 얼굴이 있다.돌 속의 별/류시화돌의 내부가 암흑이라고 믿는 사람은 돌을 부딪쳐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돌 속에 별이 갇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돌이 노래할 줄 모른다고 여기는 사람은 저물녘 강의 물살이 부르는 돌들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 노래를 들으며 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사람이다 돌이 차갑다고 말하는 사람은 돌에서 울음을 꺼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 냉정이 한 때 불이었다는 것을 잊은 사람이다 돌이 무표정하다고 무시하는 사람은 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안으로 소용돌이치는 파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무표정의 모순어법을 🍒 ❄출처 : 류시화 시집..

좋은시 2023.05.22

이근배 찔레

이근배 찔레. 조선일보 선정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선 중의 하나. 찔레 /이근배 창호지 문에 달 비치듯 환히 비친다 네 속살꺼정 검은 머리칼 두 눈 꼭두서니 물든 두 뺨 지금도 보인다 낱낱이 보인다 사랑 눈 하나 못 뜨고 헛되이 흘려버린 불혹 거짓으로만 산 이 부끄러움 네게 던지마 피 걸레에 싸서 희디힌 입맞춤으로 주마 내 어찌 잊었겠느냐 가시덤불에 펼쳐진 알몸 사금파리에 찔리며 너를 꺾던 새순 돋는 가시 껍질 째 씹던 나의 달디단 전율을 스무 해전쯤의 헛구역질을 🍒 ❄출처 : 이근배 시집, 『살다가 보면』, 시인생각, 2012. 🍎 해설 이 시는 조선일보가 선정한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선에 뽑힌 사랑시 우수작품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아릿하게 아픈 첫사랑의 느낌. 연하게 돋아난 가시껍질을..

좋은시 2023.05.14

나태주 까닭

나태주 까닭. 한 사람을 사랑하여 아름다웠던 시간을 고백하는 예쁜 사랑시. 까닭 / 나태주 꽃을 보면 아, 예쁜 꽃도 있구나! 발길 멈추어 바라본다 때로는 넋을 놓기도 한다 ​ 고운 새소리 들리면 어, 어디서 나는 소린가? 귀를 세우며 서 있는다 때로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 하물며 네가 내 앞에 있음에야! ​ 너는 그 어떤 세상의 꽃보다도 예쁜 꽃이다 너의 음성은 그 어떤 세상의 새소리보다도 고운 음악이다 ​ 너를 세상에 있게 한 신에게 감사하는 까닭이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한 사람을 사랑하여』, 홍성사, 2022. 🍎 해설 누구에게나 내게만 보이는 사람이 있다. 거친 세상 한가운데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이다. 서로를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온 사람. 그 아름다운 한 사람이 우주처럼 느껴진..

좋은시 2023.05.11

이채 5월에 꿈꾸는 사랑

이채 5월에 꿈꾸는 사랑. 가정의 달 5월에 시의적절. 5월에 꿈꾸는 사랑 /이채 꽃들은 서로 화내지 않겠지 향기로 말하니까 꽃들은 서로 싸우지 않겠지 예쁘게 말하니까 꽃들은 서로 미워하지 않겠지 사랑만 하니까 비가 오면 함께 젖고 바람 불면 함께 흔들리며 어울려 피는 기쁨으로 웃기만 하네 더불어 사는 행복으로 즐겁기만 하네 꽃을 보고도 못 보는 사람이여 한철 피었다 지는 꽃들도 그렇게 살아간다네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간다네 🍒 ❄출처 : 이채 시집,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행복에너지, 2014. 🍎 해설 이채 시인은 “세상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이를 바라보는 이의 마음이 깨닫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시인이 한 시집에서 연작시 「일 년 열두 달 꿈꾸는 사랑」을 발표했다..

좋은시 2023.05.08

이복희 담쟁이의 예절

이복희 담쟁이의 예절.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의 예절. 담쟁이의 예절 /이복희 어느 별의 정장을 차려입은들 저만한 신사가 있을까 켜켜로 줄 맞춰 놓은 듯 수직돌 끌어안고 일광욕 즐기는 잎들 딱, 공평한 자리 배분 토 다는 놈 없는 예의범절 키 크고 배불리는 일에 골몰했던 내게 더불어 살아가라는 설법이다. 🍒 ❄출처 : 이복희 시집, 『오래된 거미집』, 모악, 2022. 🍎 해설 도종환 시인의 유명한 시 는 담쟁이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담벼락에 탁 붙어서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어깨를 기대어가며 또한 올라가자 올라가자 서로 응원해 가면서 절망을 넘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무리 힘든 시련이라도 강한 의지와 함께라는 연대의식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좀 투쟁적이다. 이..

좋은시 2023.05.07

이정하 사랑해서 외로웠다

이정하 사랑해서 외로웠다. 나는 외로웠다. 한순간도 빠짐없이... 사랑해서 외로웠다 /이정하 나는 외로웠다. 바람 속에 온몸을 맡긴 한 잎 나뭇잎. 때로 무참히 흔들릴때, 구겨지고 찢겨지는 아픔보다 나를 더 못 견디게 하는 것은 나 혼자만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는 외로움이었다. 어두워야 눈을 뜬다. 혼자일때, 때로 그 밝은 태양은 내게 얼마나 참혹한가. 나는 외로웠다. 어쩌다 외로운 게 아니라 한순간도 빠짐없이 외로웠다. 그렇지만 이건 알아다오. 외로워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라는 것. 그래, 내 외로움의 근본은 바로 너다. 다른 모든 것과 멀어졌기 때문이 아닌 무심히 서 있기만 하는 너로 인해, 그런 너를 사랑해서 나는, 나는 하염없이 외로웠다. 🍒 ❄출처 : 이정하 시집, 『사랑해서 외로웠다』, 자음과모..

좋은시 2023.05.06

나태주 오월 아침

나태주 오월 아침. 눈썹이 파랗게 물드는 5월 아침. 오월 아침 /나태주 가지마다 돋아난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눈썹이 파랗게 물들 것만 같네요 ​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금세 나의 가슴도 바다같이 호수같이 열릴 것만 같네요 ​ 돌덤불 사이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으려면 내 마음도 병아리 떼 같이 종알종알 노래할 것 같네요 ​ 봄비 맞고 새로 나온 나뭇잎을 만져 보면 손끝에라도 금시 예쁜 나뭇잎이 하나 새파랗게 돋아 날 것만 같네요. 🍒 ❄출처 : 나태주 시집, 『너만 모르는 그리움』, 북로그컴퍼니, 2020. 🍎 해설 계절의 여왕이며 가정의 달인 5월 아침!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으려면, 새로 나온 나뭇잎을 만져 보면 눈썹이 파랗게 물든 생각이 깊은 ..

좋은시 202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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