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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697

박광옥 가을에 만나고 싶은 사람

박광옥 가을에 만나고 싶은 사람. 가을에 만나고 싶은 사람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에 만나고 싶은 사람 /박광옥 가을에 만나고 싶은 사람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가슴에 단백한 웃음으로 찾아와 세월을 안타까워하며 위안의 차 한 잔에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 차가운 가을 밤바람 맞으며 그 곁에 앉아 내 이야기를 들어 줄줄 아는 사람 밤하늘에 별을 헤이며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짊어지고 길 떠나며 사색을 같이하여 작은 손잡아 줄 사람 지나간 추억 벗 삼으며 내일의 미래를 열어가는 내 영혼의 그림자 둘이 걷는 길, 동반자가 되어 줄 사람 문학文學을 사랑하며 다정한 마음의 편지를 써 줄 사람으로 인생의 예술을 이해 해 줄 수 있는 사람 가을을 닮아가는 사람 바닷가 파도와 갈매기 소리 그 화음을 들을 수 있..

좋은시 2023.10.31

백석 모닥불

백석 모닥불. 화합의 정신을 향토색 짙은 시어로 그려 낸 명시.모닥불/백석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시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뭉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출처 : 백석 시집, 『사슴』, 선광인쇄주식회사, 1936./ 백석 지음 이동순 편, 『백석 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88. 🍎 해설*새끼오리: 새끼줄 오라기 ,새끼올 *갓신창: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끈 *개니빠디: 개..

좋은시 2023.10.28

정진규 별

정진규 별. 풀 죽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시.별/정진규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 ❄출처 : 정진규 시집,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문학세계사, 1990. 🍎 해설시인은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별의 저 밝음은 다름 아닌 어둠이 그 배경이 되었기 때문임을 발견한다.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감동의 시구다. 어둠과 같은 삶의 질곡 속에서도 별과 같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그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일깨워 준다. 우선 환한 대낮 같은 세상 대신에 지금 사방이 막..

좋은시 2023.10.27

서정주 상리과원

서정주 상리과원. 서정주 시인의 시 세계를 압축하고 있는 우수작품. 상리과원(上里果園) /서정주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나 낙동강 상류와도 같은 융륭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뜨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패기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 다리, 발꿈치까지도 이쁜 꽃송아리들을 달았다. 맵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 꾀꼬리 새끼들이 조석으로 왼종일 북치고 소고 치고 미짓굿 울리는 소리를 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 자기도 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사..

좋은시 2023.10.23

이해인 나뭇잎 러브레터

이해인 나뭇잎 러브레터. 나뭇잎 한 장으로 러브레터를 쓴다.나뭇잎 러브레터/이해인당신이 내게 주신 나뭇잎 한 장이 나의 가을을 사랑으로 물들입니다 나뭇잎에 들어 있는 바람과 햇빛과 별빛과 달빛의 이야기를 풀어서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한 장의 나뭇잎은 또 다른 당신과 나의 모습이지요? 이 가을엔 나도 나뭇잎 한 장으로 많은 벗들에게 고마움의 러브레터를 쓰겠습니다. 🍒 ❄출처 : 이해인 시집, 『희망은 깨어 있네』, 마음산책, 2010. 🍎 해설가을은 감사의 계절이다. 발밑에 무심코 떨어진 나뭇잎은 당신이 주신 나뭇잎이다. "나뭇잎에 들어 있는 바람과 햇빛과 별빛과 달빛의 이야기를 풀어서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보고싶은 사람들에게 저 노란 은행 나뭇잎에 편지를 보내자. 이 좋은 가을이 가기 전에 ..

좋은시 2023.10.22

나태주 꽃이 되어 새가 되어

나태주 꽃이 되어 새가되어. 인생에 대한 깨달음. 꽃이 되어 새가 되어 /나태주 지고 가기 힘겨운 슬픔 있거든 꽃들에게 맡기고 부리기도 버거운 아픔 있거든 새들에게 맡긴다 날마다 하루해는 사람들을 비껴서 강물 되어 저만큼 멀어지지만 들판 가득 꽃들은 피어서 붉고 하늘가로 스치는 새들도 본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꽃이 되어 새가 되어』, 문학사상사, 2014. 🍎 해설 이 시는 시인이 한때 장기간 병상에 누워 창작한 시중 하나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시인은 생각한다. 사람이 꽃이 되고 새가 된다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무거운 짐도 가벼운 짐도 홀가분하게 꽃에게 맡기고 새에게 맡겨버린다. 삶에 대한 깨달음과 해맑은 관조가 돋보이는 잊혀지지 않는 시다. 지고 가기 힘겨운 슬픔 있거든 꽃들에게..

좋은시 2023.10.21

황인숙 내 삶의 예쁜 종아리

황인숙 내 삶의 예쁜 종아리.모든 삶에는 오르막길이 있다. 내 삶의 예쁜 종아리 /황인숙 오르막길이 배가 더 나오고 무릎관절에도 나쁘고 발목이 더 굵어지고 종아리가 미워진다면 얼마나 더 싫을까 나는 얼마나 더 힘들까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오르막길이 많네 게다가 지름길은 꼭 오르막이지 마치 내 삶처럼 🍒 ❄출처 : 황인숙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 문학과지성사, 2022. 🍎 해설 시인은 이태원 해방촌 언덕이 많은 동네, 가파른 골목길을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느라 굵어진 자신의 종아리를 보고 역설적으로 “예쁘다”고 표현한다. 오르막길이 많은 내 삶처럼이라는 엄정한 리얼리티를 유머와 위트로 표현하고 있다. 오르막길이 어찌 시인만의 길이겠는가. 모든 삶에는 오르막길이 있다. 오르막을 오를 땐 희망이 있고 동..

좋은시 2023.10.20

정호승 강물

정호승 강물. 강물처럼 흘러가는 인생 역정.강물/정호승그대로 두어라 흐르는 것이 물이다 사랑의 용서도 용서함도 구하지 말고 청춘도 청춘의 돌무덤도 돌아보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흐르는 것이 길이다 흐느끼는 푸른 댓잎 하나 날카로운 붉은 난초잎 하나 강의 중심을 향해 흘러가면 그뿐 그동안 강물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내가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그동안 나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강물이 아니었다 희망이었다 🍒 ❄출처 : 정호승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창작과비평사, 1997. 🍎 해설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의 길을 노래한 시다. 흔히 사람들은 세상이라는 강물을 원망한다. 세상이 잘못돼서 내가 절망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강물을 막았다. 그 강물을 거슬려 올라가려고 했던 내 ..

좋은시 2023.10.19

박노해 삶의 나이

박노해 삶의 나이. 참 삶을 성찰하게 하는 깊이있는 시.삶의 나이/박노해어느 가을 아침 아잔 소리 울릴 때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 앞에 한 나그네가 서 있었다 묘비에는 3.5.8...숫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 돌림병이나 큰 재난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구나 싶어 나그네는 급히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때 마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

좋은시 2023.10.18

문정희 목숨의 노래

문정희 목숨의 노래. 강렬하면서도 엄결한 의지의 사랑시. 목숨의 노래 /문정희 너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 같이 살자 이 말은 너무 흔했다 그래서 너를 두곤 목숨을 내걸었다 목숨의 처음과 끝 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다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 ❄출처 : 문정희 시집, 『사랑의 기쁨: 문정희 시선집』, 시월, 2010. 🍎 해설 강렬하면서도 엄결한 의지의 사랑시다. 사랑이 부박해져가는 시대이지만, 소름 끼치도록 강인한 사랑의 의지가 이 시에서처럼 타오르는 한 사랑은 남녀간의 마음의 아픔뿐만이 아니라 시대를 치유해 주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너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 그래서 너를 두곤 목숨을 내걸었다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

좋은시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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