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서정주 상리과원

무명시인M 2023. 10. 23.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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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상리과원.

서정주 상리과원. 서정주 시인의 시 세계를 압축하고 있는 우수작품.

상리과원(上里果園)

/서정주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나 낙동강 상류와도 같은 융륭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뜨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패기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 다리, 발꿈치까지도 이쁜 꽃송아리들을 달았다.
 
맵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 꾀꼬리 새끼들이 조석으로 왼종일 북치고 소고 치고 미짓굿 울리는 소리를 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 자기도 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묻혀서 누워 있는 못물과 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비추고 누워서, 때로 가냘프게도 떨어져내리는 저 어떤것들의 꽃잎사귀들을 우리 몸 위에 받아라도 볼 것인가. 아니면 머언 산들과 나란히 마주 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유두분면油頭粉面과, 한낮의 춤과 황혼의 어둠 속에 이것들이 찾아들어 돌아오는 ㅡ 아스라한 침잠沈潛이나 지킬 것인가.
 
하여간 이 하나라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일이다. 저것들을 축복하는 때까치의 어느 것, 비비새의 꽃송아리의 어느 것에 대체 우리가 항용 나직이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어 있단 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 귀소歸巢가 끝난 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켜 보일 일이요. 제일 오래인 종소리를 들릴 일이다. 🍒
 
❄출처 : <현대공론> 1954년 11월호에 발표, 서정주 시집, 『서정주 시선』, 정음사, 1956.
 

🍎 해설

이 시는 좀 길지만 유명한 작품이다. 우선 이 시는 한국 산문시의 개척작품이다. 아울러 이 시는 서정주 시인의 시 세계를 압축하고 있는 우수작품이다.
 
제목으로 삼은 상리과원은 상리라는 마을에 있는 어느 과수원의 이름이다. 과수원의 과목과 시인 특유의 낙천주의가 결합된다. 우리의 삶이 힘겨운 가운데 즐거울 수도 있다는 낙천주의를 노래하고 있다.
 
봄철에 과수원의 꽃이 만발한 정경을 묘사한다. 꽃의 향기를 큰 강의 상류에 비유하고 꽃송이 하나하나를 조카딸이나 조카딸의 친구로 비유하는 희열과 순진 무구의 경지로 이 시는 시작된다. 그 조카딸년들은 무엇이 그리 좋았을까. 그녀들의 웃음이 온 마을에 환하게 퍼진다. 기쁨의 봄이다.
 
과수원에 어울리는 여러 가지 새들의 울음소리가 그것에 어울리는 일로 이어진다. 또 거기에 먼 산과 낮, 저녁놀들이 모여서 어둠을 이룰 때까지의 장엄한 과정이 묘사된다.
 
우리의 어린 것들에게는 설움을 섣불리 가르치지 말자. 결국 사람이 살아 가는 지혜와 사랑을 우리 어린것들에게 알려 주자.
 
전후의 허무적이고 비극적인 현실 인식 태도를 불식시키고 상리과원같은 기쁨이 충만한 미래지향적인 삶을 서정적으로 고취시키고 있는 우수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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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뜨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하여간 이 하나라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일이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켜 보일 일이요. 제일 오래인 종소리를 들릴 일이다.

꽃밭은 우리 조카딸년들의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즐거운 웃음판이다.
더구나 서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이쁜 꽃송아리들을 달았다.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 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일이다.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 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켜 보일 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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