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박노해 삶의 나이

무명시인M 2023. 10. 18.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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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삶의 나이.

박노해 삶의 나이. 참 삶을 성찰하게 하는 깊이있는 시.

삶의 나이

/박노해

어느 가을 아침 아잔 소리 울릴 때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 앞에
한 나그네가 서 있었다
묘비에는 3.5.8...숫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 돌림병이나 큰 재난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구나 싶어
나그네는 급히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때 마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의 숫자가 참삶의 나이라오 🍒
 
❄출처 :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걸음, 2010.
 

🍎 해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노동문학을 주도하던 박노해 시인은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7년 6개월간 복역한 뒤 1998년 특별 사면으로 석방됐다.
 
이후 그는 변했다고 한다. 그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2003년부터 전 세계 분쟁 지역과 가난한 현장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노동의 새벽을 얘기하던 그의 시도 변했다. 삶을 조용히 관조하는 시가 많다.
 
이 시에 나오는 마을이 실제로 있는 마을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자연 나이를 묘비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의 그 문기둥에 새겨진 숫자를 묘비에 적는다는 일화는 깊은 울림을 준다.
 
참 삶을 성찰하게 하는 깊이있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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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의 숫자가 참삶의 나이라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잊지 못할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여기 묘비의 숫자가 참삶의 나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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