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성 여기 타오르는 빛의 성전이. 유명한 서울대학교 찬가.
여기 타오르는 빛의 성전이
/정희성
그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이마가 시원한 봉우리
기슭이마다 어린 예지의 서기가
오랜 주라기(朱羅紀)의 지층을 씻어내린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리듯이
관악의 이마에 흐르는 보배로운 기름이여
영원한 생명의 터전이여
겨레의 염원으로 기약한 이 날
헤어졌던 이마를 비로소 마주대고
여기 새로 땅을 열어
한 얼의 슬기를 불 밝히니
「진리는 나의 빛」
이 불이 밝히는
오 한 세대의 확고한 길을 보아라
온갖 불의와 사악과
어둠의 검은 손이 눈을 가릴 때에도
그 어둠의 정수리를 가르며 빛나던 예지여
역사의 갈피마다 슬기롭던
아 우리 서울대학교
뼈 있는 자의 길을 보아라
뼈 있는 자가 남기는 이념의 단단한 뼈를 보아라
저마다 가슴 깊이 사려둔 이념은
오직 살아 있는 자의 골수에 깃드니
속으로 트이는 이 길을
오 위대한 세대의 확고한 길을 보아라
만년 웅비의 새 터전
이 영봉(靈峰)과 저 기슭에 어린 서기를
가슴에 서리담은 민족의 대학
불처럼 일어서는 세계의 대학
이 충만한 빛기둥을 보아라
온갖 어두움을 가르며
빛이 빛을 따르고
뼈가 뼈를 따르고
산이 산을 불러 일어서니
또한 타오르는 이 길을
영원한 세대의 확고한 길을 보아라
겨레의 뜻으로 기약한 이 날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민족의 위대한 상속자
아 길이 빛날 서울대학교
타오르는 빛의 성전 예 있으니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
❄출처 : 정희성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창작과비평사, 2006.
🍎 해설
정희성 시인의 가장 유명한 시는 ‘저문 강에 삽을 씻고’가 아니다. 사실은 이 시가 가장 유명하다.
서울대학교는 관악산 기슭으로 캠퍼스 이전을 확정한 후 1971년 4월 2일에 관악 종합캠퍼스 기공식을 개최하였으며, 이 시는 바로 이때 당시 서울대 재학생이던 정희성 학생이 지어 발표한 축시이다.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라는 구절이 가장 유명하다. 명시라고 평가할 수 있다. 흔히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변형된 구절로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까지 서울대학교의 상징이자, 서울대인의 사회적 책무를 잘 나타내는 시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시는 서울대 재학생들이나 서울대 출신들에게 보약 겸 독약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보약은 서울대인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라는 메시지로 작용할 때이다. 독약으로는 서울대인의 자만심을 부추기는 메시지로 작용할 때이다.
현재로서는 서울대/서울대생이 중심이 된 뭔가 부정적인 사건이 터졌을 때 조롱조로 인용되는 빈도가 잦다.
“그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고 우리 사회에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 전에 “조국으로 가는 길이 어두워지면 관악을 보고 싶다”라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미래를 위해 고민하는 서울대가 되길 바란다.
그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역사의 갈피마다 슬기롭던
아 우리 서울대학교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민족의 위대한 상속자
아 길이 빛날 서울대학교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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