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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343

허영자 짧은 시 감

허영자 짧은 시 감. 시인들이 뽑은 애송 명시다. 감 /허영자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출처 : 허영자, 감, 모순의 향기, 시인생각, 2013. 🍎 해설 누구나 늙어가는 것을 한탄한다. 그러나 시인이 보는 눈은 다르다. 젊은 날의 방황, 고뇌, 좌절을 극복하고 성숙해져 가는 인간의 삶을 붉은 감의 이미지를 통해 아름답게 형상화했다. 짧지만 깊이가 있다. 한 영국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젊기는 쉽다./모두 젊다, 처음엔. 그러나 생각해 보면 늙기는 쉽지 않다. 떫고 비리던 맛을 없애가는 아픔과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이 시는 한국시인협회 주관 시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짧은 시 2021.06.22

도종환 짧은 시 바람이 오면

도종환 짧은 시 바람이 오면. 누구에게나 아픔과 시련은 온다. 바람이 오면 /도종환 바람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그리움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아픔도 오겠지요 머물러 살겠지요 살다간 가겠지요 세월도 그렇게 왔다간 갈 거예요 가도록 그냥 두세요 ❄출처 : 흔들리며 피는 꽃, 문학동네, 2012. 🍎 해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사무치는 그리움, 그리고 아픔과 시련은 온다. 시인은 그 아픔과 시련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괴로워하지 말라고 노래한다. 아픔도 다가와서 아프게 하다가 결국은 세월처럼 다시 떠나게 되어 있다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간결하고 리듬이 좋다.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지 않은 위로와 잔잔한 격려를 주는 시다. 아픔도 오겠지요 머물러 살겠지요 살..

짧은 시 2021.06.16

정채봉 짧은 시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 짧은 시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간결하고 매력적인 시다.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출처 : 정채봉,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샘터, 2020. 🍎 해설 시인은 작은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또 이슬에 젖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다고 노래한다. 간결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시다. 동화 작가이자 시인인 정채봉(1946~2001년, 향년 55세)은 샘터사 편집자로 오래 일했다. 조정래 작가는 정채봉을 일컬어 ‘그..

짧은 시 2021.06.13

이윤학 짧은 시 첫사랑

이윤학 짧은 시 첫사랑. 당신은 첫사랑을 잊으셨습니까? 첫사랑 /이윤학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까지 들여다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까지 ❄출처 : 이윤학, 첫사랑,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문학과지성사, 2000. 🍎 해설 사람이 나이가 들어 가면 건망증이 아니더라도 많은 것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잊혀지지 않는 게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축구 팬들은 2002년 월드컵 때 8강전 이탈리아전에서 터진 안정환 선수의 결승 골든골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꽃은 한 번 시들면 그 꽃이 다시 피어날 수 없다. 이 시는 첫사랑이 다시 피어날 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리겠다는 노래다. 간결하면서도 절묘한 비유로 이 교과서적인 ..

짧은 시 2021.05.31

이시영 짧은 시 빛

이시영 짧은 시 빛. 내 마음을 초록 숲으로 만드는 시다. 빛 /이시영 내 마음의 초록 숲이 굽이치며 달려가는 곳 거기에 아슬히 바다는 있어라 뜀뛰는 가슴의 너는 있어라 ❄출처 : 이시영, 빛, 무늬, 문학과지성사, 1994. 🍎 해설 코로나 19 장기화로 우리 마음의 숲은 대부분 사막처럼 매말라 있다. 이 시를 읽으면 뭔가 희망이 생긴다. 어디론가 달려가 보고 싶다. 설령 거기에 바다가 없으면 어떠랴. 설령 거기에 뜀뛰는 가슴 그대가 없으면 어떠랴. 일단 내 마음 숲의 스펙트럼이 회색에서 초록으로 바뀌면 성공이다. 더 나아가 내 마음 숲이 집콕-방콕의 정지에서 벗어나 굽이치면 성공이다. 달려 가보자. 그리고 생각하자. ☘ 이 시는 광화문글판 2007년 여름편에 게시되었다. 시 선정위원회는 단어 한 개와..

짧은 시 2021.05.27

안도현 짧은 시 찔레꽃

안도현 짧은 시 찔레꽃. 짧지만 깊이가 있는 아름다운 시다. 찔레꽃 /안도현 봄비가 초록의 허리를 몰래 만지려다가 그만 찔레 가시에 찔렸다 봄비는 하얗게 질렸다 찔레꽃이 피었다 자책, 자책하며 봄비는 무려 오백 리를 걸어갔다 ❄출처 : 안도현, 찔레꽃, 북항, 문학동네, 2012. 🍎 해설 찔릴 줄을 알면서도 얻기 어려운 진정한 우정, 또 아름다운 사랑을 향해 자책, 자책하며 오늘도 무려 5백리를 걸어가는 봄비가 우리 인생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안도현 시인은 문학집배원으로서 송찬호 시인의 찔레꽃을 배달해 왔다. 찔레꽃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 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

짧은 시 2021.05.25

김지하 짧은 시 새봄

김지하 짧은 시 새봄. 짧지만 깊이가 있는 시이다. 새봄 /김지하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출처 : 김지하, 새봄, 타는 목마름으로, 창작과비평사, 1999. 🍎 해설 시인은 모두들 벚꽃의 화려함에 취해 있을 때 벚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변함없는 푸른 솔에 눈을 준다. 이어서 시인은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진다’고 말한다. 벚꽃과 푸른 솔은 상반된 개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 상반된 존재들에 의해 상대방의 존귀함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세상이 연약함과 강인함, 화려함과 소박함, 변화와 지조가 조화를 이룬다고 노래하고 있다. 결국 더불어 사는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조용히 던지고 있다. 간결..

짧은 시 2021.05.21

황인숙 짧은 시 꿈

황인숙 짧은 시 꿈. 간결하고 아름다운 시다. 꿈 /황인숙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출처 : 황인숙, 꿈,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문학과지성사, 1998. 🍎 해설 이제는 그대를 만날 수 없다. 그것을 알기에 꿈에서 그대를 만나도 이게 꿈이지 생시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다 이별의 슬픈 감정을 최대한으로 자제(tone down)하고 있다. 대신에 그대를 만나는 꿈이라도 꾸고싶은 마음을 쉽고 담담한 시적 에스프리로 노래하고 있다. 또한 시 속에 모파상 작가의 반전이 숨어 있다. 짧지만 아름다운 시다.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짧은 시 2021.05.19

고은 짧은 시 열매 몇 개

고은 짧은 시 열매 몇 개. 귀뚜라미 소리도 한몫한다는 아름다운 시. 열매 몇 개 /고은 지난 여름내 땡볕 불볕 놀아 밤에는 어둠 놀아 여기 새빨간 찔레 열매 몇 개 이룩함이여 옳거니! 새벽까지 시린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으며 여물었나니 ❄출처 : 고은, 열매 몇 개, 고은 전집, 김영사, 2002. 🍎 해설 어떠한 생명체라도 치열한 생명 창조의 역정을 밟고 태어난다. 시인은 가을철에 새빨간 찔레 열매를 보고, 지난여름 따갑게 내리쬐던 뜨거운 햇볕과 어둠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이 가을에 새벽까지 들리던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노래한다. 여름철의 뜨거운 햇볕과 어둠, 그리고 가을철의 귀뚜라미 소리의 협력과 헌신이 찔레 열매를 창조하였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시인은 생명 존중..

짧은 시 2021.05.10

안도현 짧은 시 봄이 올 때까지는

안도현 짧은 시 봄이 올 때까지는. 인생의 대부분은 이런 기다림일지도 모른다. 봄이 올 때까지는 /안도현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 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 출처: 안도현, 봄이 올 때까지는, 바닷가 우체국, 문학동네, 2016. 🍎 해설 이 짧은 시는 생각과 자기성찰의 문을 열어 준다. 어제 읽을 때에는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길래 저렇게 오랫동안 기다릴까,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읽어 보니까 우리 인생 얘기인 것 같다. 공감이 가는 명시다. 우리 인생의 대부분은 기다림이다. 고통과 좌절에 부딪혔을 때 우리를 살려내는 것은 간절한 기다림이다. 희망이라는 불확실성에 매달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일단 이렇게 버텨본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 놓은 돌이 강 밑..

짧은 시 202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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