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안도현 짧은 시 찔레꽃

무명시인M 2021. 5. 25.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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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짧은 시 찔레꽃. Photo Source: www.pixabay. com

안도현 짧은 시 찔레꽃. 짧지만 깊이가 있는 아름다운 시다.

찔레꽃

/안도현

봄비가 초록의 허리를 몰래 만지려다가

그만 찔레 가시에 찔렸다

 

봄비는 하얗게 질렸다 찔레꽃이 피었다

 

자책, 자책하며 봄비는

무려 오백 리를 걸어갔다

 

출처 : 안도현, 찔레꽃, 북항, 문학동네, 2012.

 

🍎 해설

찔릴 줄을 알면서도 얻기 어려운 진정한 우정, 또 아름다운 사랑을 향해 자책, 자책하며 오늘도 무려 5백리를 걸어가는 봄비가 우리 인생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안도현 시인은 문학집배원으로서 송찬호 시인의 찔레꽃을 배달해 왔다.

 

찔레꽃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 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수 년, 삶이 그렇게 징 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봄비가 초록의 허리를 몰래 만지려다가

그만 찔레 가시에 찔렸다

봄비는 하얗게 질렸다 찔레꽃이 피었다

자책, 자책하며 봄비는

무려 오백 리를 걸어갔다

Photo Source: www.pixabay.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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