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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343

김영랑 짧은 시 허리띠 매는 시악시

김영랑 짧은 시 허리띠 매는 시악시. 허리띠 매는 시악시를 만나는 듯 부드럽다. 허리띠 매는 시악시 /김영랑 허리띠 매는 시악시 마음실같이 꽃가지에 은은한 그늘이 지면 흰 날의 내 가슴 아지랑이 낀다. 흰 날의 내 가슴 아지랑이 낀다. *흰 날: 밝고 환한 날 아지랑이: 원문에는 아지랭이로 되어 있다. ❄출처 : 김영랑, 허리띠 매는 시악시(K31), 영랑시집, 시문학사(발행자: 박용철), 1935년. 🍎 해설 김영랑 시인은 초기에 사행시를 즐겨 썼다. 그의 첫 시집에는 총 53편의 시 중 사행시가 28편이나 된다. 이러한 사행시에는 제목없이 번호순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에 붙인 제목은 내가 임의로 붙인 것이고 출처의 K31은 영랑시집의 이 시의 번호 31에 K(김영랑 앞문자)를 붙인 것이다.(모차..

짧은 시 2021.10.15

서정주 짧은 시 첫사랑의 시

서정주 짧은 시 첫사랑의 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첫사랑의 시다. 첫 사랑의 시 /서정주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열두살이었는데요.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해서요.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그러면서 산에 가선 산돌을 줏어다가 국화밭에 놓아두곤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 🍒 ❄출처 : 서정주, 첫사랑의 시, 80 소년 떠돌이의 시, 시와시학사, 1997. 🍎 해설 이쁜 여선생에게 잘 보이려고 손톱을 이쁜 여선생의 '손톱'같이 깨끗이 깎고,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는 지극정성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소년기의 첫사랑의 애틋한 추억과 감정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대목에서 작지않은 울림과 떨림을 만난다. ‘산돌을 줏어다가’ 그 돌을 마치 살아있는 돌로 알..

짧은 시 2021.10.14

김승희 짧은 시 새벽밥

김승희 짧은 시 새벽밥. 어머니나 주부들은 매일 새벽밥을 짓는다. 새벽밥 /김승희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 ❄출처 : 김승희, 새벽밥, 냄비는 둥둥, 창비, 2006. 🍎 해설 어머니나 주부들은 매일 새벽밥을 짓는다. 아직 어두컴컴하다. 새벽 어둠의 두려움은 단지 어둠의 두려움이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본원적 고독이다. 어머니나 주부들은 외로움을 딛고 혼자서 매일 천상의 별을 지상의 쌀이라고 생각하고 별이 쌀이 될 때까지 또 그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정성을 기울인다. 남편이나 자식 사랑, 가족 사랑이 별이나 쌀과 함께 무르 익는다. 새벽밥을 ..

짧은 시 2021.10.13

김용택 짧은 시 가을이 오면

김용택 짧은 시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은? 가을이 오면 /김용택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가을이 오면 🍒 ❄출처 : 김용택, 가을이 오면, 나무, 창비, 2002. 🍎 해설 잎과 꿀과 향기는 꽃의 전부이다.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 보내고.... 남은 것은 씨앗 한 알. 그렇게 다 주고도 잃은 건 하나도 없다고, 가을이 오면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라고 꽃은 말한다. 우리 인간은 어떠한가? 주기는커녕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해 뺏으려 하지는 않는가. 시인은 베풀며 살자고 말한다. 다함께 살자고 말한다. 가을의 경이로운 자연에서 ..

짧은 시 2021.10.12

나태주 짧은 시 잠들기 전 기도

나태주 짧은 시 잠들기 전 기도. 당신은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하시나요? 잠들기 전 기도 /나태주 하나님 오늘도 하루 잘 살고 죽습니다 내일 아침 잊지 말고 깨워 주십시오. 🍒 ❄출처 : 나태주, 잠들기 전 기도, 멀리서 빈다, 시인생각, 2013. 🍎 나태주 시인의 자작시 해설 62살 때, 그러니까 정년 6개월을 앞두고, 새벽에 쓸개가 터졌어요. 담즙성 복막염. 병원에 갔는데 길게 살아야 6일이라고 하더군요. 밖에서는 이미 장례 준비까지 한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살았어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밤낮으로 이를 갈았지만요. 아들 말로는 3일 동안 정신이 나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의사가 그랬지요. 이미 죽을 사람이 왔다고. 수술해 봐야 나아질 게 없다고. 마지막 말이 진짜 매정하더군요. 어떤 의사도 환자 같은 분..

짧은 시 2021.10.08

서정주 짧은 시 추일미음

서정주 짧은 시 추일미음. 당신은 이번 가을에 어떤 수확을 거두셨습니까? 추일미음 /서정주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촉계는 붉은 물이 들었지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안해박은 뜰 안에 큰 주먹처럼 놓이고 타래박은 뜰 밖에 작은 주먹처럼 놓였다만 내 주먹은 어디다가 놓았으면 좋을꼬 🍒 * 추일미음(秋日微吟): 가을날에 나직이 읊조려 보는 시 촉계: 접시꽃. 촉규화 또는 촉계화라고도 한다. 꽃 색갈은 다양하나 빨강색 접시꽃이 예쁘다. 안해박: 집안에 사람이 심어 가꾸는 박 타래박: 집 밖에 자생하는 박으로 작은 박들이 주렁주렁 여럿 열리는 넝쿨박 ❄출처 : 서정주, 추일미음, 미당 서정주 전집, 은행나무, 2017. 🍎 해설 익어가는 감과 붉게 물든 맨드라미꽃, 큰 주먹처럼 작..

짧은 시 2021.10.07

고은 짧은 시 저녁 무렵

고은 짧은 시 저녁 무렵. 저녁 무렵은 누구에게나 경건한 순간이다. 저녁 무렵 /고은 절하고 싶다 저녁 연기 자욱한 먼 마을 🍒 ❄출처 : 고은, 저녁 무렵, 시인의 마음으로 시 읽기, 사문난적, 2011. 🍎 고은 시인의 자작시 해설 1940년대 후반 중학생이 된 나는 4㎞ 거리의 학교와 집 사이 황톳길을 걸어 다녔다. 비오는 날은 우산 대신 도롱이를 걸쳤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약 4년 동안 이런 길을 오고 갔으므로 길 가녘 우거진 여름날의 각시풀과 꿀먹은 벙어리 같은 돌멩이도 한 핏줄인 양 정이 사뭇 들었다. 방과 후 거의 혼자 돌아오는 시간이 누구에게도 발설하기 싫은 행복이었다. 호젓할 때면 나는 내 동무가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혼자서 복수(復數)였다. 길은 어쩌다 만나는 장꾼이나 소달구지 말고는..

짧은 시 2021.10.06

원태연 짧은 시 사랑의 크기

원태연 짧은 시 사랑의 크기. 당신의 사랑의 크기는? 사랑의 크기 /원태연 사랑해요 할 때는 모릅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랑했어요 할 때야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이 내려 앉은 다음에야 사랑 그 크기를 알 수 있습니다. 🍒 ❄출처 : 원태연, 사랑의 크기,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원태연 필사시집, 북로그컴퍼니, 2020. 🍎 해설 시인이 21세 무명청년일 때, 150만부가 팔린 시집에 수록되어 있던 유명한 짧은 시다. 뭐든 지나가야 잘못됨을 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도 지나가야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시적고뇌가 있다. 그리고 매우 직설적이지만 시적 임팩트가 있다. 사랑해요 할 때는 모릅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랑했어요 할 때야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이 내려 앉은 다음에야 사랑 그 크기를 알 수 있습..

짧은 시 2021.10.05

윤효 짧은 시 세차

윤효 짧은 시 세차. 비 오는날 세차해 보신적이 있습니까? 세차 /윤효 비를 맞으며 세차를 하였습니다. 오가는 이마다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등병 아들이 귀대하는 날이었습니다. 🍒 ❄출처 : 윤효, 세차, 참말, 시학, 2014. 🍎 해설 비 맞으며 하는 아버지의 이상한 세차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미친 짓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등병 아들을 깨끗한 차에 태워 귀대 전송하려는 아버지의 아들 사랑은 가슴에 감동적인 비를 내리게 한다. 비를 맞으며 세차를 하였습니다. 오가는 이마다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등병 아들이 귀대하는 날이었습니다.

짧은 시 2021.10.03

윤효 짧은 시 그리움1

윤효 짧은 시 그리움1. 짧지만 시적 고뇌와 철학이 담긴 아름다운 시다. 그리움1 /윤효 서러움의 강물을 건너지 않고 어찌 너에게 이를 수 있으랴 🍒 ❄출처 : 윤효, 그리움1, 시집 [물결], 한국문학도서관, 2007. 🍎 해설 짧은 시를 지향하는 시인의 이 시에는 철학과 시적 고뇌가 담겨 있다. 단순한 선문답이 아니다. 시인은 자작시 해설이라고 제목을 달지 않았지만 그리움1의 시적 고뇌를 다음과 같이 시로 표현했다. 🌹 시인의 자작시 해설 문득 하늘을 보았다. 옅은 회색 구름이 온 하늘을 닫아 잠그고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그 너머엔 여전히 그대가 숨 쉬고 있겠지만 찾을 수 없는 하늘길로 인해 가슴 한켠에 휑하니 빈 바람이 불었다. 닫아버린 문 밖에서 오랜 시간 서성거렸다. 하지만 문을 열지 않..

짧은 시 202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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