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짧은 시 추일미음. 당신은 이번 가을에 어떤 수확을 거두셨습니까?
추일미음
/서정주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촉계는 붉은 물이 들었지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안해박은 뜰 안에 큰 주먹처럼 놓이고
타래박은 뜰 밖에 작은 주먹처럼 놓였다만
내 주먹은 어디다가 놓았으면 좋을꼬 🍒
* 추일미음(秋日微吟): 가을날에 나직이 읊조려 보는 시
촉계: 접시꽃. 촉규화 또는 촉계화라고도 한다. 꽃 색갈은 다양하나 빨강색 접시꽃이 예쁘다.
안해박: 집안에 사람이 심어 가꾸는 박
타래박: 집 밖에 자생하는 박으로 작은 박들이 주렁주렁 여럿 열리는 넝쿨박
❄출처 : 서정주, 추일미음, 미당 서정주 전집, 은행나무, 2017.
🍎 해설
익어가는 감과 붉게 물든 맨드라미꽃, 큰 주먹처럼 작은 주먹처럼 큰 안해박과 타래박을 보면서 시인은 결실의 계절 가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동시에 시인은 안해박과 타래박도 속이 꽉 차 있는데 자신의 주먹 안에는 무엇이 가득차 있는지, 자기를 성찰해 본다.
금년에 내가 이룬 결실은 과연 무엇인가? 여러분은 빈 주먹, 적수공권 밖에 없다고 한탄하지 마시라.
시인은 괴로워하는 자책을 여러분에게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금년을 잘 마무리하고 내년 가을에도 어떤 보람과 수확을 거두는 치열한 삶을 살 것을 빨간 감처럼 주렁주렁 타래박처럼 아름답게 여러분에게 나직이 읊조려 볼 따름이다.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촉계는 붉은 물이 들었지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안해박은 뜰 안에 큰 주먹처럼 놓이고
타래박은 뜰 밖에 작은 주먹처럼 놓였다만
내 주먹은 어디다가 놓았으면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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