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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11

정지용 석류

정지용 석류. 석류알을 먹으며 떠오른 사랑.석류/정지용장미꽃 처럼 곱게 피여 가는 화로에 숯불,입춘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여홍보석 같은 알을 한알 두알 맛 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둘의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네 가슴에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고기의 손가락, 손가락,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신라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 ❄출처 : 정지용, 『정지용 시집』, 범우사, 2020. 🍎 해설*새론 : 사이로는.*녀릿녀릿 : 여..

좋은시 05:37:09

정지용 바다1

정지용 바다1. 아침 바다를 청각적 시각적으로 형상화.바다1/정지용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오·오·오·오·오· 연달아서 몰아 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제비 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 🍒 ❄출처 : 정지용, 『정지용 시집』, 범우사, 2020. 🍎 해설아침 바다를 청각적·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역동적으로 형상화 한 시다. ‘바다’는 간밤의 시련인 ‘뇌성’을 겪고 난 뒤, 생명력 있고 싱싱한 포돗빛으로 부풀어진다. 이 과정을 겪고난 후, ‘바다’는 시련을 극복한 생명력 넘치는 곳이 된다.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아서 몰아 온다.’ 포도빛으로 부풀..

좋은시 2024.11.10

이대흠 아름다운 위반

이대흠 아름다운 위반. 인정 넘치는 훈훈한 시.아름다운 위반/이대흠기사양반! 저 짝으로 쪼깐 돌아서 갑시다 어 게 그란다요. 버스가 머 택신지 아요? 아따 늙은이가 무르팍이 애링께 그라재 쓰잘데기 읎는 소리하지 마시오 저번착에 기사는 도라가듬마는···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노인네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저번착에도 내가 모셔다 드렸는디 🍒 ❄출처 : 이대흠 시집, 『귀가 서럽다』, 창비, 2014. 🍎 해설*쪼깐 : ’조금‘의 방언 *물팍 : ‘무르팍’의 준말, ‘무릎’. *애리다 : ‘아리다’. 아프다. *쓰잘데기 : ‘쓸데’의 방언. 전라도의 시골 마을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무릎이 아픈 한 노인 승객과 버스 운전기사가 주고받은 대화다. 무릎이 아픈 노인은 한 걸음이라도 덜 걷고 싶어서 “저 쪽으로 조금..

좋은시 2024.11.09

최하림 이슬방울

최하림 이슬방울. 말간 세계와 호기심 많은 동심.이슬방울/최하림이슬방울속의말간세계우산을쓰고들어가봤으면 🍒 ❄출처 : 최하림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 창비, 1976. 🍎 해설이 시에는 티 없이 맑은 ‘말간 세계’ 가 있다. 별의별 호기심으로 가득찬 순수한 동심도 들어 있다.  우산을 쓰고 이슬방울 속으로 들어가는 마음이 영롱하다.당신도 오늘 “말간 하루”, 그리운 사람과 함께 우산을 쓰고 이슬방울 속으로 들어가 보는 하루를 보내시기 바란다.  이슬방울속의말간세계우산을쓰고들어가봤으면

짧은 시 2024.11.08

박용래 둘레

박용래 둘레. 산 둘레를 그린 아름다운 수채화.둘레/박용래산은산빛이 있어 좋다먼 산 가차운 산가차운 산에버들꽃이 흩날린다먼 산에저녁해가 부시다아, 산은둘레마저 가득해 좋다 🍒 ❄출처 : 박용래 시선, 『저녁 눈』, 미래사, 1991. 🍎 해설한 편의 아름다운 수채화다.가차운 산과 먼 산을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축 늘어진 버드나무의 꽃이 이쪽저쪽으로 날린다. 가차운 산은 가차운 산대로, 먼 산은 먼 산대로 아름다운 산빛이 있다. 먼 산 가차운 산이 함께 빚어 만들어내는 '산 둘레' . "둘레마저 가득해 좋다"의 그 '둘레'는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산은산빛이 있어 좋다먼 산 가차운 산가차운 산에버들꽃이 흩날린다먼 산에저녁해가 부시다아, 산은둘레마저 가득해 좋다

좋은시 2024.11.07

진은영 연애의 법칙

진은영 연애의 법칙. 연애는 감미롭고 따스하기만 한 것인가?연애의 법칙/진은영너는 나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어제 백리향의 작은 잎들을 문지르던 손가락으로. 나는 너의 잠을 지킨다 부드러운 모래로 갓 지어진 우리의 무덤을 낯선 동물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해변의 따스한 자갈, 해초들 입 벌린 조가비의 분홍빛 혀 속에 깊숙이 집어넣었던 하얀 발가락으로 우리는 세계의 배꼽 위를 걷는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포옹한다 수요일의 텅 빈 체육관, 홀로, 되돌아오는 샌드백을 껴안고 노오란 땀을 흘리며 주저앉는 권투 선수처럼 🍒 ❄출처 : 진은영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지성사, 2018. 🍎 해설연애란 감미롭고 아름답다. 향기가 백 리를 간다는 백리향의 잎처럼, 부드러운 모래처럼, 해변의 따스한 자갈처럼..

좋은시 2024.11.06

문정희 새떼

문정희 새떼. 새떼를 보며 흘러가는 인생을 생각한다.새떼/문정희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 피도 흘러서 하늘로 가고 가랑잎도 흘러서 하늘로 간다. 어디서부터 흐르는지도 모르게 번쩍이는 길이 되어 떠나감 되어. 끝까지 잠 안든 시간을 조금씩 얼굴에 묻혀가지고 빛으로 포효(咆哮)하며 오르는 사랑아. 그걸 따라 우리도 모두 흘러서 울 이유도 없이 하늘로 하늘로 가고 있나니. 🍒 ❄출처 : 문정희 시집, 『새떼』, 민학사, 1975. 🍎 해설이 시는 하늘을 날으는 새떼를 보며 시인이 펼친 생각을 담고 있다. '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 강물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흐름의 행로에서 예외적이지 않다는 뜻이다.어디서부터 흐르는지 모르게 출발했어도, 대부분의 존재는 언제나 길 위에 있으며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는 중..

좋은시 2024.11.05

김광규 나 홀로 집에

김광규 나 홀로 집에. 나 홀로 집에 남았지만 혼자는 아닌 셈이다.나 홀로 집에/김광규복실이가 뒷다리로 일어서서 창틀에 앞발 올려놓고 방 안을 들여다본다 집 안이 조용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나 보다 오후 늦게 마신 커피 덕분에 밀린 글쓰기에 한동안 골몰하다가 무슨 기척이 있어 밖으로 눈을 돌리니 밤하늘에 높이 떠오른 보름달이 창 안을 들여다본다 모두들 떠나가고 나 홀로 집에 남았지만 혼자는 아닌 셈이다 🍒 ❄출처 : 김광규 시집, 『하루 또 하루』, 문학과지성사, 2011. 🍎 해설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집에 혼자 남아 글을 쓴다. 마당에선 강아지 빠삐옹이 자꾸만 방 안을 기웃거린다. 하늘에선 보름달이 창 안을 들여다 보고 나를 내려다본다. 혼자 있는 것 같지만 눈을 돌리면 곳곳에 동거인들이 함께 있다...

좋은시 2024.11.04

박성우 매우 중요한 참견

박성우 매우 중요한 참견. 사람살이의 온기가 느껴진다.매우 중요한 참견/박성우호박 줄기가 길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있다 느릿느릿 길을 밀고 나온 송앵순 할매가 호박 줄기 머리를 들어 길 바깥으로 놓아주고는 짱짱한 초가을 볕 앞세우고 깐닥깐닥 가던 길 간다 🍒 ❄출처 : 박성우 시집,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 창비. 2024. 🍎 해설시골 길을 가던 할머니의 참견은 딱한 사정에 처해 있는 남을 도우려는 마음과 착한 마음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참견이다. 호박 줄기가 길의 위로 기어가는 것을 본 할머니는 넝쿨을 들어서 길 밖으로 뻗어갈 방향을 돌려놓는다. 매우 중요한 참견이다. 그리고 매우 아름다운 참견이다. 호박 줄기가 기어가는 모양은 ‘성큼성큼’이다. 반면에 할머니의 발걸음은 ‘느릿느릿’이다. 아름다운..

짧은 시 2024.11.03

이성선 사랑

이성선 사랑. 온유한 사랑에 대한 조용한 사유.사랑/이성선더러운 내 발을 당신은꽃잎 받듯 받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흙자국을 남기지만당신 가슴에는 꽃이 피어납니다 나는 당신을 눈물과 번뇌로 지나가고당신은 나를 사랑으로 건넙니다 당신을 만난 후 나는 어려지는데나를 만난 당신은 자꾸 늙어만 갑니다 🍒 ❄출처 : 이성선 시집,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세계사, 2000. 🍎 해설이성선 시인(1941~2001)은 평생 설악산 기슭에 살면서 시를 써 왔다. 뛰어난 서정시인이었다. 그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조화롭게 유도하며 우주의 질서 안에 인간의 삶이 놓여 있음을 관찰하는 데 충실하다.  그의 사랑시도 그렇다. 온유한 사랑을 주로 쓴다. 사랑을 조용히 사유한다. 당신은 언제나 나의 잘못을 감싼다..

좋은시 20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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