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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30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 명시 중의 하나.예전엔 미처 몰랐어요/김소월봄 가을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운줄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줄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줄은'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출처 : 김소월 시집,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스타북스, 2024. 🍎 해설이 역작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한 그리움과 설움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아우르는 뛰어난 서정시다. 민요조의 리듬 속에서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란 후렴구가 반복되면서 아름다운 시적 판타지가 표현되고 있다. 그리움을 알기 전에는 단순한 자연에 지나지 않았던 달이 사랑이 싹트다 보니 점점 그리움을 촉발시키는 연정의 전령사가 되어..

좋은시 2024.11.30

이대흠 옛날 우표

이대흠 옛날 우표. 우표를 침으로 붙이던 종이 편지가 그립다.옛날 우표/이대흠혀가 풀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먼 데 있는 그대에게 나를 태워 보낼 때우표를 혀끝으로 붙이면내 마음도 찰싹 붙어서 그대를 내 쪽으로끌어당길 수 있었지 혀가 풀이 되어그대와 나를 이었던 옛날 우표 그건 다만 추억 속에서나 있었을 뿐이지어떤 본드나 풀보다도서로를 단단히 묶을 수 있었던 시절그대가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우리는 떨어질 수 없었지 혀가 풀이었던 시절이 있었지사람의 말이 푸르게 돋아순이 되고 싹이 되고이파리가 되어 펄럭이다가마침내 꽃으로 달아올랐던 시절 그대의 손끝에서 만져질 때마다내 혀는 얼마나 달아올랐을까그대 혀가 내게로 올 때마다나는 얼마나 뜨거운 꿈을 꾸었던가 그대의 말과 나의 꿈이 초원을 이루고이따끔은 배부른 말 떼..

좋은시 2024.11.29

안도현 겨울 편지

안도현 겨울 편지. 사랑은 더디게 온다. 이게 겨울의 메시지다.겨울 편지/안도현흰 눈 뒤집어쓴 매화나무 마른 가지가부르르 몸을 흔듭니다 눈물겹습니다머지않아꽃을 피우겠다는 뜻이겠지요 사랑은 이렇게 더디게 오는 것이겠지요 🍒 ❄출처 : 안도현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 푸른숲, 1991. 🍎 해설머지않아 꽃을 피우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인가, 흰 눈 뒤집어쓴 매화나무 마른 가지가 부르르 몸을 흔든다.  사랑이란 이렇게 더디게 온다. 매화나무가 힘든 겨울을 이겨내고 어렵게 새 잎을 돋아내듯 사랑은 힘들게 온다.  그러나 사랑은 봄을 앞 둔 겨울의 매화나무처럼 인고의 계절을 거치면 값지게 온다.  흰 눈 뒤집어쓴 매화나무 마른 가지가부르르 몸을 흔듭니다 눈물겹습니다머지않아꽃을 피우겠다는 뜻이겠지요 사..

짧은 시 2024.11.28

천양희 사람의 일

천양희 사람의 일.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사람의 일 /천양희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 ❄출처 : 천양희 시집, 『오래된 골목』, 창비, 2003. 🍎 해설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는 매일 사람을 만나며 산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진다. 사..

좋은시 2024.11.27

한강 효에게. 2002. 겨울

한강 효에게. 2002 겨울. 세 살된 아들을 보는 젊은 엄마의 시선.효에게. 2002. 겨울/한강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겁먹은 얼굴로아이가 말했다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밀려오길래우리를 덮고도계속 차오르기만 할 줄 알았나 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내 다리를 끌어안고 다시 뒤로 숨겠지마치 내가그 어떤 것,바다로부터조차 널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먹은 것을 토해내며눈물을 흘리며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마치 나에게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너도 알게 되겠지내가 할 수 있는 일은기억하는 일뿐이란 걸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시간과 성장,집요하게 사라지고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함..

좋은시 2024.11.26

고재종 파안

고재종 파안. 옛날의 농촌 주막과 같은 훈훈한 인정이 그립다.파안/고재종마을 주막에 나가서단돈 오천 원 내 놓으니소주 세 병에두부찌게 한 냄비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그것 나눠 자시고모두들 볼그족족한 얼굴로 허허허허허허큰 대접 받았네그려 🍒 ❄출처 : 고재종 시집, 『날랜 사랑』, 창작과비평사, 1995. 🍎 해설*파안 破顔 : 얼굴이 찢어질 정도로 활짝 웃는 것.1995년 경의 농촌 주막 풍경이다. 당시 농사를 짓던 시인이 단돈 5,000원을 내놓는다.  두부찌개 한 냄비에 소주 세 병이면 노인들 몇몇이 그것을 실컷 나눠 마신다. 그리고는 모두들 불그족족한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허허허, 허허허, 큰 대접 받었네 그려!” 라며 몸 둘 바 모르게 칭찬을 했다. 참으로 소박한 모습이다. 단돈 5,000..

짧은 시 2024.11.25

한강 편지

한강 편지. 한강 작가의 실질적 데뷔 작품.편지/한강그동안 아픈데 없이 잘 지내셨는지궁금했습니다꽃 피고 지는 길그 길을 떠나겨울 한번 보내기가 이리 힘들어때 아닌 삼월 봄눈 퍼붓습니다겨우내내 지나온 열 끓는 세월얼어붙은 밤과 낮을 지나며한 평 아랫목의 눈물겨움잊지 못할 겁니다 누가 감히 말하는 거야 무슨 근거로 무슨 근거로 이 눈이 멈춘다고 멈추고만다고… 천지에, 퍼붓는 이… 폭설이, 보이지 않아? 휘어져 부러지는 솔가지들, … 퇴색한 저 암록빛이, 이, 바람가운데, 기댈 벽 하나 없는 가운데, 아아… 나아갈 길조차 묻혀버린 곳, 이곳 말이야… 그래 지낼 만하신지 아직도 삶은또아리튼 협곡인지 당신의 노래는아직도 허물리는 곤두박질인지당신을 보고난 밤이면 새도록 등이 시려워가슴 타는 꿈 속에어둠은 빛이 되고..

좋은시 2024.11.24

신달자 공연

신달자 공연. 인생은 연극이고 우리 인간은 모두 배우이다.공연/신달자막이 오르고 한 여자가 서 있다무대의 빛은 여자를 비추고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빛을 바라보면서 여자는 드디어 입을 여는 것일까서서히 천천히 희미하게 몸이 너울처럼 흔들렸다모든 관객의 눈은 그 여자에게 쏠려 있다그 여자의 생 어디쯤일까봄 여름 가을 겨울이 비가 되었다가 눈이 되었다가갑자기 울부짖으며 흐느끼며 온몸이 거센 파도가 된다침묵과 울수짖음 그리고 느린 여자의 형상뿐막이 내렸다다 알아들었는데 사실 대사는 한마디도 없었다. 🍒 ❄출처 : 신달자 시집,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민음사, 2023. 🍎 해설셰익스피어는 ”인생은 연극이고 우리 인간은 모두 무대 위에 선 배우이다. (All the world's a stage, An..

좋은시 2024.11.23

김소월 왕십리

김소월 왕십리. 김소월 명시 중 하나.왕십리/김소월비가 온다오누나오는 비는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온다고 하고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울랴거든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 ❄출처 : 김소월 지음, 오하근 엮음, 『정본 김소월 전집』, 집문당, 1995. 🍎 해설*삭망(朔望) :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을 아울러 이르는 말. 옛날 왕십리는 서울 중심지에서 십 리쯤 떨어진 곳으로 비가 오면 질척거리기로 유명한 곳이다. 또한 왕십리는 ‘가도 가도 왕십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가고자 하지만 쉽사리..

좋은시 2024.11.22

유하 죽도 할머니의 오징어

유하 죽도 할머니의 오징어. 명필 한석봉이 자신의 어머니 떡 쓰는 솜씨에서 깨달음을 얻었듯이.죽도 할머니의 오징어/유하오징어는 낙지와 다르게뼈가 있는 연체동물인 것을죽도에 가서 알았다온갖 비린 것들이 살아 펄떡이는어스름의 해변가한결한결 오징어 회를 치는 할머니저토록 빠르게, 자로 잰 듯 썰 수 있을까옛날 떡장수 어머니와천하 명필의 부끄러움그렇듯 어둠 속 저 할머니의 손놀림이어찌 한갓 기술일 수 있겠는가안락한 의자 환한 조명 아래나의 시는 어떤가?오징어 회를 먹으며 오랜만에 내가, 내게 던지는뼈 있는 물음 한마디 🍒 ❄출처 : 유하 시집, 『무림일기』, 문헉과지성사, 2012. 🍎 해설죽도에서 할머니가 오징어회를 능숙하게 써는 모습을 보면서 기계처럼 시를 쓰는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을 표현하고 있다. ..

좋은시 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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