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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효에게. 2002. 겨울

무명시인M 2024. 11. 26.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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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효에게. 2002. 겨울

한강 효에게. 2002 겨울. 세 살된 아들을 보는 젊은 엄마의 시선.

효에게. 2002. 겨울

/한강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를 덮고도

계속 차오르기만 할 줄 알았나 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다시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

먹은 것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성장,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함께 품었던 시절의 은밀함을

처음부터 모래로 지은

이 몸에 새겨두는 일뿐인 걸

 

괜찮아

아직 바다는 우리에게 오지 않으니까

우리를 쓸어 가기 전까지

우린 이렇게 나란히 서 있을 테니까

흰 돌과 조개껍질을 더 주울 테니까

파도에 젖은 신발을 말릴 테니까

까끌거리는 모래를 털며

때로는

주저앉아 더러운 손으로

눈을 훔치기도 하며 🍒

 

출처 :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 해설

한강 작가는 이 시에 대해, "아들이 3살 때 바다에 갔었는데 하얀 돌과 조개 껍데기만 보면 줍고 싶어했다, 오전에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서 돌아와서 썼던 시"라고 말했다.

 

앞으로 아들이 세상을 마주하며 겪게 될 삶의 과정과 성장 成長을 지켜보는 젊은 엄마의 애틋한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는 우수작품이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전화를 받는 순간, 한강 작가는 이 시에서 나온 아들 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아들 효는 이제는 다 성장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다시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괜찮아

아직 바다는 우리에게 오지 않으니까

우리를 쓸어 가기 전까지

우린 이렇게 나란히 서 있을 테니까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었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다시 뒤로 숨겠지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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