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효에게. 2002 겨울. 세 살된 아들을 보는 젊은 엄마의 시선.
효에게. 2002. 겨울
/한강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를 덮고도
계속 차오르기만 할 줄 알았나 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다시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
먹은 것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성장,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함께 품었던 시절의 은밀함을
처음부터 모래로 지은
이 몸에 새겨두는 일뿐인 걸
괜찮아
아직 바다는 우리에게 오지 않으니까
우리를 쓸어 가기 전까지
우린 이렇게 나란히 서 있을 테니까
흰 돌과 조개껍질을 더 주울 테니까
파도에 젖은 신발을 말릴 테니까
까끌거리는 모래를 털며
때로는
주저앉아 더러운 손으로
눈을 훔치기도 하며 🍒
❄출처 :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 해설
한강 작가는 이 시에 대해, "아들이 3살 때 바다에 갔었는데 하얀 돌과 조개 껍데기만 보면 줍고 싶어했다, 오전에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서 돌아와서 썼던 시"라고 말했다.
앞으로 아들이 세상을 마주하며 겪게 될 삶의 과정과 성장 成長을 지켜보는 젊은 엄마의 애틋한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는 우수작품이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전화를 받는 순간, 한강 작가는 이 시에서 나온 아들 ‘효’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아들 효는 이제는 다 성장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다시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괜찮아
아직 바다는 우리에게 오지 않으니까
우리를 쓸어 가기 전까지
우린 이렇게 나란히 서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