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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697

김소월 좋은 시 개여울

김소월 좋은 시 개여울. 개울물이 졸졸졸 흘러가는 듯한 음악성과 아름다운 시어.. 개여울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출처 : 개벽(1922) 수록,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더스토리, 2016. ​ 🍎 해설 *개여울: 개울의 여울목(개울의 폭이 좁아서 물살이 좀 세게 흐르는 곳) *헤적이다: 가볍게 젓다 *잔물: 잔물결(운률 조정) *않노라시던: 않노라 하시던(운률 조정) *않노라심은: 않노라 하심은(운률 조정) 임이 주저앉아 괴로워하던 ..

좋은시 2022.06.12

노천명 좋은 시 내 가슴에 장미를

노천명 좋은 시 내 가슴에 장미를.장미의 사랑을 안으로 연소시키는 아름다운 시. 내 가슴에 장미를 /노천명 더불어 누구와 얘기할 것인가 거리에서 나는 사슴모양 어색하다 나더러 어떻게 노래를 하라느냐 시인은 카나리아가 아니다 제멋대로 내버려두어다오 노래를 잊어버렸다고 할 것이냐 밤이면 우는 나는 두견! 내 가슴속에도 들장미를 피워다오 🍒 ❄출처 : 노천명 시집, 『내 가슴에 장미를1』, 도서출판 책꽂이, 2016. 🍎 해설 *두견 : 두견새(소쩍새. 접동새). 못 다 한 사랑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운다는 전설이 있다. 시인은 한때 친일, 친북 부역이라는 자신의 과거 행적에 관해 주변으로부터 시달림을 많이 받았다. 이 시는 이런 주변 비난자들에게 “제멋대로 내버려다오”라는 자기 변호와 “밤에만 우는 나..

좋은시 2022.06.11

서정주 좋은 시 귀촉도

서정주 좋은 시 귀촉도. 못 다 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형상화한 명시. 귀촉도 /서정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 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은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 ❄출처 : 서정주 시집, 『귀촉도』, 선문사, 1948. 🍎 해설 *파촉(巴蜀) : 중국 쓰촨성(四川省)에 있던 촉 나라 땅.서역'과 함께 한 번 가면 다시는 ..

좋은시 2022.06.07

성미정 좋은 시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성미정 좋은 시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식탁을 차리다 보니...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성미정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이만 먹었다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야채뿐인 식탁에 불만을 가졌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식탁엔 점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그는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 ❄출처 : 성미정 시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민음사,..

좋은시 2022.06.06

송찬호 좋은 시 구두

송찬호 좋은 시 구두, 새 구두를 한번 사서 신어 보시렵니까? 구두 /송찬호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 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 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내 발을 위로하..

좋은시 2022.06.04

김경미 좋은 시 비망록

김경미 좋은 시 비망록. 스물네 살이다.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비망록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좋은시 2022.06.02

나태주 좋은 시 유월에

유월에 /나태주 ​ 말없이 바라 보아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 때때로 옆에 와 서 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따뜻합니다 산에 들에 하이얀 무찔레꽃 울타리에 넝쿨장미 어우러져 피어나는 유월에 그대 눈길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나는 황홀합니다 그대 생각 가슴 속에 안개되어 피어오름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가득합니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나태주 대표시 선집』, 푸른길, 2017. 🍎 해설 오늘은 6월 1일이다. 어떤 외국 시인은 ‘인생은 즐거워라 6월이 오면’이라고 노래했다. 새로운 녹음이 돋아나 진초록이 에워싸오면 사랑을 하지 않고는 못견딘다. 시인은 6월을 통해 사랑의 마음을 감미롭게 호흡하고 있다. 산에 들에 하이얀 무찔레꽃 울타리에 넝쿨장미 어우러져 피어나는 유월에 그대 눈길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좋은시 2022.06.01

문정희 좋은 시 찔레

문정희 좋은 시 찔레. 사랑의 아픔까지도 포용하고 이를 성숙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찔레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어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 ❄출처 : 문정희 시집, 『찔레』, 북인, 2008. 🍎 해설 이별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아픔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좋은시 2022.05.31

유하 좋은 시 자동문 앞에서

유하 좋은 시 자동문 앞에서. 열려라 참깨, 이 주문만 외우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세상이다. 자동문 앞에서 /유하 이제 어디를 가나 아리바바의 참깨 주문 없이도 저절로 열리는 자동문 세상이다. 언제나 문 앞에 서기만 하면 어디선가 전자 감응 장치의 음흉한 혀끝이 날름날름 우리의 몸을 핥는다 순간 스르르 문이 열리고 스르르 우리들은 들어간다. 스르르 열리고 스르르 들어가고 스르르 열리고 스르르 나오고 그때마다 우리의 손은 조금씩 퇴화하여 간다. 하늘을 멀뚱멀뚱 쳐다만 봐야 하는 날개 없는 키위새 머지않아 우리들은 두 손을 잃고 말 것이다. 정작, 두 손으로 힘겹게 열어야 하는 그, 어떤, 문 앞에서는 키위키위 울고만 있을 것이다. 🍒 ❄출처 : 유하 시집, 『무림일기』, 문학과지성사, 2012. 🍎 해설..

좋은시 2022.05.30

윤동주 좋은 시 아우의 인상화

윤동주 좋은 시 아우의 인상화. 아우에게 묻는다. 넌 커서 무엇이 되겠는가? 사람. 아우의 인상화 /윤동주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든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 ❄출처 : 조선일보 학생란, 연희전문 1학년 윤동주 투고문, 1938.10.17.,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보물창고, 2011. 🍎 해설 *앳된: 어려 보이는. *설은: 서투른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현 연세대) 1학년 때, 조선일보 학생란에 투고하여 뽑힌 시다. 형..

좋은시 202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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