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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697

김용호 좋은 시 주막에서

김용호 좋은 시 주막에서. 인생은 나그네길. 주막에서 나누는 서민들의 애환. 주막에서 /김용호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그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의(威儀) 있는 송덕비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친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 ❄출처 : 김용호 시집, 『날개』, , 대문사, 1956. 🍎 해설 *위의(威儀) 있는: 위엄 있는. 인생을 하나의 나그네 길로 보고, 그 고단하면서도 덧없는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

좋은시 2022.11.17

이상국 좋은 시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좋은 시 국수가 먹고 싶다. 가을엔 국수가 땡긴다.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 ❄출처 : 이상국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 창작과 비평사, 1998. 🍎 해설 가을에는 국수가 땡긴다. 후루룩 소리 내며 쫄깃쫄깃한 면을 먹으면서 뜨거운 국물까지 마시고 나면 마음에 쌓인 쓸쓸한..

좋은시 2022.11.15

이해인 좋은 시 감자의 맛

이해인 좋은 시 감자의 맛. 화가 날 때는 통째로 삶은 감자를 먹어라. 감자의 맛 /이해인 통째로 삶은 하얀 감자를 한 개만 먹어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넉넉해지네 고구마처럼 달지도 않고 호박이나 가지처럼 무르지도 않으면서 싱겁지는 않은 담담하고 차분한 중용의 맛 화가 날 때는 감자를 먹으면서 모난 마음을 달래야겠다. 🍒 ❄출처 : 이해인 시집,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열림원, 2015. 🍎 해설 요즈음엔 프라이드 치킨을 먹으면서 함께 먹는 감자튀김이 대세다. 그러나 원래 감자는 통째로 삶아 뜨거운 감자의 껍질을 벗기면서 소금 찍어 먹는 맛이 제일 맛있었다. 담담하고 차분한 감자를 쩌 먹으며 여유를 갖는 것은 중용의 시간이다. 지나침이 없는 중용의 맛을 가진 둥근 감자를 먹으며 툭하면 불거지..

좋은시 2022.11.14

이수동 좋은 시 동행

이수동 좋은 시 동행. 청첩장에 자주 인용되는 시다. 동행 /이수동 꽃 같은 그대, 나무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 그대는 꽃이라서 10년이면 10번은 변하겠지만 나는 나무 같아서 그 10년, 내 속에 둥근 나이테로만 남기고 말겠다. 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길 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않게 그대의 꽃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 🍒 ❄출처 : 이수동 시집, 『토닥토닥 그림편지』, 아트박스 , 2010. 🍎 해설 부부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가족도 소중한 동행이다. 삶의 여정에서 동행해 줄 수 있는 친구가 몇이라도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길 가는 동안 여자인 그대가 아름다운 꽃이라면 꽃과 같이 매년 변하더라도 남자인 나는 안으로 나이테만 남기는 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동행을 하겠다. 길 가는 ..

좋은시 2022.11.11

박노해 좋은 시 김밥 싸야지요

박노해 좋은 시 김밥 싸야지요. 가을이다. 김밥을 싸서 가족과 함께 소풍을 가보시기 바란다. 김밥 싸야지요 /박노해 어미니 뭐해요 김밥 싸야지요 오늘은 휴일인데 아침해도 밝네요 고단하신 어비진 가을볕을 먹어야 해요 푸른 하늘물에 시린 눈동자 씻어야 해요 어머니 오늘은 김밥을 싸요 우린 너무 좁게 지냈잖아요 우린 너무 빨리 살았잔아요 텔레비전도 끄고 짜잔한 말도 끄고 오늘은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에 천천히 흙길을 걸어보아요 우린 가슴샘에서 솟아나는 참얘기를 오롯이 나눈 지가 너무 오래 되었어요 ​산자락을 돌아 들길을 걸으며 아버지 휘파람을 불어주세요 어머니 십팔번을 불러보세요 철이네도 같이 가요 민이네도 불러요 우리 함께 합창하며 둥글둥글 춤추어요 ​어머니 뭐해요 김밥 싸야지요 오늘은 휴일날, 가을 아침해..

좋은시 2022.11.09

도종환 좋은 시 벗 하나 있었으면

도종환 좋은 시 벗 하나 있었으면. 좋은 벗 하나만 있어도 인생은 행복하다. 벗 하나 있었으면 /도종환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 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길 갈 수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 ❄출처 : 도종환 시집, 『당신은 누구십니까』, 창비, 1999. 🍎 해설 친구는 중요하다. 정다운 친구와 마주 앉아서 이런 저런 얘..

좋은시 2022.11.08

박용래 좋은 시 구절초

박용래 좋은 시 구절초. 구절초 가는 허리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사내 자격이 없다.구절초/박용래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추분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 ❄출처 : 박용래 시집, 『먼 바다』, 창작과비평사, 1984. 🍎 해설구절초는 가을날 들판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면서 우리를 조용히 위로해 주고 있는 새하얀 들국화다. 보통 음력 9월 9일 무렵에 꽃이 핀다고 해서 구절초(九節草)라고 불린다고 한다. 안도현..

좋은시 2022.11.07

문태준 좋은 시 가재미

문태준 좋은 시 가재미. 위로받고 위로하는 서정시.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

좋은시 2022.11.05

박경리 좋은 시 우리들의 시간

박경리 좋은 시 우리들의 시간.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을 느껴보는 시. 우리들의 시간 /박경리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혀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본들 도로무익(徒勞無益)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 ❄출처 : 박경리 시집, 『우리들의 시간』, 나남출판, 2008. 🍎 해설 *도로무익(徒勞無益): 헛되이 애만 쓰고 아무런 이로움이 없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나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목에 힘을 주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을 느껴보는 시다. 박경리 작가의 삶에서 우러나온 성찰적 시어가 잔잔하게 담겨 있다. 🌹 이 시의 사상적 편린 공지영 작가 -이 시집을 보면 ‘어..

좋은시 2022.11.04

나태주 좋은 시 너를 두고

나태주 좋은 시 너를 두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살피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 너를 두고 /나태주 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가장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가진 생각 가운데서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표정 가운데 가장 좋은 표정을 너에게 보이고 싶다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 나 스스로 네 앞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열림원, 2019. 🍎 해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고운 말, 가장 좋은 생각, 가장 좋은 표정을 보내고 싶은 애틋한 마음. 너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 네 앞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을 다짐한다...

좋은시 202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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