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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697

정호승 바닥에 대하여

정호승 좋은 시 바닥에 대하여.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바닥과 부딪히며 살아간다. 바닥에 대하여 /정호승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 ❄출처 : 정호승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 2004. 🍎 해설 정호승 시인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 온 시인이다. 낮은 곳에 임한..

좋은시 2022.12.05

나태주 그런 너

나태주 좋은 시 그런 너. 너한테도 없는 너를 사랑한다. 그런 너 /나태주 세상 어디에도 없는 너를 사랑한다. 거리에도 없고 집에도 없고 커피 잔 앞이나 가로수 밑에도 없는 너를 내가 사랑한다.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는 걸까? 네 모습 속에 잠시 있고 네 마음속에 잠시 네가 쉬었다 갈 뿐 더 많은 너는 이미 나의 마음속으로 이사 와서 살고 있는 너! 그런 너를 내가 사랑한다 너한테도 없는 너를 사랑한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마음이 살짝 기운다』, 알에이치코리아, 2019. 🍎 해설 이 감미로운 사랑시는 캘리그라피 하기에 좋은 시다. 나태주 시인은 ‘내가 너를’이라는 시에서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는 유명한 시구를 창조한 바 있다. 이 시에서는 ‘그런 너를 내가 사랑한다 너한..

좋은시 2022.12.04

신경림 세밑

신경림 세밑. 연말에는 누구에게나 새해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생긴다. 그 이유는? 세밑 /신경림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뒤돌아본다 푸섶길의 가없음을 배우고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새소리의 기쁨을 비로소 안 한 해를 비탈길을 터벅거리며 뒤돌아본다 저물녘 내게 몰아쳐온 이 바람 무엇인가 송두리째 나를 흔들어놓는 이 폭풍 이 바람은 무엇인가 눈도 귀도 멀게 하는 해도 달도 멎게 만드는 이것은 무엇인가 자리에 누워 뒤돌아본다 만나는 일의 설레임을 알고 마주 보는 일의 뜨거움을 알고 헤어지는 일의 아픔을 처음 안 한 해를 꿈속에서 다시 뒤돌아본다 삶의 뜻으로 또 새로 본 이 한 해를 🍒 ❄출처 : 신경림 시집, 『 달 넘세』, 창비 , 1985. 🍎 해설 *세밑: 연말. 세모(歲暮). 어느덧 연말이 다가온다...

좋은시 2022.12.02

진은영 어울린다

진은영 어울린다. 자신과 주변에 관심을 갖고 서로 응원하자는 시. 어울린다 /진은영 너에게는 피에 젖은 오후가 어울린다 죽은 나무 트럼펫이 바람에 황금빛 소음을 불어댄다 너에게는 희망이 어울린다 식초에 담가둔 흰 달걀처럼 부서지는 희망이 너에게는 2월이 잘 어울린다 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 너에게는 토요일이 잘 어울린다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 내내 기다리던 너에게는 촛불 앞에서 흔들리는 흰 얼굴이 어울린다 어둠과 빛을 아는 인어의 얼굴이 나는 조용한 개들과 잠든 깃털, 새벽의 술집에서 잃어버린 시구를 찾고 있다. 너에게 어울리는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네 손에는 끈적거리는 달콤한 망고들 네 영혼에는 망각을 자르는 가위들이 솟아나는 저녁이 어울..

좋은시 2022.12.01

이기철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이기철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묵직하게 위로를 주는 시.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이기철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껴입을수록 추워지는 것은 시간과 세월뿐이다. 돌의 냉혹, 바람의 칼날, 그것이 삶의 내용이거니 생의 질량 속에 발을 담그면 몸 전체가 잠기는 이 숨막힘 설탕 한 숟갈의 회유에도 글썽이는 날은 이미 내가 잔혹 앞에 무릎 꿇은 날이다 슬픔이 언제 신음 소릴 낸 적 있었던가 고통이 언제 뼈를 드러낸 적 있었던가 목조계단처럼 쿵쿵거리는, 이미 내 친구가 된 고통들 그러나 결코 위기가 우리를 패망시키지는 못한다 내려칠수록 날카로워지는 대장간의 쇠처럼 매질은 따가울수록 생을 단련시키는 채찍이 된다 이것은 결코 수식이 아니니 고통이 끼..

좋은시 2022.11.29

양광모 아깝다

양광모 아깝다. 가슴에 와닿는 인생시. 아깝다 /양광모 화를 내는 시간이 아깝다 슬픔에 젖어 있는 시간이 아깝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시간이 아깝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시간이 아깝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시간이 아깝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시간이 아깝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다시 오지 않으니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아깝지 않은가 아까운 시간을 불행의 시간으로 흘러보내지 말라 불행을 선택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 ❄출처 : 양광모 시집, 『가끔 흔들렸지만 늘 붉었다』, 이룸나무, 2016. 🍎 해설 가슴에 와닿는 인생시다. 인생길은 후회하면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아까운 시간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시간이 아깝다. 다른 사람이 가진 ..

좋은시 2022.11.27

유치환 좋은 시 바위

유치환 좋은 시 바위. 외부의 자극에 흔들림없이 자신을 지켜나가는 의지의 표상. 바위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출처 : 유치환 시집, 『생명의 서』, 미래사, 2002. 🍎 해설 이 시는 외부의 자극에 흔들림없이 자신을 지켜가는 의지의 표상으로 많이 인용된다. 본래 인간은 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희노애락에 일희일비하면서 살아 간다. 시인 역시 이런 희노애락 때문에 괴로움을 지닌 듯하다. 시인은 그 괴로운 희노애락의..

좋은시 2022.11.25

백석 좋은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좋은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의 대표적인 서정시. 감동적인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

좋은시 2022.11.24

손택수 좋은 시 단풍나무 빤스

손택수 좋은 시 단풍나무 빤스. 아내의 팬티에 구멍이 난 걸 알게된 건... 단풍나무 빤스 /손택수 아내의 빤스에 구멍이 난 걸 알게 된 건 단풍나무 때문이다 단풍나무가 아내의 꽃무늬 빤스를 입고 볼을 붉혔기 때문이다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을 넘어 아파트 화단 아래 떨어진 아내의 속옷, 나뭇가지에 척 걸쳐져 속옷 한 벌 사준 적 없는 속없는 지아비를 빤히 올려다보는 빤스 누가 볼까 얼른 한달음에 뛰어 내려가 단풍나무를 기어올랐다 나는 첫날밤처럼 구멍 난 단풍나무 빤스를 벗기며 내내 볼이 화끈거렸다 그 이후부터다, 단풍나무만 보면 단풍보다 내 볼이 더 바알개지는 것은 🍒 ❄출처 : 손택수 시집, 『목련 전차』, 창비, 2006. 🍎 해설 * 빤스: 팬츠, 팬티.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

좋은시 2022.11.21

김소월 좋은 시 가는 길

김소월 좋은 시 가는 길. 인기가 있다. 인기의 3대 이유는? 가는 길 /김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 저 산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출처 : (1923)에 수록, 김소월,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알에이치코리아, 2020. 🍎 해설 * 흐릅디다려: 흐릅니다그려의 줄임말. 평안도 방언. 소월의 서정시 중 인기가 있는 시다. 그 이유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떠나가는 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아름답게 형상화하였다. 시적 리듬이 아름답고 산골물이 흘러가는 듯 하다. 둘째, 인생 무상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 연의 ‘흘러..

좋은시 20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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