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진은영 어울린다

무명시인M 2022. 12. 1.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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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어울린다.

진은영 어울린다. 자신과 주변에 관심을 갖고 서로 응원하자는 시.

어울린다

/진은영

너에게는 피에 젖은 오후가 어울린다

죽은 나무 트럼펫이

바람에 황금빛 소음을 불어댄다

 

너에게는 희망이 어울린다

식초에 담가둔 흰 달걀처럼 부서지는 희망이

 

너에게는 2월이 잘 어울린다

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

 

너에게는 토요일이 잘 어울린다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 내내 기다리던

 

너에게는 촛불 앞에서 흔들리는 흰 얼굴이 어울린다

어둠과 빛을 아는 인어의 얼굴이

 

나는 조용한 개들과 잠든 깃털,

새벽의 술집에서 잃어버린 시구를 찾고 있다. 너에게 어울리는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네 손에는 끈적거리는 달콤한 망고들

네 영혼에는 망각을 자르는 가위들이 솟아나는 저녁이 어울린다

 

너에게는 어린 시절의 비밀이

나에게는 빈 새장이 잘 어울린다

피에 젖은 오후의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이 🍒

 

출처 :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지성사, 2022.

 

🍎 해설

지난 1128, 광화문글판에는 진은영 시인의 이 시 어울린다가 내걸렸다. 202212월에서 20232월까지 겨울편으로 내걸린다. 시인으로서는 큰 영광이다.

 

내걸린 시구는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이다.

 

이 시는 손을 내미는 작은 행동이 상대를 위로하고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언어임을 되새기게 한다. 자신과 주변에 관심을 갖고 서로 응원하며 희망찬 새해를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참 어렵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자는 희망적 메시지를 담은 이 시는 시의적절하다.

 

광화문글판 그림은 눈 내리는 겨울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다정하게 내린 눈을 뭉치는 모습으로 디자인해 함께 어울리고 같은 생각을 하는 우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우리라는 단어를 통해 공감과 연대가 지닌 힘을 전달하고 있다. 서로 응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삶 속에 상실과 슬픔을 끌어안는 사랑의 공통감각이 필요한 때다.

결핍으로 가득 찬 과거와 불안하고 비탄스러운 현실 속의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걸어 미래로 나아가자. 고통의 쓴잔을 나눠 마시며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는 사랑의 힘으로.

 

그런 뜻에서 토요일이 잘 어울리는 그대여, 낼 모레 이번 토요일엔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 내내 기다려 보시지 않겠는가?

 

🌹 진은영 시인

진은영 시인, 52세. 사진은 본인 소장.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문학과사회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전공 교수로 가르치며 시를 쓰고 있다.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냈고,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천상병 시문학상, 백석문학상 등을 받았다. 실비아 플라스의 소설 메리 벤투라와 아홉 번째 왕국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처 :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지성사, 2022, 출판사의 작가 소개.

진은영 시인은 이번에 10년만에 신작 시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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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는 토요일이 잘 어울린다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 내내 기다리던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 내내 기다리던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나에게는 빈 새장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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