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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좋은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무명시인M 2022. 11. 2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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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좋은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좋은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의 대표적인 서정시. 감동적인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출처 : 194810학풍창간호에 발표, 백석의 남한에서의 마지막 시. 백석 시집,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Human & Books, 2011.

 

🍎 해설

제목의 뜻: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남신의주 유동 마을에 사는 박시봉이란 사람의 집. 이런 뜻이다. 편지의 수신인 주소다. 시인이 자기 자신과 친구에게 보낸 편지다.

이 시는 평이한 언어와 표현으로 인간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상실의 체험과 극복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 냈다. 이 시는 자신의 진솔한 체험을 바탕으로 상실의 고통을 표현했기 때문에 상실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그들의 마음을 위안해 왔다.

 

나는 아내도,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가족과도 이별한 채로 객지를 유랑하게 되었다. 고향을 떠나 유랑하며 많은 시련을 겪었고, 어느 목수네 집(남신의주 유동 마을의 박씨네)에 셋방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 집에서 나는 혼자서 생각하며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슬프고 어리석은 내 삶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하였다.

 

나는 오늘의 내 시련은 내 운명이며 나를 이끄는 무언가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고 운명론적 체념에 빠진다. 그러나 나는 운명론적 체념의 늪에 죽 빠지지는 않는다. 나는 겨울에 나무들이 눈을 맞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저녁 화로 앞에서 지나온 삶을 반성하며 가끔 눈보라가 치더라도 늘 곧고 정한 눈을 맞는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나도 저렇게 되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상실의 고통을 극복한다. 이따금씩 시련이 있더라도 늘 곧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나도 저렇게 숭고하고 강한 의지를 지향하면서 살아가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평론가들 중에는 이 시를 백석의 대표작이자 한국 서정시의 대표작이라고까지 극찬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투리, 토속적 소재를 통해 향토성을 드러내었고, 고백적 시어 속에서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내면에서 서정적으로 진솔하게 그려 낸 우수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 혼자 낭송해 보면 저절로 감동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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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집도 없고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눈을 맞을 굳고 곧은 갈매나무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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