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좋은 시 가재미. 위로받고 위로하는 서정시.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
❄출처 : 문태준 시집, 『가재미』, 문학과지성사, 2005.
🍎 해설
*가재미: 가자미가 표준말이다.
유명한 시다. 시인과 평론가들이 이 시를 가장 좋은 시로 뽑은 해가 있었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란 첫 구절에서 시인이 친척 노인의 문병을 간 것을 알 수 있다.
가재미는 치어 시기엔 머리 양측에 온전한 눈이 하나씩 붙어 있다가 성장하면서 왼쪽 눈이 오른쪽 눈으로 접근 이동한다. 눈이 한 쪽으로 몰리면 가재미가 늙었다는 것을 뜻한다. 시인은 그녀가 바다 밑에 엎드린 가자미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과 함께 그녀 옆에 시인이 따라 눕는다.
그런 다음엔 시인도 가재미가 된다.
두 마리의 가재미가 눈으로 인사하고 눈으로 말을 하고 눈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두 사람의 저 말 없는 대화.
측은지심! 죽음을 앞둔 생명에 대한 위안과 삶의 성찰이 시작된다. 위로하고 위로받는 서정의 세계가 펼쳐진다.
시인은 자기가 기쁘면 세상도 기쁘고 자신이 슬프면 세상도 슬프다는 통념적인 서정시를 쓴 게 아니다. 자기가 아닌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가 무엇인지를 이 서정시는 정성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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