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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 31

이시영 짧은 시 봄논

이시영 짧은 시 봄논. 봄철의 논인 봄논은 가뭄으로 말라있다. 마른 봄논에 봇물이 들어가는 풍경은 어떤 것일까? 봄논 /이시영 마른논에 우쭐우쭐 아직 찬 봇물 들어가는 소리 앗 뜨거라! 시린 논이 진저리처럼 제 은빛 등 타닥타닥 뒤집는 소리 🍒 ❄출처 : 이시영 시집, 『무늬』, 문학과지성사, 1994. 🍎 해설 봄철의 마른 논에 봇물이 들어가는 풍경을 이렇게 생동감있게 묘사할 수 있을까. 대단하다. 가뭄에 애타는 농민의 아픔도 가뭄으로 고달픈 마른 논도 이 시적 에스프리 앞에서는 할 말을 잊는다. 소박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살아 숨쉬고 있다. 극도로 압축된 짧은 시이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과 상징성은 깊고 크다. 마른논에 우쭐우쭐 아직 찬 봇물 들어가는 소리 앗 뜨거라! ..

짧은 시 2022.03.11

정호승 좋은 시 봄길

정호승 좋은 시 봄길. 봄길을 걸어 보셨습니까.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출처 : 정호승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창작과비평사, 1997. 🍎 해설 정호승 시인은 가난과 소외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나타내는 시를 많이 써 왔다. 그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소망을 담아내는 시를 많이 창작해 왔다. 사랑과 긍휼의 정신을 고취하고 있..

좋은시 2022.03.10

이정하 좋은 시 봄은 왔는데

이정하 좋은 시 봄은 왔는데. 이별 후 맞는 봄은 아름답기에 더욱 혹독한 계절로 느껴진다. 봄은 왔는데 /이정하 진달래가 피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집 담 모퉁이에선 장미꽃이 만발했다고 합니다. 그때가 겨울이었지요, 눈 쌓인 내 마음을 사륵사륵 밟고 그대가 떠나간 것이. 나는 아직 겨울입니다. 그대가 가 버리고 없는 한 내 마음은 영영 찬바람 부는 겨울입니다. 🍒 ❄출처 : 이정하 시집, 『한 사람을 사랑했네』, 자음과모음, 2000. 🍎 해설 비가 내린 다음에는 맑은 날이 있다. 봄에 꽃이 아름답게 피는 까닭은 겨울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후 맞는 봄은 아름답기에 더욱 혹독한 계절처럼 느껴질 것이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봄을 맞을 때 더 가슴 벅찬 감동이 올 것이다. 물론 시인은 떠나..

좋은시 2022.03.09

안도현 좋은 시 애기똥풀

안도현 좋은 시 애기똥풀. 애기똥풀을 아십니까? 애기똥풀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애기똥풀 /안도현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 ❄출처 : 안도현 시집, 『그리운 여우』, 창작과비평사, 1997. 🍎 해설 풀꽃이름에 이런 이름이 붙는 것은 좀 심하다 싶지만, ‘애기똥풀’은 줄기를 꺾으면 노란색 젖 같은 액즙이 나오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또한 오뉴월에 꽃이 피는데, 노란 꽃잎 넉 장이 붙어 있는 작은 꽃모양도 예쁘게 싸 놓은 애기똥을 연상시킨다. 약초로도 쓰이고 ..

좋은시 2022.03.08

나태주 좋은 시 봄

나태주 좋은 시 봄. 우리네 인생에도 봄이란 것이 있었을까? 봄 /나태주 봄이란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아직은 겨울이지 싶을 때 봄이고 아직은 봄이겠지 싶을 때 여름인 봄 너무나 힘들게 더디게 왔다가 너무나 빠르게 허망하게 가버리는 봄 우리네 인생에도 봄이란 것이 있었을까? 🍒 ❄출처 : 나태주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지혜, 2015. 🍎 해설 꽃은 모두 백일홍이 아니다. 눈부시게 새하얀 목련은 10일밖에 피지 않는다. 봄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그러나 이 시가 인생의 허무주의나 찰라주의, 쾌락주의를 강조한 것은 아닐 것이다. 봄이다. 살아 보라. 우선 봄을 소중하게 알고 이번 봄을 만끽하면서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보라. 그러다보면 더 많은 날들 365일..

좋은시 2022.03.07

이문재 좋은 시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좋은 시 지금 여기가 맨 앞. 끝은 끝이 아니라 사실은 맨 앞이다.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 ❄출처 :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 2014. 🍎 해설 어제와 작별한 그대여. 오늘이 맨 앞입니다. 지금 여기 그대가 정면입니다. 오늘의 시동을 새롭게 거세요. 🌹 이문재 시인의 자작시 해설 10년 만에..

좋은시 2022.03.06

김용택 짧은 시 다 당신입니다

김용택 짧은 시 다 당신입니다. 쉽고 간결하고 아름다운 봄 사랑시다. ​다 당신입니다 /김용택 개나리꽃이 피면 개나리꽃 피는 대로 살구꽃이 피면 살구꽃이 피는 대로 비 오면 비 오는대로 그리워요 보고 싶어요 손 잡고 싶어요 다 당신입니다 🍒 ​❄출처 : 김용택 시집, 『참 좋은 당신』, 시와시학사, 2007. 🍎 해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의 특기인 아주 쉽고 간결하고 아름다운 시어들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한다. 이 시도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 모든 것으로 내개 다가온다. 그대를 그리워하면 세상 모든 것은 다 당신이다. 쉽고 간결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시다. 오미크론이 머지않어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코로나19로 아직 세상이 어수선하고 여기저기에 그림자가 많다. 여러 가지로 착잡한 봄이..

짧은 시 2022.03.05

나태주 짧은 시 꽃1

나태주 짧은 시 꽃1. 봄이 소리없이 오고 있다. 이 새 봄에 그대는 사랑할 자격이 있는가? 꽃1 /나태주 다시 한 번만 사랑하고 다시 한 번만 죄를 짓고 다시 한 번만 용서를 받자 그래서 봄이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지혜, 2015. 🍎 해설 사랑하고 죄를 짓고 용서를 받는다.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다시 꽃봉오리를 맺는다. 그래서 봄이다. 그대의 사랑의 역사는? 이별의 역사는 없는가? 그러나 사랑하고 이별하면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꽃의 일생처럼. 새 봄이면. 봄이 조심조심 숨을 죽이고 오고 있다. 이 새 봄에는 그대는 초록빛 꿈을 꾸고 사랑을 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그래서 봄이다. 다시 한 번만 사랑하고 다시 한 번만 죄를 짓고 다시 한 번만 용서를 받자 그래서 ..

짧은 시 2022.03.04

류시화 좋은 시 물안개

류시화 좋은 시 물안개. 소리내어 읽을 수 있는 탁월한 낭송시이다. 물안개 /류시화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세월은 온전하게 주위의 풍경을 단단하게 부여잡고 있었다. 섭섭하게도 변해버린 것은 내 주위에 없었다 두리번 거리는 모든것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흘렀고 여전히 나는 그 긴 벤치에 그대로였다. 이제 세월이 나에게 묻는다 그럼 너는 무엇이 변했느냐고 🍒 ❄출처 : 류시화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무소의뿔, 2016. 🍎 해설 몇 겹의 인연이라는 것도 물안개처럼 쉽사리 변하고 부서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섭섭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것들이 변하고 부서진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변해버린 것..

좋은시 2022.03.03

함민복 짧은 시 뻘

함민복 짧은 시 뻘. 뻘 속의 말랑말랑한 흙은 내 발을 밀어내지 않고 내 발을 잡아준다. 뻘 /함민복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 ❄출처 : 함민복 시집, 『말랑말랑한 힘』, 문학세계사, 2012. 🍎 해설 맨발로 뻘에 들어가 보라. 말랑말랑한 흙이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나오면서 발은 흙 속으로 빠진다. 발은 흙속에 빠지지만 흙은 발을 거부하지 않고 발을 잡아준다. 발은 흙의 말랑말랑한 힘을 느낀다. 흙도 발의 말랑말랑함을 느끼고 꽉 잡아준다. 반면에 도시의 아스팔트는 어떤가? 아스팔트는 발을 사정없이 밀어 낸다. 말랑말랑한 갯펄의 흙은 가는 길을 잡아주기도 한다. 개펄은 강과 달리 사람들이 걸어가며 만들어낸 길과 물..

짧은 시 202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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