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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며느리밥풀꽃

송수권 며느리밥풀꽃. 고전적 장엄함과 토속적 정서의 맛이 잘 어우러진 명시.며느리 밥풀꽃/송수권날씨 보러 뜰에 내려그 햇빛 너무 좋아 생각나는산부추, 개망초, 우슬꽃, 만병초, 둥근범꼬리,씬냉이, 돈나물꽃이런 풀꽃들로만 꽉 채워진소군산열도, 안마도 지나물길 백 리 저 송이섬에 갈까 그 중에서도 우리 설움뼛물까지 녹아흘러밟으면 으스러지는 꽃이 세상 끝이 와도 끝내는주저앉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꽃울엄니 나를 잉태할 적 입덧나고 씨엄니 눈돌려 흰 쌀밥 한 숟갈 들통나살강 밑에 떨어진 밥알 두 알혀 끝에 감춘 밥알 두 알몰래몰래 울음 훔쳐먹고 그 울음도 지쳐추스림 끝에 피는 꽃며느리밥풀꽃 햇빛 기진하면은 혀 빼물고지금도 그 바위섬 그늘에 피었느니라. 🍒 ❄출처 : 송수권 시집, 『초록의감옥』, 지식을만..

좋은시 07:37:49

박목월 불국사

박목월 불국사.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명사로만 연결 함축.불국사/박목월흰 달빛자하문 달 안개물소리 대웅전큰 보살 바람소리솔소리 범영루뜬 그림자 흐르히젖는데 흰 달빛자하문 바람소리물소리. 🍒 ❄출처 : 박목월 시집, 『산도화』, 영웅출판사. 1955. 🍎 해설흰 달빛 내리는 어느 깊은 가을 밤, 엷은 안개가 드리워진 불국사의 자하문, 범영루의 신비스런 풍경을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이 은은한 미소를 띠며 내려다보고 있을 때, 토함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무거운 적막을 깨뜨린다. 서술적 동사나 조사의 사용없이 명사와 명사로 된 행과 연의 결합을 통해서 어떤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의 함축적인 표현을 담아낸 시적 에스프리는 경이롭다 명상적 서정이..

좋은시 2025.04.12

김소월 길

일제 강점기 하, 유랑의 길을 걸었던 우리 민족의 비애감을 형상화.길/김소월어제도 하룻밤나그네 집에까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웠소. 오늘은또 몇 십 리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들로 갈까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정주(定州) 곽산(郭山)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저 기러기공중에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저 기러기열 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길이라도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 ❄출처 :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매문사, 1925. 🍎 해설*바이: 전혀이 시는 목적지를 상실한 나그네의 비애를 소월 특유의 7,5조의 전통적 리듬과 소박하고 일상적 언어, 자문자답 형식의 대화체를 빌려 표현한 시이다. 날아다니는 새인 까마귀와 기..

좋은시 2025.04.09

고운 머슴 대길이

고운 머슴 대길이. 고운 시인의 민중시 중 성공작.머슴 대길이/고운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상머슴으로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밥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머슴방 등잔불 아래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오듯 읽었지요어린아이 세상에 눈떴지요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살구꽃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지게작대기 뉘어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우루루르..

좋은시 2025.04.05

김소월 산

김소월 산. 일제 식민지 시대를 정면에서 대응하지 못하는 시인의 고뇌.산/김소월산(山)새도 오리나무위에서 운다산새는 왜 우노, 시메산골영(嶺) 넘어 갈라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나리네, 와서 덮이네.오늘도 하룻길칠팔십리돌아서서 육십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삼수갑산에 다시 불귀.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십오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산새도 오리나무위에서 운다.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 ❄출처 : 『개벽』 40호, 1923. 10,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RHK. 2020. 🍎 해설*시메 : 깊은 산골.*불귀(不歸) :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뜻. 고향을 그리워하며 낯선 타향에서 유랑의 길을 걷는 시인의 비애감을 표출하고 있다. 시인은 ..

좋은시 2025.04.03

김동명 내 마음은 호수요

내 마음은 호수요/김동명내 마음은 호수요그대 노 저어 오오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오그대 저 문을 닫어주오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나는 달아래 귀를 기울이며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오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이제 바람이 일면나는 또 나그네같이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 ❄출처 : 1937년 6월 『조광』에 발표되었고, 1938년에 발간된 김동명의 제2시집 『파초』에 수록되었다. 🍎 해설이 시는 다양한 비유와 적절한 어조를 활용하여 사랑의 기쁨과 애닲음을 감미롭게 노래한 서정시다. 시인은 각 연에서 자신의 마음을 은유법을 활용하여 네 가지..

좋은시 2025.03.30

변영로 논개

변영로 논개, 언제나 감동을 주는 대표작인 항일시.논개/변영로거룩한 분노는종교보다도 깊고불붙는 정열은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그 물결 위에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높게 흔들리우며그 석류 속 같은 입술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그 물결 위에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길이길이 푸르리니그대의 꽃다운 혼(魂)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그 물결 위에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 🍒 ❄출처 : 변영로 시집, 『조선의마음』, 평문관. 1924. 🍎 해설변영로 시인이 일제 치하인 1922년 3월 《신생활》지에 발표한 이 시는 20년대 전반기 한국 항일시의 정상을 보여 주는..

좋은시 2025.03.28

변영로 봄비

변영로 봄비. 서정성, 음악성이 출중한 항일시.봄비/변영로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그의 향기로운 자랑 앞에 자지러지노라!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  ❄출처 : 변영로 시집, 『조선의마음..

좋은시 2025.03.27

김명인 동두천 1

김명인 동두천 1. 일종의 상처와도 같았던 도시 동두천을 다시 생각해 본다.동두천 1/김명인기차가 멎고 눈이 내렸다 그래 어둠 속에서번쩍이는 신호등불이 켜지자 기차는 서둘러 다시 떠나고내 급한 생각으로는 대체로 우리들도 어디론가가고 있는 중이리라 혹은 떨어져 남게 되더라도저렇게 내리면서 녹는 춘삼월 눈에 파묻혀 흐려지면서 우리가 내리는 눈일 동안만 온갖 깨끗한 생각 끝에역두(驛頭)의 저탄 더미에 떨어져몸을 버리게 되더라도배고픈 고향의 잊힌 이름들로 새삼스럽게서럽지는 않으리라 그만그만했던 아이들도미군을 따라 바다를 건너서는더는 소식조차 모르는 이 바닥에서 더러운 그리움이여 무엇이우리가 녹은 눈물이 된 뒤에도 등을 밀어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가게 하느냐바라보면 저다지 웅크린 집들조차 여기서는공중에 뜬 신기루..

좋은시 2025.03.12

오일도 내 소녀

오일도 내 소녀. 독자가 완성하는 짧은 명시.내 소녀/오일도(吳一島)빈 가지에 바구니 걸어놓고내 소녀 어디 갔느뇨. .......................박사(薄紗)의 아지랭이오늘도 가지 앞에 아른거린다. 🍒 ❄출처 : 오일도 창간, 『시원(詩苑)지』, 1935년.  🍎 해설‘박사(薄紗)’: 비단(生絹)으로 얇게 짠 옷감. 1930년대에 이토록 짧은 서정시가 창조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봄. 산나물을 캐러 온 소녀, 바구니만 나뭇가지에 걸리고 소녀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점선은 이 소녀에 대한 행방을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표현이다.  아지랑이가 오늘도 나뭇가지 앞에 그냥 아른거리고 있다.누구에게나 있어왔던 `내 소녀`. 그 내 소녀는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다는 말이냐? 독자가 직접 마음 속..

짧은 시 202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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