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송수권 며느리밥풀꽃

무명시인M 2025. 4. 14.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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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며느리밥풀곷.

송수권 며느리밥풀꽃. 고전적 장엄함과 토속적 정서의 맛이 잘 어우러진 명시.

며느리 밥풀꽃

/송수권

날씨 보러 뜰에 내려
그 햇빛 너무 좋아 생각나는
산부추, 개망초, 우슬꽃, 만병초, 둥근범꼬리,
씬냉이, 돈나물꽃
이런 풀꽃들로만 꽉 채워진
소군산열도, 안마도 지나
물길 백 리 저 송이섬에 갈까
 
그 중에서도 우리 설움
뼛물까지 녹아흘러
밟으면 으스러지는 꽃
이 세상 끝이 와도 끝내는
주저앉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꽃
울엄니 나를 잉태할 적 입덧나고
 
씨엄니 눈돌려 흰 쌀밥 한 숟갈 들통나
살강 밑에 떨어진 밥알 두 알
혀 끝에 감춘 밥알 두 알
몰래몰래 울음 훔쳐먹고 그 울음도 지쳐
추스림 끝에 피는 꽃
며느리밥풀꽃
 
햇빛 기진하면은 혀 빼물고
지금도 그 바위섬 그늘에 피었느니라. 🍒
 
❄출처 : 송수권 시집, 『초록의감옥』,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 해설

이 시는 설화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구전설화로 부녀자들 사이에서 간간이 전해지고 있다.
심한 시집살이에 허기진 며느리가 밥풀을 훔쳐먹다가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은 뒤 꽃이 되었다는 설화.
 
옛날에 아주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하던 며느리가 배가 몹시 고파 몰래 밥풀을 훔쳐먹었다. 이를 알게 된 시어머니가 음식을 훔쳐먹었다고 나무라면서 모진 매를 때렸다. 며느리는 매를 맞으면서, “음식이 아니라 요거예요.”라고 하면서 밥풀을 혀끝에 내밀면서 죽었다.
 
그 혼이 며느리밥풀꽃이 되었는데, 낮은 산에서는 부끄러워 있지 못하고 깊은 산에만 나 있다고 한다. 며느리밥풀꽃은 붉은 입술 모양의 꽃 위에 흰색 무늬가 있는데 밥풀알처럼 보인다. 며느리밥풀꽃 설화는 꽃 모양에 대한 상상력에서 시작된 것으로, 고부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혹독한 시집살이의 고충과 약자인 며느리의 한을 담고 있다.
 
물론, 송수권 시인은 며느리밥풀꽃에 얽힌 슬픈 설화를 원용해 가난과 설움 속에서도 끈질게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민중의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투쟁 기조의 민중시가 아니다. 고전적 장엄함과 토속적 정서의 맛이 잘 어우러진 명시다.
 

울엄니 나를 잉태할 적 입덧나고
씨엄니 눈돌려 흰 쌀밥 한 숟갈 들통나
살강 밑에 떨어진 밥알 두 알
혀 끝에 감춘 밥알 두 알
몰래몰래 울음 훔쳐먹고 그 울음도 지쳐
추스림 끝에 피는 꽃
며느리밥풀꽃
 
햇빛 기진하면은 혀 빼물고
지금도 그 바위섬 그늘에 피었느니라.

씨엄니 눈돌려 흰 쌀밥 한 숟갈 들통나
살강 밑에 떨어진 밥알 두 알 혀 끝에 감춘 밥알 두 알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밥풀꽃의 모습. 조용경 사진작가의 작품.
지금도 그 바위섬 그늘에 피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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