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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343

복효근 짧은 시 홍시

복효근 짧은 시 홍시. 홍시도 제 나름의 역사가 있다. 홍시 /복효근 누구의 시냐 그 문장 붉다 봄 햇살이 씌워준 왕관 다 팽개치고 천둥과 칠흑 어둠에 맞서 들이대던 종주먹 그 떫은 피 제가 삼킨 눈물로 발효시켜 속살까지 환하다 ❄출처 : 복효근 시집, 『꽃 아닌 것 없다』, 천년의시작, 2017. 🍎 해설 이 짧은 시는 인간사 갈피마다 켜켜이 쌓이는 파란 곡절을 고도의 집중과 함축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홍시에도 파란 곡절의 역사가 있다. 천둥과 칠흑 어둠에 맞서 들이대던 종주먹의 역사가 있다. 그 무엇보다도 그 떫은 피를 제가 삼킨 눈물로 발효시켜 속살까지 환하게 만든 인고의 과정이 있다. 절창이다. 홍시나 과일들도 제 나름의 빛깔과 맛과 역사가 있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겪어야 하는 인고의 ..

짧은 시 2023.07.11

정진규 짧은 시 무작정

정진규 짧은 시 무작정. 박두진 문학상 수상작품(제9회, 2014년). 무작정 /정진규 통도사에 갔다 추녀와 추녀들이 서로 밀어 올리고 섰는 허공들 뒤뜰 깊게까지 따라갔다가 무작정 그 허공들 받들고 서 있는 무작정無作亭 한 채를 보고 왔다 🍒 ​* 사명암이 통도사 뒤뜰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거기 수련못에 無作亭이 서 있다. ❄출처 : 정진규 시집, 『무작정』, 시로 여는 세상, 2014. 🍎 해설 경남 양산 통도사에 있는 한 누각의 이름은 미리 정한 것이 없거나 좋고 나쁨을 가림이 없는 '무작정'이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은 얼마라든지 혹은 어떻게 하리라고 미리 정한 것이 없다. 좋고 나쁨을 미리 가린 것도 없다. 모두 앞으로 하기 나름이다. 통도사에 갔다 추녀와 추녀들이 서로 밀어 올리고 섰는 허공들 ..

짧은 시 2023.07.04

박용래 짧은 시 겨울밤

박용래 짧은 시 겨울밤.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결한 형식으로 표현한 우수작품. 겨울밤 /박용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출처 : 박용래 시집, 『싸락눈』, 현대시학사, 1969. 🍎 해설 *마당귀: 마당의 한쪽 귀퉁이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갖고 있는 보편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결한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밤에도 고향집 마당귀의 바람은 잠을 잘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고향은 포근할 것이라는 한국적 정한을 밀도 있게 구사한 시인 특유의 서정성이 느껴진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그리움, 근원적 향수, 인간이 갖고 있는 외로..

짧은 시 2023.06.30

허영자 짧은 시 나팔꽃

허영자 짧은 시 나팔꽃. 미라클 모닝. 당신은 이 시간에 무엇을 하십니까?나팔꽃/허영자아무리 슬퍼도 울음일랑 삼킬 일 아무리 괴로워도 웃음일랑 잃지 말 일 아침에 피는 나팔꽃 타이르네 가만히 🍒 ❄출처 : 허영자 시집, 『소멸의 기쁨』, 시인생각, 2003. 🍎 해설 미라클 모닝! 내 삶의 열정과 희망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일상생활에 찌든 내가 새로운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매일 아침의 미라클 모닝 시간에는 희망과 인내의 끈을 붙잡아야 한다. 나팔꽃은 아침에만 핀다. 아침 창문을 열면 나를 반기는 빨강빛 보랏빛의 나팔꽃의 나팔 소리. “아무리 슬퍼도 울음일랑 삼킬 일/ 아무리 괴로워도 웃음일랑 잃지 말 일”. 나팔꽃이여, 내가 네 덕분에 하루를 자신있게 시작한다.아무리 슬퍼도..

짧은 시 2023.06.25

김준 짧은 시 안녕, 낯선 사람

김준 짧은 시 안녕 낯선 사람. 당신에게는 있나요? 견뎌야 하는 단어들이... 안녕, 낯선 사람 /김준 그래, 낯선 사람으로 태어나 누군가에게 익숙한 사람으로 죽는다면 행복한 생이라 하겠다. 🍒 ❄출처 : 김준 시집, 『견뎌야 하는 단어들에 대하여』, 지식인하우스, 2017. 🍎 해설 현실은 생각보다 더 냉혹하다. 살면서, “당신에게는 있나요? 견뎌야 하는 단어들이”. 김준 시인은 운명, 상실, 회환, 고독, 거짓, 영혼, 절망과 같은 견뎌야 하는 단어들로 우리들에게 말을 건다. 이 시 ‘안녕, 낯선 사람’은 짧지만 우리가 견뎌야 하는 단어들에게 하나의 길을 열어 준다. 낯선 사람으로 태어 났지만 최소한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다. 그렇게 고독이나 절망에 빠져 있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그..

짧은 시 2023.06.20

이정록 짧은 시 서시

이정록 짧은 시 서시. 나는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봐서... 서시 /이정록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 ❄출처 : 이정록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문학동네, 2014. 🍎 해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온 몸은 생채기로 뒤덮여 있다. 그러나 나무는 의연히 서 있고 마을을 감싸안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 봐 사람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은근히 피해 왔다. 마을 밖에서 서성거린 적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삶 속으로,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 내 자신을 성찰해 본다. 비록 마을 앞 나무처럼 흠집이 생기고 상처를 받을지라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부대끼며 치열하게 살아야 하겠다. 나는 결국 삶을 사랑하고 세상을 ..

짧은 시 2023.06.16

유자효 짧은 시 속도

유자효 짧은 시 속도. 당신의 삶의 속도를 한번 측정해 보십시오. 속도 /유자효 속도를 늦추었다 세상이 넓어졌다 속도를 더 늦추었다 세상이 더 넓어졌다 ​아예 서 버렸다 세상이 환해졌다​ 🍒 ❄출처 : 유자효 시집, 『심장과 뼈』, 시학, 2013. 🍎 해설 가끔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유자효 시인은 이 시에서 “속도를 늦추었다 세상이 넓어졌다/ 속도를 더 늦추었다 세상이 더 넓어졌다/ 아예 서 버렸다 세상이 환해졌다”, 이렇게 말합니다. 움직이는 빠르기를 뒤지게 하면 시야가 넓어지고 세계는 자세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도 있게 됩니다. 우리는 오토바이처럼 너무 급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경쟁에 뛰어들어 남을 앞서려는 욕망이 강해도 본분을 잊지 말 것과 자신..

짧은 시 2023.06.15

김준 짧은 시 바람의 말

김준 짧은 시 바람의 말. 고독은 사랑의 과식 때문이다. 바람의 말 /김준 가을비가 뚜벅거릴 때 창문 너머에서 지나던 바람이 차겁게 쏘아붙인다. 고독은 어제 나눈 사랑의 과식 때문이라고 🍒 ❄출처 : 김준 시집, 『내 하루는 늘 너를 우연히 만납니다』, 글길나루, 2015. 🍎 해설 가을비의 쓸쓸함과 바람의 매서움, 사랑이 휩쓸고 간 서글픈 외로움이 마음속 공기를 가득 채운다. 마음을 달래도 어찌할 수가 없다. 어제 나눈 사랑의 과식 때문에 더욱 더 고독을 느끼고, 더욱 더 잃어버린 사랑이 그리워진다. "고독은 어제 나눈 사랑의 과식 때문이다." 명싯구다. 고독이 한 폭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형상화되었다. 가을비가 뚜벅거릴 때 창문 너머에서 지나던 바람이 차겁게 쏘아붙인다. 고독은 어제 나눈 사랑의 과식 ..

짧은 시 2023.05.30

하상욱 짧은 시 자신에게 관대하라

하상욱 짧은 시 자신에게 관대하라. 자신에게 관대하라 /하상욱 나 자신에게 좀 관대할게요. 나 아니면 누가 그러겠어요. 🍒 ❄출처 : 하상욱 시집, 『시로(어설픈 위로받기)』, 위즈덤하우스, 2018. 🍎 해설 현대시들은 읽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상욱은 짧고 단순하고 명쾌한 촌철(寸鐵)의 시를 쓴다. 꼭 시가 디자인처럼 명료하다. 아주 쉽다. 디자인의 첫 번째 원칙은 단순화이다. 이 시에도 아주 단순한 디자인이 있다. 나를 사랑하라. 나를 위로하라. 나에게 관대하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관대할 수 없다. 오직 나만이 나에게 관대할 수 있다. 나에게 관대해지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해 질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시에는 이처럼 선명한 디자인이 있다. 짧지만 뭔가 긴 여운을 남긴다..

짧은 시 2023.05.25

문인수 짧은 시 구름

문인수 짧은 시 구름. 뭉게뭉게 살자. 구름 /문인수 저러면 참 아프지 않게 늙어갈 수 있겠다. ​ 딱딱하게 만져지는, 맺힌 데가 없는지 제 마음, 또 뭉게뭉게 뒤져보는 중이다. 🍒 ❄출처 : 문인수 시집, 『달북』, 문학의 전당, 2014. 🍎 해설 저 5월의 뭉게구름에서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배운다. 저 구름은 바람결에 자유롭게 흐르면서 '딱딱하게 만져지는, 맺힌 데가 없는지' '제 마음'을 이리저리 잘 뒤지고 있다. 내 딱딱한 마음때문에 누군가가 상처를 받고 있지나 않은지 이리저리 뒤져본다. 딱딱한 내 마음을 '뭉게뭉게 뒤져' 그 딱딱함을 동그라미처럼 둥글게 둥글게 만드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가 아닐까.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둥글게 둥글게 어울려 사는 것이 삶의 이치가 아닐까. 구름아, 고맙다. ..

짧은 시 20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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