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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 32

서정춘 늦꽃

서정춘 늦꽃. 늦게 피는 꽃, 늦꽃. 늦꽃 /서정춘 들국화는 오래 참고 늦꽃으로 핀다 그러나 말없이 이름 없는 가인佳人 같아 좋다 아주 조그맣고 예쁘다 예쁘다를 위하여 늦가을 햇볕이 아직 따뜻했음 좋겠는데 이 꽃이 바람의 무게를 달고 흘린 듯 사방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 꽃이 가장 오래된 늦꽃이고 꽃이지만 중생 같다 🍒 ❄출처 : 서정춘 시집, 『죽편 竹篇』, 황금알, 2016. 🍎 해설 *가인佳人: 아름다운 사람. 애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 들국화는 늦게까지 참고 있다가 다른 꽃들이 지고 나면 그때서야 피기 시작한다. 이름없는 가을꽃이고 겨울꽃도 된다. 그야말로 늦꽃이다.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그 어려움을 더 잘 이해한다. 이런 사람은 늦꽃이다. 괴테는 일찍이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 본 ..

좋은시 2023.12.21

조병화 호수

조병화 호수. 우리 사회에도 여러 호수 물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호수 /조병화 물이 모여서 이야길 한다 물이 모여서 장을 본다 물이 모여서 길을 묻는다 물이 모여서 떠날 차빌 한다 당일로 떠나는 물이 있다 며칠을 묵는 물이 있다 달폴 두고 빙빙 도는 물이 있다 한여름 길을 찾는 물이 있다 달이 지나고 별이 솟고 풀벌레 찌, 찌, 밤을 새우는 물이 있다 뜬눈으로 주야 도는 물이 있다 구름을 안는 물이 있다 바람을 따라가는 물이 있다 물결에 처지는 물이 있다 수초밭에 혼자 있는 물이 있다. 뜬눈으로 주야 도는 물이 있다 구름을 안는 물이 있다 바람을 따라가는 물이 있다 물결에 처지는 물이 있다 수초밭에 혼자 있는 물이 있다. 🍒 ❄출처 : 조병화 시집, 『먼지와 바람 사이』, 동화출판공사, 197..

좋은시 2023.12.19

박시교 짧은 시 힘

박시교 짧은 시 힘. 연말에 좋은 시. 힘 /박시교 꽃 같은 시절이야 누구나 가진 추억 그러나 내게는 상처도 보석이다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 몇 개 밑줄 쳐 새겨 둔 듯한 어제의 그 흔적들이 어쩌면 오늘을 사는 힘인지도 모른다 몇 군데 옹이를 박은 소나무의 푸름처럼 🍒 ❄출처 : 박시교 시집, 『13월』, 책만드는집, 2016. 🍎 해설 여러분의 삶에만 아픔과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삶에는 아픔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우리의 기억은 아픔이 남긴 흔적이다. 그러나 시인은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가 오늘을 사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다사다난했던 2023년도 다 저물어 간다. 여러분이 올 한 해 받았던 여러 가지 인생의 상처가, 아픈 흔적들이 새해에는 단단한 흉터가 되기를 기원한다. 우..

짧은 시 2023.12.18

허형만 짧은 시 눈부신 날

허형만 눈부신 날.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눈부신 날/허형만 참새 한 마리 햇살 부스러기 콕콕 쪼아대는 하, 눈부신 날 🍒 ❄출처 : 허형만 시집, 『뒷굽』, 시선사, 2019. 🍎 해설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라고 노래하였다. 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에는 윤동주 시인의 생명체에 대한 깊숙한 경외심이 담겨 있다. 겨울 끝자락에서 땅바닥을 기며 피어나는 이름없는 야생화, 햇살 부스러기를 콕콕 쪼아대는 참새 한 마리 앞에서 우리는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을 느낀다. 참으로 눈부신 날이다. 이 생명의 환희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겸손해지고 공손해진다. 눈부신 우주의 신비 앞에서 어찌 겸손해지지 않을 ..

짧은 시 2023.12.17

나태주 첫눈

나태주 첫눈. 그리움이라는 갈증이 눈이 되어 내리고 있다. 첫눈 /나태주 요즘 며칠 너 보지 못해 목이 말랐다 어젯밤에도 깜깜한 밤 보고 싶은 마음에 더욱 깜깜한 마음이었다 몇 날 며칠 보고 싶어 목이 말랐던 마음 깜깜한 마음이 눈이 되어 내렸다 네 하얀 마음이 나를 감싸 안았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지혜, 2020. 🍎 해설 첫눈, 첫사랑, 첫키스는 감미롭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만나지 못해 갈증을 느끼고 목이 마르는 경험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 그리움의 마음이 눈이 되어 내리고 있습니다. 저 흰 눈이 만나고 싶은 벗들과 여러분의 마음을 감싸 안는 하얀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해가 저물기 전 눈 내리는 날, 보고 싶은 분들과 차 한잔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좋은시 2023.12.16

서윤덕 짧은 시 송년

서윤덕 짧은 시 송년. 송구영신. 짤막한 송년시.송년/서윤덕삼백예순의 나날들 기쁨과 슬픔 아쉼과 홀가분이 섞여있다 우리 함께했기에 좋았던 한 해 설레이며 새해를 맞이하자 🍒 ❄출처:SNS/서윤덕 시인 Instagram@seo_yundeog 🍎 해설어느덧 연말이다. 누구나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이켜 보게 된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아듀 2023년! 단 다섯 줄의 짤막한 구절로 이런 송구영신의 마음을 압축하는 시인의 기지가 대단하다. 이 시를 여러분의 펜 글씨나 서툰 캘리그라피 글씨로 써서 사진으로 여러분의 지인들에게 보내시기를 기대한다 (카톡, 문자메시지). 단순한 FW는 감동이 덜 하다. 서윤덕 시인은 SNS 시인이지만 광고 카피라이터의 재능을 풍부하게 갖고 있는 듯하다. 롯데리아의 “니들이 게맛을 알아..

짧은 시 2023.12.15

이외수 짧은 시 빨래줄

이외수 짧은 시 빨래줄. 이외수 특유의 촌철의 짧은 시. 빨래줄 /이외수 왜 당신의 마음은 세탁해서 널어놓지 않나요. 🍒 ❄출처 : 이외수 시집, 『그대 이름 내 가슴에 숨쉴 때까지』, 해냄, 2006. 🍎 해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아야 하듯 자신의 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된다. 한 번 소제했다고 언제까지나 방안이 깨끗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사실 우리는, 매일 마음을 세탁해서 빨래줄에 널어놓아야 한다. 이외수(李外秀 1946년~2022.4.25. 향년 76세). 소설가이기도 한 이외수 시인은 시가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드는 최상의 방부제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그렇게 살았다. 세상사람들은 이외수를 배철수 닮은 사..

짧은 시 2023.12.14

남정림 짧은 시 풀꽃

남정림 짧은 시 풀꽃. 평범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힐링해 주는 시.풀꽃/남정림누가 너를 보잘것없다 했느냐 잠깐 피었다 지는 소임에 실핏줄이 훤히 드러나도록 솜털이 요동칠 정도로 있는 힘을 다했는데 땅에 납작 엎드려 살아도 햇살 한 줌 머무르는 변두리 골목 귀퉁이를 데우는 너는 하늘이 눈물로 키우는 꽃 🍒 ❄출처 : 남정림 시집, 『사랑, 지구 너머의 계절』, 모악출판사, 2021. 🍎 해설땅에 납작 엎드려 살면서 변두리 골목 귀퉁이에 핀 이름 없는 풀꽃. 꽃 피우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실핏줄이 다 드러나 있다. 그러나 너는 하늘이 눈물로 키우는 꽃이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이 풀꽃처럼 납작 엎드려 살면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여 치열한 삶을 산다. 실핏줄이 드러나도록 그렇게 열심히 산다. 다만 여러 ..

짧은 시 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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