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024/03 20

이은상 개나리

이은상 개나리. 위트가 있는 시.개나리/이은상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라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기 어려워서 🍒 ❄출처 : 이은상 시집, 『고지가 바로 저긴데』, 시인생각, 2013. 🍎 해설이 시는 우선 재치와 위트가 있다.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기 어려워서’. 매화가 질 무렵에 개나리가 피기 시작하고 봄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매화가 졌다 하여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말라. 개나리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매화가 질 무렵에 개나리가 핀다. 매화가 졌다고 좌절하지 말라. 봄날이 간 것은 아니다.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라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기 어려워서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짧은 시 2024.03.12

서윤덕 사랑의 무게

서윤덕 사랑의 무게. 사랑의 무게를 잴 수 있을까요? 사랑의 무게 /서윤덕 사랑은 때로 가볍고 가벼워서 새털구름같고 사랑은 때로 너무 무거워서 집채만한 바위같고 🍒 ❄출처 : 서윤덕 시집, 『그 맘 알아』, 솔과학, 2024. 🍎 해설 각 기관에서는 시인의 짧은 시를 내거는 글판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도 종종 한다. 서윤덕 시인은 SNS 시인이지만 광고 카피라이터의 재능을 풍부하게 갖고 있는 듯하다. 롯데리아의 “니들이 게맛을 알아?”, 경동보일러의 “여보 아버님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1999)와 같은 광고 카피는 아무나 창작할 수 잇는 게 아니다. 시인의 타고 난 재능이 부럽다. 사랑의 무게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 시인은 사랑의 정의에 대해 함축성 있는 촌철의 시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시의 ..

짧은 시 2024.03.11

안도현 봄

안도현 봄. 봄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봄/안도현제비떼가 날아오면 봄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봄은 남쪽나라에서 온다고 철없이 노래 부르는 사람은 때가 되는 봄은 저절로 온다고 창가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이 들판에 나오너라 여기 사는 흙 묻은 손들을 보아라 영차 어기영차 끝끝내 놓치지 않고 움켜쥔 일하는 손들이 끌어당기는 봄을 보아라 🍒 ❄출처 : 안도현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 푸른숲, 1991. 🍎 해설봄은 소생의 계절이다. 봉곳이 솟아 오른 양지쪽의 흙속에는 수 많은 생명의 무리가 비집고 솟으려고 일제히 대기하고 있다. 이런 생명의 계절, 탄생의 계절을 만드는 봄일의 아름다움이야 말로 봄을 상징한다. 일하는 손들이 끌어당기는 봄을 보았다. 이런 봄일의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좋은시 2024.03.09

장석남 수묵 정원 9 - 번짐

장석남 수묵 정원 9 - 번짐. 수묵화처럼 번져야 사랑이다. 水墨(수묵)정원 9-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 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출처 : 장석남 시집,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창비, 2001. 🍎 해설 수묵화(水墨畵)는 한지(韓紙)에 먹이 번져 퍼지는 효과를 얻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린다. 한지에 떨어진 먹물의 번짐은 목련꽃이나 열매..

좋은시 2024.03.08

백석 박각시 오는 저녁

백석 박각시 오는 저녁. 짙은 향토색 시어로 그려내는 공동체적 삶. 박각시 오는 저녁 /백석 당콩밥에 가지 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횅 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대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 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하늘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 ❄출처 : 백석 지음, 『정본 백석 시집』, 문학동네, 2020. 🍎 해설 *당콩밥: 강낭콩을 드문 드문 놓은 밥 바가지꽃: 박꽃 박각시: 일종의 나방 주락시: 나방의 일종 한불: 많은 것들이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 돌우래: 말똥벌레나 땅강아지와 비슷..

좋은시 2024.03.07

김소월 풀따기

김소월 풀따기. 풀을 따서 시냇물에 던져 본 적이 있나요? 풀따기 /김소월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립은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에 흘러서 내어던진 풀잎은 엷게 떠갈 제 물살이 헤적헤적 품을 헤쳐요. 그립은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가여운 이 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이나 맘 헤보아요. 🍒 ❄출처 : 동아일보 1921. 4. 9에 발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시집』, 부크크, 2018. 🍎 해설 김소월의 시는 우리의 민요적 전통을 계승, 발전시켰다. 이 시도 운률이 우리의 정서와 ..

좋은시 2024.03.06

고은 순간의 꽃 10 <사진관>

고은 순간의 꽃 10 . 세계 최저의 합계 출산율 시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 순간의 꽃 10 /고은 사진관 진열장 아이 못 낳는 아낙이 남의 아이 돌사진 눈웃음지며 들여다본다 🍒 ❄출처 : 고은 시집, 『순간의 꽃』, 문학동네, 2001, 18쪽. 🍎 해설 고은 시인의 짧고 좋은 시중 유명한 시의 하나다. 고은 시인은 자신이 쓴 185편의 짧은 시를 시의 제목은 없이 “순간의 꽃”이라는 시집에 묶어 펴냈다. 이 블로그에 소개하는 ‘순간의 꽃 10’라는 제목(번호 10 부여)과 부제 은 내가 임의로 붙인 것이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서. 한 유명한 모차르트 음악연구가는 모차르트의 곡을 하나 하나 해설한 후, 곡마다 자신의 이름 첫 자인 K를 붙여 연대순으로 K123 번호를 붙였다. 그걸 모방했다. 대한민..

짧은 시 2024.03.05

박목월 도화 한 가지

박목월 도화 한 가지. 풋풋한 사랑의 연정. 도화(桃花) 한 가지 /박목월 물을 청하니 팔모반상에 받쳐들고 나오네 물그릇에 외면한 낭자의 모습. 반(半)은 어둑한 산봉우리가 잠기고 다만 은은한 도화 한그루 한 가지만 울넘으로 령(嶺)으로 뻗쳤네. 🍒 ❄출처 : 박목월 시집, 『박목월 시전집』, 민음사, 2007. 🍎 해설 *도화(桃花): 복숭아꽃 * 령(嶺): 고개. 산고개 길 가던 한 청년이 산골 어느 집에 들러 물 한 그릇을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그 집 젊은 처녀는 팔모반상에 조심 조심 물을 내온다. 그 청년은 목을 축이기 전에 물그릇을 들여다보는데 거기에는 반쯤은 저물 때가 된 어둑어둑한 산봉우리가 비쳐 있다. 그리고 또 한쪽에는 은은한 분홍빛 복숭아나무 한그루, 그 나무 가지 중 한 가지만 울..

짧은 시 2024.03.04

나태주 3월

나태주 3월. 드디어 3월이다. 다시 젊음이 온다. 3월 /나태주 어짜피 어짜피 3월은 오는구나 오고야 마는구나 2월을 이기고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봄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 돌아와 우리 앞에 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 새들은 우리더러 무슨 소리든 내보라 내보라고 조르는구나 시냇물 소리도 우리더러 지껄이라 그러는구나 아, 젋은 아이들은 다시 한 번 새 옷을 갈아입고 새 가방을 들고 새 배지를 달고 우리 앞을 물결쳐 스쳐가겠지… 그러나 3월에도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 🍒 ❄출처 : 나태주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지혜, 2015. 🍎 해설 드디어 3월이다. 3월은 방안에서 오슬오슬 떠는 우리를 은근히 밖으로 잡아 끌어내는 달이다.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

좋은시 2024.03.02

복효근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

복효근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 물방울이 토란잎에 구슬처럼 모인다.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 /복효근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되나 🍒 ❄출처 : 복효근 시집, 『새에 대한 반성문』, 시와시학사, 2000. 🍎 해설 물방울은 토란잎에 둥글둥글 구슬처럼 모인다. 물방울은 토란잎에 떨어져 뒹굴 때 다른 그 어떤 곳에 떨어진 것보다 영롱하고 투명하고 아름답고 맑다. 또한 토란잎은 물방울 때문에 푸르다. 아름답다. 아름다운 조화다. 어느 순간 물방울은 자취도 없이..

좋은시 2024.03.0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