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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모래내. 1978년

무명시인M 2024. 12. 25.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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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모래내. 1978년

이성복 모래내. 1978년. 지난 날 우리 가족들의 모습.

모래내 ․ 1978년

/이성복

1
하늘 한 곳에서 어머니는 늘 아팠다
밤 이슥하도록 전화하고 깨자마자
누이는 또 전화했다 혼인(婚姻)날이 멀지 않은 거다
눈 감으면 노란 꽃들이 머리 끝까지 흔들리고
시간은 모래 언덕처럼 흘러내렸다
아, 잤다 잠 속에서 다시 잤다
보았다, 달려드는, 눈 속으로, 트럭, 거대한
 
무서워요 어머니
―얘야, 나는 아프단다
 
2
이제는 먼지 앉은 기왓장에
하늘색을 칠하고
오늘 저녁 누이의 결혼 얘기를 듣는다
꿈 속인 듯 멀리 화곡동 불빛이
흔들린다 꿈 속인 듯 아득히 기적이 울고
웃음 소리에 놀란 그림자 벽에 춤춘다
노새야, 노새야 빨리 오렴
어린 날의 내가 스물 여덟 살의 나를 끌고 간다
산 넘고 물 건너 간다 노새야, 멀리 가야 해
 
3
거기서 너는 살았다 선량한 아버지와
볏짚단 같은 어머니, 티밥같이 웃는 누이와 함께
거기서 너는 살았다 기차 소리 목에 걸고
흔들리는 무우꽃 꺾어 깡통에 꽂고 오래 너는 살았다
더 살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우연히 스치는 질문―새는 어떻게 집을 짓는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풀잎도 잠을 자는가,
대답하지 못했지만 너는 거기서 살았다 붉게 물들어
담벽을 타고 오르며 동네 아이들 노래 속에 가라앉으며
그리고 어느날 너는 집을 비워 줘야 했다 트럭이
오고 세간을 싣고 여러번 너는 뒤돌아 보아야 했다
 
❄출처 : 이성복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지성사, 2017.
 
🍎 해설
모래내는 서울  구기동과 평창동에서 시작해 홍제동과 성산동을 거쳐 한강으로 들어가는 하천 이름이다. 홍제동쯤에 이르면 모래가 많아 냇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들어 흘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성복의 시 <모래내·1978년>은 1970년대 후반 서민들이 주로 살던 모래내 풍경을 담고 있다. 서민들의 시장, 모래내 시장이 유명하다.
 
“거기서 너는 살았다 선량한 아버지와 / 볏짚단 같은 어머니, 티밥같이 웃는 누이와 함께 / 거기서 너는 살았다 기차 소리 목에 걸고 / 흔들리는 무우꽃 꺾어 깡통에 꽂고 오래 너는 살았다” 이 대목은 아주 깊은 감동을 준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이, 그리고 떠나는 모래내를 여러 번 뒤돌아보아야 했던 동생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었다.
 
나의 가족 이야기를 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게 하는 시다.
 

거기서 너는 살았다 선량한 아버지와
볏짚단 같은 어머니, 티밥같이 웃는 누이와 함께
거기서 너는 살았다 기차 소리 목에 걸고
흔들리는 무우꽃 꺾어 깡통에 꽂고 오래 너는 살았다
 
대답하지 못했지만 너는 거기서 살았다 붉게 물들어
담벽을 타고 오르더 며 동네 아이들 노래 속에 가라앉으며
그리고 어느날 너는 집을 비워 줘야 했다 트럭이
오고 세간을 싣고 여러번 너는 뒤돌아 보아야 했다

거기서 너는 살았다
볏짚단 같은 어머니, 티밥같이 웃는 누이와 함께
거기서 너는 살았다
어느날 너는 집을 비워 줘야 했다
세간을 싣고 여러번 너는 뒤돌아 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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