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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둘레

박용래 둘레. 산 둘레를 그린 아름다운 수채화.둘레/박용래산은산빛이 있어 좋다먼 산 가차운 산가차운 산에버들꽃이 흩날린다먼 산에저녁해가 부시다아, 산은둘레마저 가득해 좋다 🍒 ❄출처 : 박용래 시선, 『저녁 눈』, 미래사, 1991. 🍎 해설한 편의 아름다운 수채화다.가차운 산과 먼 산을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축 늘어진 버드나무의 꽃이 이쪽저쪽으로 날린다. 가차운 산은 가차운 산대로, 먼 산은 먼 산대로 아름다운 산빛이 있다. 먼 산 가차운 산이 함께 빚어 만들어내는 '산 둘레' . "둘레마저 가득해 좋다"의 그 '둘레'는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산은산빛이 있어 좋다먼 산 가차운 산가차운 산에버들꽃이 흩날린다먼 산에저녁해가 부시다아, 산은둘레마저 가득해 좋다

좋은시 03:58:55

진은영 연애의 법칙

진은영 연애의 법칙. 연애는 감미롭고 따스하기만 한 것인가?연애의 법칙/진은영너는 나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어제 백리향의 작은 잎들을 문지르던 손가락으로. 나는 너의 잠을 지킨다 부드러운 모래로 갓 지어진 우리의 무덤을 낯선 동물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해변의 따스한 자갈, 해초들 입 벌린 조가비의 분홍빛 혀 속에 깊숙이 집어넣었던 하얀 발가락으로 우리는 세계의 배꼽 위를 걷는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포옹한다 수요일의 텅 빈 체육관, 홀로, 되돌아오는 샌드백을 껴안고 노오란 땀을 흘리며 주저앉는 권투 선수처럼 🍒 ❄출처 : 진은영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지성사, 2018. 🍎 해설연애란 감미롭고 아름답다. 향기가 백 리를 간다는 백리향의 잎처럼, 부드러운 모래처럼, 해변의 따스한 자갈처럼..

좋은시 2024.11.06

문정희 새떼

문정희 새떼. 새떼를 보며 흘러가는 인생을 생각한다.새떼/문정희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 피도 흘러서 하늘로 가고 가랑잎도 흘러서 하늘로 간다. 어디서부터 흐르는지도 모르게 번쩍이는 길이 되어 떠나감 되어. 끝까지 잠 안든 시간을 조금씩 얼굴에 묻혀가지고 빛으로 포효(咆哮)하며 오르는 사랑아. 그걸 따라 우리도 모두 흘러서 울 이유도 없이 하늘로 하늘로 가고 있나니. 🍒 ❄출처 : 문정희 시집, 『새떼』, 민학사, 1975. 🍎 해설이 시는 하늘을 날으는 새떼를 보며 시인이 펼친 생각을 담고 있다. '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 강물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흐름의 행로에서 예외적이지 않다는 뜻이다.어디서부터 흐르는지 모르게 출발했어도, 대부분의 존재는 언제나 길 위에 있으며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는 중..

좋은시 2024.11.05

김광규 나 홀로 집에

김광규 나 홀로 집에. 나 홀로 집에 남았지만 혼자는 아닌 셈이다.나 홀로 집에/김광규복실이가 뒷다리로 일어서서 창틀에 앞발 올려놓고 방 안을 들여다본다 집 안이 조용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나 보다 오후 늦게 마신 커피 덕분에 밀린 글쓰기에 한동안 골몰하다가 무슨 기척이 있어 밖으로 눈을 돌리니 밤하늘에 높이 떠오른 보름달이 창 안을 들여다본다 모두들 떠나가고 나 홀로 집에 남았지만 혼자는 아닌 셈이다 🍒 ❄출처 : 김광규 시집, 『하루 또 하루』, 문학과지성사, 2011. 🍎 해설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집에 혼자 남아 글을 쓴다. 마당에선 강아지 빠삐옹이 자꾸만 방 안을 기웃거린다. 하늘에선 보름달이 창 안을 들여다 보고 나를 내려다본다. 혼자 있는 것 같지만 눈을 돌리면 곳곳에 동거인들이 함께 있다...

좋은시 2024.11.04

박성우 매우 중요한 참견

박성우 매우 중요한 참견. 사람살이의 온기가 느껴진다.매우 중요한 참견/박성우호박 줄기가 길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있다 느릿느릿 길을 밀고 나온 송앵순 할매가 호박 줄기 머리를 들어 길 바깥으로 놓아주고는 짱짱한 초가을 볕 앞세우고 깐닥깐닥 가던 길 간다 🍒 ❄출처 : 박성우 시집,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 창비. 2024. 🍎 해설시골 길을 가던 할머니의 참견은 딱한 사정에 처해 있는 남을 도우려는 마음과 착한 마음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참견이다. 호박 줄기가 길의 위로 기어가는 것을 본 할머니는 넝쿨을 들어서 길 밖으로 뻗어갈 방향을 돌려놓는다. 매우 중요한 참견이다. 그리고 매우 아름다운 참견이다. 호박 줄기가 기어가는 모양은 ‘성큼성큼’이다. 반면에 할머니의 발걸음은 ‘느릿느릿’이다. 아름다운..

짧은 시 2024.11.03

이성선 사랑

이성선 사랑. 온유한 사랑에 대한 조용한 사유.사랑/이성선더러운 내 발을 당신은꽃잎 받듯 받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흙자국을 남기지만당신 가슴에는 꽃이 피어납니다 나는 당신을 눈물과 번뇌로 지나가고당신은 나를 사랑으로 건넙니다 당신을 만난 후 나는 어려지는데나를 만난 당신은 자꾸 늙어만 갑니다 🍒 ❄출처 : 이성선 시집,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세계사, 2000. 🍎 해설이성선 시인(1941~2001)은 평생 설악산 기슭에 살면서 시를 써 왔다. 뛰어난 서정시인이었다. 그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조화롭게 유도하며 우주의 질서 안에 인간의 삶이 놓여 있음을 관찰하는 데 충실하다.  그의 사랑시도 그렇다. 온유한 사랑을 주로 쓴다. 사랑을 조용히 사유한다. 당신은 언제나 나의 잘못을 감싼다..

좋은시 2024.11.02

한강 파란 돌

한강 파란 돌.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시 詩 우수작품.파란 돌/한강십 년 전 꿈에 본파란 돌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아, 죽어서 좋았는데환했는데 솜털처럼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희고 둥근조약돌을 보았지해맑아라,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그때 알았네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그때 처음 아팠네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깊은 밤이었고,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놓친 적도 있을까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 년 꿈에 본파란 돌 그 빛나는 내(川)로돌아가 들여다보면아..

좋은시 2024.11.01

황청원 작은 샘

황청원 작은 샘. 자신의 마음을 닦는일.작은 샘/황청원한없이 우뚝 솟은 히말라야 산정에작은 샘 하나 있어 맑기가 거울 같단다아무리 눈 내려도 금방 녹아 물이 되고휘몰아치는 바람도 모른 척 비껴간단다고요한 수면 위로 애기눈썹달 뜨는 밤별들도 따라 내려와 함께 배경이 된단다 그런데 나는 누구의 무엇도 되지 못하고마음속 산정의 샘도 아직 만나지 못했단다 🍒 ❄출처 : 황청원 시집, 『늙어서도 빛나는 그 꽃』, 책만드는집, 2024.  🍎 해설누구나 마음을 닦고 싶어한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높은 산의 맨 위에 작은 샘이 하나 있다. 맑기가 거울 같다. 세상 풍파에도 이 작은 샘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밤에는 그 수면 위로 눈썹 모양의 달이 환하게 뜬다. 별들도 따라 와..

좋은시 2024.10.28

한강 몇 개의 이야기 6

한강 몇 개의 이야기 6. 인간의 아픔 그리고 고독과의 단도직입적인 대화.몇 개의 이야기 6/한강어디 있니.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 내 목소리 들리니.인생 말고 마음. 마음을 걸려고 왔어.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들을 꼿꼿이 펴는 것처럼 보여.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 ❄출처 :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 해설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韓江 작가의 詩 우수작품이다.사는 동안 인간은 아픔과 고독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아주 약해진 마음에게 고독이 말을 붙이고 마음을 주고 마음을 걸어 준다면 오히려 그 고독이 인생의 동행자가 될 수 있다는 한강 작가의 詩心.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

좋은시 2024.10.25

한강 그때

한강 그때. 노벨문학상 수상자 韓江 작가의 시 정신.그때/한강내가 가장 처절하게 인생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헐떡이며 클린치한 것은 허깨비였다 허깨비도 구슬땀을 흘렸다 내 눈두덩에, 뱃가죽에 푸른 멍을 들였다 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바스러졌다 🍒 ❄출처 :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 해설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韓江 작가의 詩 우수작품이다.산다는 것, 그것은 치열한 전투다. 투지가 중요하다. 인생의 고통과 인생의 숭고함을 동시에 은유한 시다. 인생과의 첫 악수만으로 손뼈가 부서질 정도로 무서운 인생이지만 기꺼이 손을 내밀고 싶다고 시인은 다짐한다. 시인은 고통과 슬픔에 압..

좋은시 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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