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 1226

김동환 강이 풀리면

김동환 강이 풀리면. 기다림과 임을 그리워하는 미학의 서정적 융합.강이 풀리면 /김동환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배가 오면은 임도 탔겠지임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임이 오시면 이 설움도 풀리지동지섣달에 얼었던 강물도제멋에 녹는데 왜 아니 풀릴까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 ❄출처 : 김동환, 『김동환 시집』, 온이퍼브, 2014. 🍎 해설강가의 기다림이란 주제는 한 북방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강가에서의 기다림이란 우리 민족 전체의 모티브였다. 사람들은 언제고 시간이 흘러 좋은 소식이 오고, 설움이 풀리기를 기원했다. 특히 겨울 끝자락에서는. 혹독한 겨울이 가고 강물이 풀렸으니 배는 오리라.배가 와야 임이 오시겠고,하다못해 기별이라도 오리라. 한국의 많은 명곡들이 김동환..

좋은시 2025.05.18

허수경 라일락

허수경 라일락. 지난 일은 잊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라일락/허수경어떡하지,이 봄을 아리게살아버리려면? 신나게 웃는 거야, 라일락내 생애의 봄날 다정의 얼굴로날 속인 모든 바람을 향해신나게 웃으면서 몰락하는 거야 스크랩북 안에 든 오래된 사진이정말 죽어버리는 것에 대하여웃어버리는 거야, 라일락,아주 웃어버리는 거야 공중에서는 향기의 나비들이 와서더운 숨을 내쉬던 시간처럼 웃네라일락, 웃다가 지네나의 라일락 🍒 ❄출처 : 허수경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사, 2016. 🍎 해설지나간 일은 잊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자는 시적 메시지가 있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활짝 피어나 향기를 내뿜는 라일락은 희망의 상징이다. "서로에게 '괜찮다' 응원해주는 시간이 필..

좋은시 2025.05.16

문정희 산티아고 순례길

문정희 산티아고 순례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 명시.산티아고 순례길/문정희나를 만날 수 있는 것은나뿐인가하늘 아래 가득한 질문 하나 🍒 ❄출처 : 문정희 시집, 『그 끝은 몰라도 돼』, 아침달, 2025. 🍎 해설유명한 포르트칼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찾는 전 세계 여행자 중 한국인이 숫자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한국인들도 아주 좋아하는 성지 순례길이다. 수백㎞를 걸어 종착점에 도달한 이에게 가장 절박한 언어가 무얼까,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은가, 이런 질문이다. ‘내가 누구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지?’하는 질문을 갖게 된다. 이때 이 시가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시 대답이다. 이 시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종착지의 한 대학 정원에 돌로 만든 시비로 세워져 있다. 나를 만날 ..

짧은 시 2025.05.15

마종기 축제의 꽃

마종기 축제의 꽃. 시든 꽃도 따뜻하다.축제의 꽃/마종기가령 꽃 속에 들어가면따뜻하다수술과 암술이바람이나 손길을 핑계 삼아은근히 몸을 기대며살고 있는 곳. 시들어 고개 숙인 꽃까지따뜻하다임신한 몸이든 아니든혼절의 기미로 이불도 안 덮은 채연하고 부드러운 자세로잠들어버린 꽃 내가 그대에게 가는 여정도따뜻하리라.잠든 꽃의 가는 숨소리는이루지 못한 꿈에 싸이고이별이여, 축제의 표적이여,애절한 꽃물이 만발하게우리를 온통 함께 적셔주리라 🍒 ❄출처 : 마종기 시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문학과지성사, 2002. 🍎 해설한창 피어있는 꽃 속뿐만 아니라 시든 꽃 속도 여전히 따뜻하다는 시적 감수성과 통찰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랑이 끝나고 슬픔마저 잠들어버렸다 하더라도, 거기 여전히 혼절..

좋은시 2025.05.14

박소란 주소

박소란 주소. 버스 종점에 사는 사람들.주소/박소란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 늘 안간힘으로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 닿는 꼭대기 그러니 모두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 ❄출처 : 박소란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창비, 2015. 🍎 해설서울에서도 변두리 그러고도 산비탈 꼭대기……, 종점, 가난했다는 말이다. 모두 내게서 서둘러 하차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배제당했다고 느껴도 좋다. 자신의 삶을 위한 길일때엔 슬며시 비켜 있어도 좋다. 오는 저녁의 종점은 내일 아침엔 시발점이다. 자신의 중요한 가치를 돌아 보면서 살면 된다.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 늘 안간힘으로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 닿는 꼭대기 그러니 모두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짧은 시 2025.05.12

안도현 땅

안도현 땅. 아들에게 땅을 물려줘야 할까?땅/안도현내게 땅이 있다면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때가 오면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라빛 나팔 소리가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내게 땅이 있다면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 ❄출처 :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2011. 🍎 해설내 자식들에게 부의 상징인 비싼 땅을 물려 주는 것 보다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무한한 가능성을 물려주고 싶다. 땅이 있다면 나팔꽃을 심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고' , 나팔꽃이 지고 난 후 꽃 진 자리에 맺힌 꽃..

좋은시 2025.05.11

김영무 아, 오월

김영무 아, 오월. 아름다운 오월의 시.아, 오월/김영무파란불이 켜졌다꽃무늬 실크 미니스카트에 선글라스 끼고횡단보도 흑백 건반 탕탕 퉁기며오월이 종종걸음으로 건너오면 아, 천지사방 출렁이는금빛 노래 초록 물결누에들 뽕잎 먹는 소낙비 소리또 다른 고향 강변에 잉어가 뛴다 🍒 ❄출처 : 김영무 시집, 『산은 새소리 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 창비, 1998. 🍎 해설오월이 바로 연상되는 한 폭의 아름다운 명화다.시각과 청각 이미지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누에들 뽕잎 먹는 소낙비 소리' 는 들어 본 적이 없지만, 시골 고향의 오월을 생각나게 한다. 파란불이 켜졌다꽃무늬 실크 미니스카트에 선글라스 끼고횡단보도 흑백 건반 탕탕 퉁기며오월이 종종걸음으로 건너오면 아, 천지사방 출렁이는금빛 노래 초록 물결..

좋은시 2025.05.09

윤효 죽비

윤효 죽비. 자아 성찰의 짧은 시.죽비/윤효복도로 나가서 꿇어앉아종이 울릴 때까지 왜 그랬는지 까맣게 잊었지만 아직도 울리지 않고 있는그 종. 🍒 ❄출처 : 윤효 시집, 『참말』, 시학, 2014. 🍎 해설*죽비(竹篦): 불교에서 장시간 참선으로 심신이 흐트러질 경우 정신을 깨우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다. 대개는 법을 전하는 자리에서 직접 손으로 죽비를 쳐서 소리로 수도승이 정신을 환기하도록 유도하거나 직접 수도승을 때려서 정신을 차리도록 한다. 대나무 가운데를 세로로 잘라 만들거나 아니면 대나무를 반으로 쪼갠 것을 맞대어 붙여 만들기도 한다. 두 쪽의 맨 윗부분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을 주면 소리가 크게 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참선 중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윤효 시인은 짧은 시의 창작..

짧은 시 2025.05.08

김종해 텃새

김종해 텃새. *텃새: 참새, 까치처럼 철새가 아닌 새들.텃새/김종해하늘로 들어가는 길을 몰라새는 언제나 나뭇가지에 내려와 앉는다하늘로 들어가는 길을 몰라하늘 바깥에서 노숙하는 텃새저물녘 별들은 등불을 내거는데세상을 등짐지고 앉아 깃털을 터는텃새 한 마리눈 날리는 내 꿈길 위로새 한 마리기우뚱 날아간다 🍒 ❄출처 : 김종해 시집, 『풀』, 문학세계사, 2001. 🍎 해설텃새가 하늘 들어가는 길을 몰라 매일 하늘 바깥에서 노숙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의 공존, 공생이 그리워서, 또는 불가피해서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과 더불어 살다보면 분노와 증오, 치열한 삶의 시각이 때로 자신의 주장에 얹혀지기도 하겠지만, 시인은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의 뿌리를 다듬어 낸다. *시인의 말나는 이런 시가 좋다아..

좋은시 2025.05.04

조영심 그리움

조영심 그리움.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짧은 시.그리움/조영심소리 없이 와도네 소리가 가장 크다 🍒 ❄출처 : 조영심 시집, 『그리움의 크기』, 지혜, 2020. 🍎 해설그리움은 언제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움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우리를 찾아오지만, 우리를 흔드는 힘이다. 우리의 삶을 삶답게 만드는 원천적 힘이다. 그리움은 그 무엇보다도 크다. 막으면 막을수록 더 큰 소리로 심장을 딛으며 온다. 그리움의 대상이 멀리 있을수록 크다.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짧은 시다. 소리 없이 와도네 소리가 가장 크다

짧은 시 2025.05.0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