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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1134

정호승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정호승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시련에 굴복하지않고 다시 시작한다. 자장면으로.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정호승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오늘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고 네가 내 오른뺨을 칠 때마다 왼뺨마저 치라고 하지는 못했으나 다시 또 배는 고파 허겁지겁 자장면을 사먹고 밤의 길을 걷는다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이 너덕너덕 누더기가 되어 밤하늘에 걸려 있다 이제 막 솟기 시작한 별들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감히 푸른 별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 머리 위에 똥을 누고 멀리 사라지는 새들을 바라본다 검은 들녘엔 흰 가차가 소리 없이 지나간다 내 그림자마저 나를 버리고 돌아오지 않는다 어젯밤 쥐들이 갉아먹은 내 발가락이 너무 아프다 신발도 누더기가 되어야만 길이 될 수 ..

좋은시 2024.01.25

김용택 세상의 길가

김용택 세상의 길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자.세상의 길가/김용택내 가난함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배부릅니다 내 야윔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살이 찝니다 내 서러운 눈물로 적시는 세상의 어느 길가에서 새벽밥같이 하얀 풀꽃들이 피어납니다. 🍒 ❄출처 : 김용택 시집, 『그 여자네 집』, 창작과비평사, 1998. 🍎 해설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편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사자성어다. 상대편의 처지나 형편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내가 배부르고 부유한 것은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 굶고 있기 때문이며, 내가 살이 찐 것은 누군가 야위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런 생각들이 세상에 있으면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없으리라. 우리가 나눠야 ..

좋은시 2024.01.24

천양희 운명이라는 것

천양희 운명이라는 것. 자신의 운명을 자기가 개척할 수 있을까. 운명이라는 것 /천양희 파도는 하루에 70만번씩 철썩이고 종달새는 하루에 3000번씩 우짖으며 자신을 지킵니다 용설란은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한 꽃대에 3000송이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습니다 벌은 1kg의 꿀을 얻기 위해 560만송이의 꽃을 찾아다니고 낙타는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습니다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새도 있고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새도 있습니다 운명을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요 🍒 ❄출처 : 천양희 시집,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는가』, 작가, 2003. 🍎 해설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은 자기 운명을 자기 자신이 만든다. 파도는 하루에 70..

좋은시 2024.01.23

반칠환 호도과자

반칠환 호도과자. 유머가 넘치는 짧은 시.호도과자/반칠환쭈글쭈글 탱글탱글 한 손에 두 개가 다 잡히네? 수줍은 새댁이 양볼에 불을 지핀다 호도과자는 정말 호도를 빼닮았다 호도나무 가로수 하(下) 칠십 년 기찻길 칙칙폭폭, 덜렁덜렁 호도과자 먹다 보면 먼 길도 가까웁다 🍒 ❄출처 : 반칠환 시집, 『웃음의 힘』, 지혜, 2012. 🍎 해설*호도과자: 호두나무, 호두과자가 맞는 맞춤법이다. 반칠환 시인은 짧은 시의 창작을 시도하고 있다. 독자들과 간명하게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시인의 자세는 감동적이다. 짧지만 긴 여운, 의표를 찌르는 해학과 통찰의 시편들은 인터넷 시대에 시가 어떻게 사람들의 가슴에 스밀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문학적 소통의 시금석이자 내비게이션이다. 재치문답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시 언어의 경제..

짧은 시 2024.01.22

이재무 낙엽

이재무 낙엽. 낙엽의 깊은 뜻. 낙엽 /이 재 무 시를 지망하는 학생이 보내온 시 한 편이 나를 울린다 세 행 짜리 짧은 시가 오늘 밤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한 가지에 나고 자라는 동안 만나지 못하더니 낙엽 되어 비로소 바닥에 한 몸으로 포개져 있다” 그렇구나 우리 지척에 살면서도 전화로만 안부 챙기고 만나지 못하다가 누군가의 부음이 오고 경황 중에 달려가서야 만나는구나 잠시잠깐 쓸쓸히 그렇게 만나는구나 죽음만이 떨어져 멀어진 얼굴들 불러모으는구나 🍒 ❄출처 : 이재무 시집, 『푸른고집 』, 천년의 시작, 2004. 🍎 해설 이 시의 방아쇠는 3행짜리 짧은 시다. “한 가지에 나고 자라는 동안 만나지 못하더니 낙엽 되어 비로소 바닥에 한 몸으로 포개져 있다” 문상을 가 보면 죽음은 낙엽과 같아서 떨..

좋은시 2024.01.21

나태주 끝끝내

나태주 끝끝내. 나는 너를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끝끝내 /나태주 너의 얼굴 바라봄이 반가움이다 너의 목소리 들음이 고마움이다 너의 눈빛 스침이 끝내 기쁨이다 끝끝내 너의 숨소리 듣고 네 옆에 내가 있음이 그냥 행복이다 이세상 네가 살아있음이 나의 살아있음이고 존재이유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끝끝내』, 지혜, 2017. 🍎 해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이 시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love you; therefore I am.)”이다. 사랑은 만물의 창조주이며, 사랑은 만물을 성장시키는 힘이다. 사랑을 얻으면 이 세상의 전부를 얻는 것이다. 결..

좋은시 2024.01.20

반칠환 딱따구리

반칠환 딱따구리. 재미있는 시.딱따구리/반칠환곡괭일 쓰니 블루칼라 같지만 머리를 쓰니 화이트칼라두 된다우 딱, 딱, 딱- 곡괭이질 하나로 너끈히 장가도 가고 알도 품을 수 있다우 🍒 ❄출처 : 반칠환 시집, 『웃음의 힘』, 지혜, 2012. 🍎 해설반칠환 시인은 짧은 시의 창작을 시도하고 있다. 독자들과 간명하게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시인의 자세는 감동적이다. 짧지만 긴 여운, 의표를 찌르는 해학과 통찰의 시편들은 인터넷 시대에 시가 어떻게 사람들의 가슴에 스밀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문학적 소통의 시금석이자 내비게이션이다. 재치문답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시 언어의 경제성과 삶을 관통하는 통찰이 짧은 시에 서정적으로 압축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반칠환의 짧은 시는 모순이 많은 오늘의 세태를 촌철의 시어들로 꼬..

짧은 시 2024.01.19

투르게네프 명시 거지

투르게네프 명시 거지. 적선한 자도 적선을 받는다.거지/ 투르게네프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늙은 거지 한 사람이 나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눈물어린 붉은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아아, 가난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잔인하게 이 불행한 사람을 갉아먹는 것일까! 그는 빨갛게 부풀은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했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를 모조리 뒤져 보았다…… 지갑도 없고 시계도 없고 손수건마저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외출을 했던 것이다. ‘이를 어쩌나……' 그러나 거지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미안하..

세계 명시 2024.01.18

이하석 물잠자리

이하석 물잠자리. 반전의 매력이있는 짧은 시.물잠자리/이하석물잠자리가 어느 풀에 어느 나무에 어느 돌에 어느 물이랑 깊은 곳에 잘 앉는지 소풍 가서 혼자 밥 먹으며 유심히 봅니다 당신은 또, 무심히 날 잊었지요? 🍒 ❄출처 : 이하석 시집, 『부서진 활주로』,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 해설총 59자로 구성돼 있는 이 짧은 시에는 기승전결의 논리가 있다. 마지막에 사실은 물잠자리를 본 것이 아니라 줄곧 보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반전의 매력이 있다. 뒤집어지는 전복의 미학과 번뜩임의 섬광 사이에 통찰과 서정의 뿌리를 그대로 응축하고 있다. 시는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시를 생활 속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시의 대중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할만..

짧은 시 2024.01.17

김소월 접동새

김소월 접동새. 우리 민족의 한의 정서를 노래한 명시.접동새/김소월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웁이나 남아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잊어 차마 못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 ❄출처 : 1923년 『배재(培材)』2호에 「접동」이란 제목으로 발표, 김소월, 『김소월 시집』, 종합출판범우, 2011. 🍎 해설*접동새: 두견새 *‘아우래비’: ‘아홉 오라비’의 의미와 접동새의 울음을 의성화. *불설워: 몹시 서러워의 평안도 사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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