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황동규 탁족

무명시인M 2023. 6. 2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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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탁족.

황동규 탁족. 이 여름에 깊은 산골 계곡을 찾아가 탁족(발 씻는 것)을 해보시기 바란다.


탁족(濯足)

/황동규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슴슴한 곳

강원도 늦겨울 텅 빈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푸른 옷 바꿔 입을 때

흔들어 봐도 안 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넣고 걷다 보면

그새 면허증 신분증 카드 전화수첩 명함 휴대폰

내지 않은 교통 범칙금 고지서

너무 많이 끼고 다녔다는 생각 절로 든다.

 

시냇가에 앉아 바지 걷고 구두와 양말 벗는다

팔과 종아리에 이틀내 모기들이 수놓은

생물과 생물이 선약 없이 문득문득 화끈하게 만난

찌르듯이 아팠던

문신(文身)들!

인간의 손이 쳐서

채 완성 못본 문신도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

 

출처 : 황동규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문학과지성사, 2003.

 

🍎 해설

2002미당문학상수상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나그네길에서의 휴식 한때를 다룬 시인 특유의 여행 시편이다. 작품은 세상과의 두절을 다루면서 문명 개화된 우리의 일상이 우리를 얼마나 피곤하게 구속하고 있는가를 상기시켜준다.

 

벽지에서 독한 모기에게 물린 자국을 얘기하는 끝자락에서 시인은 생소한 경험을 보여준다. 모기들이 자신의 팔과 종아리에 수 놓은 문신들을 본다. 이 무더워지는 여름, 여러분도 깊은 계곡을 찾아 가 산골물에 발을 담그면서 모기에 물린 자국을 보시기 바란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라는 생각을 가져봄직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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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시냇가에 앉아 바지 걷고 구두와 양말 벗는다

팔과 종아리에 이틀내 모기들이 수놓은

생물과 생물이 선약 없이 문득문득 화끈하게 만난

찌르듯이 아팠던

문신(文身)들!

 

인간의 손이 쳐서

채 완성 못본 문신도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시냇가에 앉아 바지 걷고 구두와 양말 벗는다
팔과 종아리에 이틀내 모기들이 수놓은 문신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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