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김사인 지상의 방 한 칸

무명시인M 2023. 6. 2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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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지상의 방 한 칸.

김사인 지상의 방 한 칸. 생활고 얘기가 아니다. 삶의 성찰이 있다.

지상의 방 한 칸

/김사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 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다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 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

 

출처 : 김사인 시집, 밤에 쓰는 편지, 문학동네, 2020.

 

🍎 해설

원고지 노동자의 얘기다. 1960~1970년, 셋방살이로 서울 변두리를 떠돌던 그 시절의 생활고를 있는 그대로 회상한다. 살던 사글세방을 어찌어찌하여 떠날 처지인데 둘째 아이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 밖에는 바람 소리 요란하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에 누워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 비는 재주뿐이라 이를 악물어보지만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할 때, 원고지 칸하나가 지상의 방 한 칸되어주기를 시인은 바란다.

 

스스로의 무력함에 대한 탄식으로 끝났다면, 이 시는 신세 타령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는 탄식과 함께 운명적인 슬픈 사랑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삶의 근원적 비극성에 대한 성찰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

 

이런 시인의 성찰은 오늘에도 웅크리고 잠든우리를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주는 손길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시인에게는 뒤처진 이에게는 보폭을 맞추고, 넘어진 이에게는 어깨를 내어주며 곁을 지키는 시 정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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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

초라한 몸 가릴 방 한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다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들째는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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