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유안진 좋은 시 지란지교를 꿈꾸며

무명시인M 2022. 4. 12. 08:14
728x90
반응형

유안진 좋은 시 지란지교를 꿈꾸며. Source: www. pexels. com

유안진 좋은 시 지란지교를 꿈꾸며. 당신이 오늘 오랜만에 지란지교를 나누는 이가 되기를 바란다.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천 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 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

 

출처 : 유안진 시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서정시학, 2011.

 

🍎 해설

*지란지교:

지초와 난초는 둘 다 향기로운 꽃으로, 지란지교는 곧 지초와 난초처럼 맑고 깨끗하며 두터운 벗 사이의 사귐을 말한다. 관포지교라는 말도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많은 사람들은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친구밖에 없다.

 

이 시는 지란지교를 담담하게 노래한다.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의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극성스러운 오미크론이 고개를 숙이는 느낌이다.

당신이 오늘, 실로 오랜만에 지란지교를 나누는 이가 되기를 바란다.

 

🌹 유안진 시인

1941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힉 및 동 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하고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교수로 활동하다 2006년부터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발령받았다. 대한민국예술원의 회원과 한국시인협회 고문으로 있다.

 

1965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단했다. 이후 1966~67년에 현대문학에 , 위로로 추천을 완료하였다. 1970년 첫시집 달하를 간행한 이후 물로 바람으로(1975), 월령가 쑥대머리(1990), 봄비 한 주머니(2000) 등의 시집과 시선집을 출간했고, 수필집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1988), 축복을 웃도는 것(1994) 등과 장편소설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1990), 땡삐(1994) 등의 작품이 있다.

 

유학시절부터 우리 민속에 대한 가치를 절감하고 지금까지 이 분야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여 여러 권의 관련 저서를 냈으며, 그밖에 한국의 전통 육아방식(1987), 한국전통사회의 유아교육등의 민속연구서와 속요집 딸아딸아 연지 딸아논문을 상재하였다. 한국시협상, 정지용문학상, 소월문학상특별상, 목월문학상, 월탄문학상, 한국펜문학상, 구상문학상, 공초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삿갓문학상, 유심작품상, 이형기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출처 : 유안진 시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서정시학, 2011, 작가 소개문

반응형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 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 참고 음악: 친구 이야기

https://youtu.be/n7mzQ7Llg6o?si=COIDaOt6XqHeEMFB

 

Source: www. pexels. com

반응형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민복 좋은 시 서울역 그 식당  (0) 2022.04.18
김사인 좋은 시 봄바다  (0) 2022.04.15
도종환 좋은 시 자목련  (0) 2022.04.11
이문재 좋은 시 어떤 경우  (0) 2022.04.09
목필균 좋은 시 4월이 떠나고 나면  (0) 2022.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