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명시 승무. 한 폭의 그림 같다. 조지훈 시인을 대표하는 명시다.
승무(僧舞)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출처 : 1939년 12월호 『문장』에 발표. 그 뒤 박목월, 조지훈,박두진 『청록집(靑鹿集)』.을유문화사, 1946.
🍎 해설
조지훈 시인의 대표작품이다.
이 시의 주제는 속세의 번뇌와 집착을 뛰어 넘는 종교적 해탈의 경지를 갈망하는 모습이다. 승무를 추는 여승만이 아니다. 인간의 고뇌와 서정적 자아의 모습이 전편에 흐른다.
첫 번째 연과 마지막 연에서 되풀이되는 구절이 특히 유명하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나빌레라"는 '나비'와 고문체에서의 용언 활용형인 '-ㄹ레라'라는 어미가 더해져 '나비 같다', ‘나비로구나’라는 의미를 지닌다. 깊은 밤 아무도 없는 뜰 오동나무 곁에서 한송이의 나비처럼 어둠을 가르며 움직이는 여승의 모습. 세속의 세계를 버리고 가없는 고뇌의 바다를 넘어 영혼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한 젊은 여인의 간절한 소망의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아름답기 그지 없다. 인간 고뇌의 자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나빌레라’․‘파르라니’․‘정작으로’․‘외씨보선’․‘살포시’등 맵시 있는 우리말이 아름다운 시어로 녹아 들어있다.
1연에서 6연까지는 승무를 추는 여승의 세속적 번뇌와 갈등 그리고 세속적 번뇌를 초극하려는 구도자의 갈망이 함축되어 있다. 7연의 ‘번뇌는 별빛이라’라는 구절이다. ‘별빛’은 천상적․초월적 세계를 표상하는 것으로 번뇌에는 별빛이라는 섬광이 필요했다. 8연은 깨달음을 얻은 이후의 춤이므로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창인 양하’다는 구절로 표현된다.
조지훈은 사라져 가는 민족정서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시인이다. 이 시는 한 폭의 명화와 같다. 이 시는 단순히 사라져가는 민속춤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춤으로 나타나는 마음속의 움직임에 초점을 두고 있는 조지훈 시인을 대표하는 명시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 고은 시인의 해설
승무의 여승은 해탈보다 번뇌 쪽이었다. 그래서 '번뇌는 별빛이라'는 섬광이 있어야 했다. 이만치 여승의 춤 동작을 섬세하고 정밀하게 그려낸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이것은 노래가 아니라 그림이기도 하다.
- 고은 시인의 언론 기고문(1998년)에서 발췌.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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