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애경 사랑.이별하는 순간 사랑이 끝난 건 아니다.
사랑
/양애경
둘이 같이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문득 정신 차려 보니
혼자 걷고 있습니다
어느 골목에서 다시 만나지겠지
앞으로 더 걷다가
갈증이 나서
목을 축일 만한 가게라도 만나지겠지
앞으로 더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참 많이도 왔습니다
인연이 끝나고
계속 앞으로 걸어간다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온 길을 되짚어 걸어가야 합니다
많이 왔을수록
혼자 돌아가는 길이 멉니다. 🍒
❄출처 : 양애경 시집,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 문학동네, 2021.
🍎 해설
이별하는 순간 사랑의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별 또한 사랑의 일부다. 헤어진다고 해서, 이 길을 혼자 걷는다고 해서 사랑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혼자 걷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지 몰라서 사랑의 길을 쉽게 이탈할 수 없었다. 이렇게 사랑의 여운을 혼자 걷는 것도 사랑이다. 사랑하면서 걸었던 길을 왔던 만큼 되짚어 가야만 사랑은 비로소 끝이 날 수 있다. 많이 왔을수록 즉 깊이 사랑했으면, 되짚어 돌아가는 길은 당연히 멀 수 밖에 없다.
사랑은 소중한 것, 돌아가는 길까지 사랑의 일부이고, 외롭게 돌아가는 마음의 복귀까지도 사랑이다.
🌹 양애경 시인
1956년 서울 출생. 충남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 당선. 1988년 첫시집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 간행. 1992년 시집 『사랑의 예감』 간행. 1997년 시집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간행. 2006년 시집 『내가 암늑대라면』 간행. 공주영상대 방송극작과 교수 역임.
2012년 제19회 한성기 문학상 수상. 제10회 애지문학상 수상. 2002년 충청남도문화상 문학부문 수상.
둘이 같이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문득 정신 차려 보니
혼자 걷고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참 많이도 왔습니다
계속 앞으로 걸어간다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온 길을 되짚어 걸어가야 합니다
많이 왔을수록
혼자 돌아가는 길이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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