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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 31

윤보영 좋은 시 송년의 시

윤보영 좋은 시 송년의 시. 팬데믹 2년차를 건강하게 견뎌낸 당신. 축하드립니다. 송년의 시 /윤보영 이제 그만 훌훌 털고 보내주어야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루를 매만지며 안타까운 기억 속에서 서성이고 있다 징검다리 아래 물처럼 세월은 태연하게 지나가는데 시간을 부정한 채 지난날만 되돌아보는 아쉬움 내일을 위해 모여든 어둠이 걷히고 아픔과 기쁨으로 수놓인 창살에 햇빛이 들면 사람들은 덕담을 전하면서 또 한 해를 열겠지 새해에는 멀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찾고 낯설게 다가서는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올해보다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아야겠다 산을 옮기고 강을 막지는 못하지만 하늘의 별을 보고 가슴 여는 아름다운 감정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 ❄출처 : 윤보영 시집, 12월의 선물, 카드들, 2017. 🍎 해설 올해도 코로..

좋은시 2021.12.31

김용호 좋은 시 눈 오는 밤에

김용호 좋은 시 눈 오는 밤에. 질화로 속의 군밤. 빨간 불씨. 하얀 눈, 그리고 인정. 눈 오는 밤에 /김용호 오누이들의 정다운 이야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매 바깥은 연신 눈이 내리고, 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 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 구수한 할매의 옛이야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이야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 ❄출처: 김용호 시집 시원 산책, 정연사(精硏社), 1964. 🍎 해설 올해도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한 해였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연말의 추운 겨울밤 세상을..

좋은시 2021.12.30

기형도 좋은 시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좋은 시 질투는 나의 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유명한 시구가 탄생된다.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출처 : 기형도 전집, 문학과지성사, 1999. 🍎 해설 ‘나..

좋은시 2021.12.29

이시영 짧은 시 오리알 두개

이시영 짧은 시 오리알 두개. 우리는 서로서로 어루만져주고 감싸주고 있는 그런 사이다. 오리알 두개 /이시영 갈숲이 자라는 곳에 오리알 두개 오리는 어디 갔나 갈숲이 대신 품어주는 곳에 따스한 오리알 두 개 🍒 ❄출처 : 이시영 시집, 『하동』, 창비, 2017 🍎 해설 이시영 시인은 짧은 시도 잘 쓴다. 짧은 시에 명시가 많다. 이 시는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 어루만져주고 감싸주고 있는 그런 사이라는 시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 🌹 문태준 시인의 해설 이 시는 조용한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풍경에는 미묘하게도 정감이 오가고, 보살피는 움직임이 있다. 갈숲과 오리알 두 개 사이에 오가는 다독임이 그것이다. 갈대숲이 어루만져주고 감싸고 있기에 오리알은 온기가 있는 품을 얻는다. 이시영 시인의..

짧은 시 2021.12.28

윤제림 좋은 시 가정식 백반

윤제림 좋은 시 가정식 백반.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살 냄새가 묻어나는 좋은 시다. 가정식 백반 /윤제림 아침 됩니다 한밭식당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는, 낯 검은 사내들, 모자를 벗으니 머리에서 김이 난다 구두를 벗으니 발에서 김이 난다 아버지 한 사람이 부엌 쪽에 대고 소리친다, 밥 좀 많이 퍼요. 🍒 ❄출처 : 운제림 지음,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 문학동네, 2008. 🍎 해설 “밥 좀 많이 퍼요.” 이 한 구절 때문에 이 시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리얼하다. 인정이 묻어 있다. 이름없는 그러나 일터에서 일을 해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사람사는 동네 냄새가 나고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살 냄새가 묻어나는 시다. 🌹윤제림 시인의 자작시 해설 ..

좋은시 2021.12.27

한용운 좋은 시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좋은 시 사랑하는 까닭. 당신이 그이를 사랑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 ❄출처 : 한용운, 사랑하는 까닭(1926), 님의 침묵 한용운 시집, 창작시대사, 2021. 🌹 고은 시인의 해설 그 어두운 시대에 님이란 무엇이었던가. 오늘에도 그 님은 있는 것인가. '님' 만..

좋은시 2021.12.26

푸시킨 명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시킨 명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 누가 알았으랴. 이 시가 다시 가슴에 와 닿을 줄이야. 코로나19 심각화로 지구촌 사람들은 일제히 이 시를 읊조리게 되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은 참고 견디라. 기쁜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것 그리움이 되리니. 🍒 🍎 해설 옛날 시골이발소나 미장원, 다방 벽에 붙어 있던 시가 바로 이 시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이게 삶의 좌우명이 되었다.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잖아 기쁨의 날이’ 온다고 그랬지? 그렇다면 조금쯤 힘겨운 일이 있더라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일이 아..

세계 명시 2021.12.25

나태주 짧은 시 강아지풀에게 인사

나태주 짧은 시 강아지풀에게 인사. 누구와도 금새 사귀어 친해질 수 있게 해주는 시. 강아지풀에게 인사 /나태주 혼자 노는 날 강아지풀한테 가 인사를 한다 안녕! 강아지풀이 사르르 꼬리를 흔든다 너도 혼자서 노는 거니? 다시 사르르 꼬리를 흔든다. 🍒 ❄출처 : 나태주 지음, 나태주 대표시 선집: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푸른길, 2017. 🍎 해설 코로나19가 더 심해져서 누구와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이런 날엔 누구와도 금새 사귀어 친해질 수 있고, 정이 깊게 들게 하는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강아지풀에게라도 인사를 해야겠다. 🌹 문태준 시인의 해설 길가나 들에 흔하고 흔한 것이 강아지풀이다. 키가 꽤 작다. 잘고 보드라운 털을 코끝에 손바닥에 목덜미에 살짝 대면 살근살근 잘도 ..

짧은 시 2021.12.24

안도현 좋은 시 저물 무렵

안도현 좋은 시 저물 무렵. 당신의 첫 키스는? 청춘을 아프게 반추하는 안도현 시인의 좋은 시. 저물 무렵 /안도현 그 애와 나는 강둑에 앉아서 강물이 사라지는 쪽 하늘 한 귀퉁이를 적시는 노을을 자주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둘 다 말도 없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 애와 나는 저무는 세상의 한쪽을 우리가 모두 차지한 듯싶었습니다. 얼마나 아늑하고 평화로운 날들이었는지요. 오래오래 그렇게 앉아 있다가 보면 양쪽 볼이 까닭도 없이 화끈 달아오를 때도 있었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붉은 노을 때문인 줄로 알았습니다. 흘러가서는 뒤돌아 오지 않는 물소리가 그 애와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그 애는 날이 갈수록 부쩍 말수가 줄어드는 것이었고 나는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웠습니다. 다만 손..

좋은시 2021.12.23

김광균 명시 설야

김광균 명시 설야. 눈내리는 소리. 먼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 설야(雪夜)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여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디 찬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 * 여위어 가다: 빛이 점점 어렴풋해지다. 추회(追悔) : 지나간 일이나 사람을 생각하여 그리워 하는 것. ❄출처 : 조선일보 1938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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