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한용운 좋은 시 사랑하는 까닭

무명시인M 2021. 12. 26. 04:20
728x90
반응형

한용운 좋은 시 사랑하는 까닭. Source: www. pexels. com

한용운 좋은 시 사랑하는 까닭. 당신이 그이를 사랑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

 

출처 : 한용운, 사랑하는 까닭(1926), 님의 침묵 한용운 시집, 창작시대사, 2021.

 

🌹 고은 시인의 해설

그 어두운 시대에 님이란 무엇이었던가.

오늘에도 그 님은 있는 것인가.

 

'' 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한용운의 님은 이렇게 사랑의 대상이자 사랑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것은 행복한 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행과 비극을 통해서 더욱 완성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아니 그 미소와 눈물은 결코 둘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사랑은 오랫동안 한번도 진부해진 적이 없다.

- 고은 시인, 중앙일보 기고문(1998)에서 발췌.

 

🌹 문태준 시인의 해설

한용운은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썼다. '기루다'는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중생이 석가의 님이요, 봄비가 장미꽃의 님이라고 했다. 이 시에서의 '당신'''과 같은 의미로서 당신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한다. 당신은 나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추함까지를, 미소뿐만 아니라 눈물까지를 사랑한다.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 또한 간절하다. 예를 들어, "자던 옷을 고쳐 입고 뜰에 나와 퍼지르고 앉아서" 바라본 달은 "차차차 당신의 얼굴이 되더니 넓은 이마, 둥근 코, 아름다운 수염이 역력히 보"이게 된다. "나는 곧 당신이어요"라고 말하고, 복종과 속박됨조차도 받아들이려는 지극하고 헌신적인 사랑은 대해(大海)와 같은 마음속에서 비롯된다. 석가가 중생을 사랑하실 적에 무한한 친절과 연민을 내고, 그 자애의 넓음이 허공과 같듯이.

- 문태준 시인 편, 시가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마음의숲, 2019에서 발췌.

 

🌹 김선우 시인의 해설

어느 날 문득 연인이 "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오면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누추한 도시 가로수에 번개처럼 꽂힌 단풍을 세듯 사랑을 셈해본다. 세월아, 이젠 사랑에 까닭 같은 건 없어도 좋으련만,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사십 중후반에 사랑의 까닭을 노래한다. 너 벌써 늙었냐고 나를 타박한다. 제목을 붙여놓고 사랑의 이기성과 맹목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렇다. 아무리 내 사랑이 크다 해도 상대가 내 사랑을 원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당신의 죽음까지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당신이 내 '백발''죽음'까지도 사랑하므로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정직하다. 사랑은 만능이 아니지만 모든 처음과 끝이 일어나고 번지는 인간의 붉은, 영원한 샘 아니던가.

 

독립운동가이자 수도승이었고 사상가였던 만해 한용운은 뛰어난 사랑의 시인이기도 했다. 1926년 나온 그의 시집 님의 침묵은 지금 다시 읽어도 아름다운 연애시집이다. 지금 사랑의 열병을 앓는 이라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님의 침묵)라며 님의 떠남을 슬퍼한 시도,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나룻배와 행인)라며 사랑의 완성을 갈망한 시도 모두 예사롭지 않은 감흥으로 다가올 것이다.

 

설악의 품속에서 만해가 홀연 '(당신)'을 전면에 세운 시편들을 쓰기 시작했을 때, 만해의 곁에도 실은 사랑이 있었다. 그가 온몸으로 껴안고 살던 아픈 조국과 부처는 물론이려니와 사랑하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여인이 있었다. 서여연화라고 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에서 그녀가 그를 간절히 지켰고, 그의 노래를 받았다.

 

만해는 자신의 이력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절정의 연애시로 독립지사와 승려에게 요구되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부드럽고도 강력하게 전복시킨다. 선언서로도 경전의 글귀로도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의 혁명. 아니, 혁명인 사랑을. 혁명인 사랑은 통째다.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당신이기에 나는 당신을 통째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은 죽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통째로! 통째인 사랑은 그렇게 서로를 사랑의 주체로 세운다.

 

가을 들판에 핀 꽃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사랑은 다 어디로 가는가. 님의 침묵서문 격인 군말에서 쓰는 바,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인 세계가 비로소 화엄의 뜰에 연화장처럼 펼쳐진다. '기룹다'는 말은 얼마나 어여쁜가. 그리움, 기특함, 안쓰러움, 기다림, 사랑. 이 모든 말들이 '기룹다'에 스며 있다. 그러니 생각건대,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고 말하는 이는 만해인가 만해가 사랑한 님인가.

- 김선우 시인, 조선일보 기고문(2008)에서 발췌.

반응형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Source: www. pexels. 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