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김용호 좋은 시 눈 오는 밤에

무명시인M 2021. 12. 30.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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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좋은 시 눈 오는 밤에. Source: www. pexels. com

김용호 좋은 시 눈 오는 밤에. 질화로 속의 군밤. 빨간 불씨. 하얀 눈, 그리고 인정.

눈 오는 밤에

/김용호

오누이들의

정다운 이야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매

바깥은 연신 눈이 내리고,

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

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

구수한 할매의 옛이야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이야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

 

출처: 김용호 시집 시원 산책, 정연사(精硏社), 1964.

 

🍎 해설

올해도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한 해였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연말의 추운 겨울밤 세상을 골고루 뒤덮는 눈처럼 어려운 이웃에게도 온정이 골

고루 닿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시처럼...

 

이런 시심 詩心을 잃지말자.

"고놈, 눈동자가 초롱같애."

 

🌹 나민애 문학평론가의 해설

이 시를 쓴 김용호 시인은 1930년대 문단의 신인이었다. 모더니즘의 후예라고 주목받았고, 함경도에서 창간된 잡지 의 동인으로 활동하던, 꿈 많은 시인이었다. 그의 작품은 퍽 도시적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이렇게 따뜻한 시도 발견된다. 몇 세대 전의 서정이 오늘에도 낯설지 않고, 겨울밤의 따뜻함이 간절하여 소개드린다.

 

김용호의 이 시에서 오우버란 외투를 말한다. 외투를 입고 밤길을 걷는 저 사람은 다 자란 어른이다. 과연 어른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시 안에서 대답을 발견한다. 어른은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로 산다. 너 참 귀하다, 축복받았던 기억으로 산다. 그때는 이유 없이 사랑받고 까닭 없이 으쓱했다. 그래서 시인은 어른이 되고, 혼자가 되고, 기약 없이 외로워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조금 더 몰입해 보자. 시인이 걷는 눈길은 어두웠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눈이 초롱 같다던 할머니의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좋은 말이란 이렇게 멋지다. 그것은 할머니의 수명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할머니의 말뿐이랴. 이 시 역시 멋지다. 여기에는 겨울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정한 오누이, 맛난 군밤, 빨간 불씨와 하얀 눈까지. 겨울의 정취로는 더할 나위 없다. 겨울이 아니라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모여 있는 듯하다.

- 나민애 문학평론가, 동아일보 기고문(2020)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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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매

바깥은 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

눈을 밟으며 간다.

 
Source: www. pexels.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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